재건축에 착수한 잠실4동 진주아파트 11동의 최근 풍경.
서울 송파구 신천동 안 잠실4동엔 아파트 단지 네 곳이 자리하고 있다. 이 가운데 2008년에 준공된 잠실파크리오아파트를 제외하고 1980년대 초 지어진 일명 ‘진미크’, 진주아파트, 미성타운아파트, 크로바맨션은 재건축을 목전에 뒀다. 이미 모든 세대가 이주를 완료한 상태다. 진주아파트는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이 2019년 연말이나 2020년 초에 재건축에 착수할 예정이다. 미성타운아파트와 크로바맨션은 14일부터 재건축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9월 30일 미성타운아파트와 크로바맨션 재건축 조합의 선택을 받은 롯데건설이 재건축 착수를 지역 주민에게 알리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석면 해체 및 제거 과정에서 나오는 분진이 인근 학교 학생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잠실파크리오아파트 6864세대에는 약 2만 8000명이 살고 있다. 이 가운데 석면에 특히 취약한 미성년자 비율은 전체 거주 인구의 10%를 넘는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유아가 611명, 잠실초교와 잠현초교 등에 재학 중인 초등생이 2078명, 잠실고교생 641명이다. 일하는 인구까지 합하면 이 지역에서 석면에 노출되는 인구만 3만여 명에 달한다.
그게 다가 아니다. 석면은 해체 및 제거 과정에서 분진 형태가 되는데 최소 2km를 날아간다. 이 지역 2km 반경 안에는 잠실 아파트 단지 외 롯데월드와 롯데호텔, 석촌호수, 올림픽공원, 한강공원, 한국체육대학 등 인구가 밀집된 곳이 많다.
석면은 우리에게 친근한 단어지만 국내에선 핵폐기물급 발암물질인 게 다소 뒤늦게 알려졌다. 미국은 1985년, 독일, 프랑스, 영국은 1990년대 중반 건축자재 석면 사용을 금지했다. 한국에선 2009년이 돼서야 사용 금지령이 내려졌다. 2009년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의 마감재와 단열 및 보온재, 지붕용 슬레이트, 타일 등은 대부분 석면으로 제작됐다.
환경부에서 발간한 ‘석면건축물 안전관리 가이드북’에 따르면 석면은 폐에 치명적이며 폐암 확률을 급격히 높인다. 암의 일종인 흉막, 복막 등에 생기는 악성중피종양의 50~80%가 석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폐기 시 방사능 물질에 준해서 처리돼야 한다. 송파 지역 주민들은 조례가 제정된 뒤인 겨울쯤 재건축을 진행해 달라고 요구했다.
석면의 위험성이 국내에서도 알려진 2009년 환경부는 석면안전관리법을 공포했다. 이 법에 따른 실질적 석면 관리는 지자체 조례에 따른다. 주요 지자체는 석면안전관리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지역 주민에게 주요 건축물 등의 철거 때 안전한 석면 해체 및 제거를 담보한다.
이를 넘어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석면주민감시단 등도 운영된다. 하지만 송파구엔 이런 행정 지원은커녕 조례조차 제정되지 않았다. 공사가 시작돼도 제재할 방법은 사실상 없는 상태다. 현재 구의회 조례안 심사 안건으로 올라와 있다. 문제는 송파구의회 일정상 12월 13일 이전에 공포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재건축 조합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다. 공사기간이 연장되면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는 까닭이다. 재건축이 진행되면 원주민은 재건축 기간 동안 다른 곳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기본 거주 비용이 들고 재건축에 필요한 비용을 미리 조합에 넣은 탓에 이자가 발생한다. 조례가 없어 재건축 조합 입장에서는 지역 주민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법적 의무도 없다.
이에 롯데건설은 재건축 조합을 대신해 대안을 제시했다. 착공을 바로 하되 조례가 지정돼 있는 다른 지자체에 준하는 정도의 관리 감독을 이행하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롯데건설의 이런 약속은 지역 주민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못했다. 롯데건설이 선정한 석면 해체 업체 세 곳 가운데 한 곳이 작업정지 처분인 D등급을 받은 업체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거듭된 부실 시공 전력도 지역 주민의 의구심을 더욱 자아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 상반기까지 2년 6개월 동안 부실시공 등에 따른 벌점을 가장 많이 받은 건설사는 롯데건설이었다. 2017년 말 국회의 이런 지적을 받은 뒤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2017년 10월 경기도 용인시 ‘양지 SLC 물류센터’를 시공하는 과정에서 옹벽 붕괴로 1명이 죽고 9명이 크게 다쳤다. 올 초 경기도 하남시 주상복합 ‘하남미사 롯데캐슬 스타’ 상가 시공 과정에서 일부분이 내려앉아 큰 물의를 빚었다. 두 사고 모두 원인은 부실시공으로 드러났다.
10월 7일 방문한 지역 주민을 막아선 송파구청 관계자.
지역 주민 대다수가 똘똘 뭉쳐 송파구청의 역할론을 강조하는 건 이런 현실 때문이었다. 10월 5일 지역 학부모 위주로 꾸려진 비상대책위원회는 겨울 이후로의 착공 연기, 민관합동감시단 구성, 주기적인 감시단의 현장 실사 등을 보장해 달라고 송파구청에 요구했다. 7일엔 송파구청을 방문해 박성수 구청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구청장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부구청장과 과장 등 일부 관계자만 나왔다. 이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송파구청 관계자가 추가로 방문한 위원회 쪽 사람을 막아 선 까닭이었다. 박 구청장은 11일이 돼서야 지역 주민을 만났다.
이에 대해 송파구청장 비서실 관계자는 “재건축 조합 및 롯데건설과 이야기해서 지역 주민 요구 사항을 다 들어주라고 일러 놨다. 별 문제 없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무선의 이야기는 달랐다.
실무를 담당하는 송파구청 환경과 관계자는 “아직 감리인 지정이 끝나지 않아 공사를 시작하진 않았다. 하지만 롯데건설이 감리인 지정만 끝나고 신고하면 착공이 이뤄질 수 있다. 아직까지 지역 주민과 재건축 조합 사이에 합의된 건 없다. 재건축 조합 및 롯데건설, 비상대책위원회 등과 더 만나서 조율해야 한다”고 했다. 구청장 직속 비서실과 실무진의 온도차는 컸다. 박성수 구청장은 일요신문의 여러 차례 연락에도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자 지역 주민들은 아무도 믿을 수 없다고 항변했다. 지역 주민 김 아무개 씨(여·42)는 “롯데건설은 믿고 맡겨 달라지만 이제껏 롯데건설이 보여준 행보를 미뤄 봤을 때 공사 현장에서 석면 해체와 제거가 원칙대로 처리될 수 있다고 믿기 어렵다”며 “게다가 현장에서 벌써 건설 중장비가 오가는 모습이 여러 번 목격됐는데 어떤 작업을 하는지에 대한 작은 설명조차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감리인 관련 문제만 마치면 롯데건설은 송파구청 허가 없이 신고만으로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 공사가 진행돼도 송파구청은 이를 제지할 근거가 전혀 없다. 오락가락 행정에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현재 우리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10월 24일 일요신문 현장 취재 때도 인부 여러 명의 작업 모습과 굴삭기 작업이 실제 목격됐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