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오른쪽)과 양현종은 야구 국가대표팀의 원투펀치로 오랜 기간 활약해왔다. 사진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확정하고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류현진이 한화 이글스의 ‘청년 가장’이었을 당시 양현종, 김광현은 류현진과 함께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좌완 트로이카’로 활약했다. 류현진은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일찌감치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반면 김광현은 2016년 SK와 계약금 32억 원, 연봉 53억 원에 4년 계약을 맺었고, 양현종은 매년 KIA 타이거즈와 계약을 맺는 방식을 택했다. 그런 두 선수가 지금은 ‘메이저리그 진출’이라는 숙제를 안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먼저 양현종은 이전 기자와 인터뷰에서 해외 진출 문제를 명확히 정리했다. 내년 시즌 도쿄올림픽을 마친 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이다. 양현종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올 시즌에 180이닝(184⅔이닝) 이상을 던지고 프리미어12 대회까지 소화한 다음 해외 진출을 진행하는 건 체력적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어려울 것 같다. 내년 시즌 도쿄올림픽을 치르고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한 다음 도전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양현종은 내년 시즌을 마치면 33세가 된다. 나이가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 스스로 이겨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올 시즌 류현진의 경기를 보며 느낀 점들이 많았다는 그는 “메이저리그는 늘 내 마음 속에 존재해 있는 꿈”이라면서 “서재응 코치님도 기회가 되면 무조건 도전하라고 조언해주셨다”는 말도 덧붙였다.
양현종이 메이저리그 진출과 관련해서 내세운 조건은 딱 한 가지. 꾸준히 선발로 뛸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이다. 이전 조범현 감독이 KIA를 이끌었을 때 조 감독이 양현종을 믿고 계속 선발로 내보낸 덕분에 자신감을 찾고 좋은 공을 던질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시즌 중반 SK가 1위를 독주할 때만 해도 김광현이 올 시즌을 마치고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건 당연한 일처럼 보였다. 김광현이 직접적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구단과 선수는 지난 시즌 우승 직후 올 시즌을 마치고 메이저리그로 향하는 부분에 대해 교감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SK가 시즌 막판 두산에 정규시즌 1위 자리를 내주고, 플레이오프에서 키움을 상대로 3연패를 당하는 등 생각지 못한 변수가 등장하면서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짙은 먹구름이 끼었다.
김광현은 국가대표팀 소집 후 첫 훈련을 소화한 다음 현장을 찾은 기자들에게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아직 구단과 이야기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책임감 강한 김광현으로서는 대표팀 일정을 소화하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일이 부각되는 걸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FA 계약이 2년 남은 김광현이 올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추진하려면 SK 구단의 허락이 절대 필요하다. 그러나 SK도 지금까지는 김광현의 해외 진출과 관련해서는 선수와 대화를 앞세우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분명한 것은 SK가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면서 구단 내부에서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다. 지난 8월까지만 해도 염경엽 감독을 비롯해 구단 관계자들은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낸 바 있다.
염 감독은 8월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에서 한 팬이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내가 보내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구단의 판단이다. 김광현에게 어떤 조건이 오는지도 중요하고, 모든 것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사실 감독을 하면서 선수들을 해외나 다른 팀에 많이 보냈다. 선수가 잘 돼서 좋은 쪽으로 가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싶은 생각은 단 1%도 없다. 구단이 그런 결정을 하면 전적으로 동참하겠다.”
SK 구단 관계자도 비슷한 시기에 기자와 인터뷰를 통해 “김광현이 원한다면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울 예정”이라고 대답했다. 대신 그는 조건을 내세웠다. “김광현이 메이저리그 선발 투수로 잘 적응할 수 있는 조건이 우선돼야 한다. 신중한 성격인 김광현이 잘 결정할 것으로 믿고 그 결정을 존중해줄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양현종(왼쪽)이 2020 도쿄 올림픽 이후로 메이저리그 진출 시기를 천명한 반면, 올 겨울 진출이 예상됐던 김광현은 상황을 알 수 없게 됐다. 사진=연합뉴스
“먼저 김광현은 SK와 4년 85억 원의 FA 계약을 맺었다. 김광현의 대리인으로 계약 맺을 때 역할을 했던 터라 우리로서는 계약 내용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2년 계약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SK 구단의 배려 없이는 해외 진출 자체가 어렵다. 아직까지 선수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는 확인이 안됐다. 가장 중요한 건 구단과 선수가 대화를 통해 서로 납득이 될 만한 결론을 도출해내야 하는 것이다.”
김광현은 지난 시즌 SK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을 때 해외 진출의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힐만 감독이 팀을 떠나고 염경엽 감독이 새롭게 감독으로 부임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꿈을 앞세우기 어려웠다. 그는 구단에 팀을 우승시키고 1년 후 도전하겠다고 말한 뒤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한 야구인은 “김광현의 올 시즌 활약을 보면 그의 해외 진출 의지와 열망이 어느 정도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SK가 올 시즌 우승을 이뤘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플레이오프 3연패에 빠지며 빈손으로 가을야구를 접은 SK로서는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놓고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메이저리그 구단의 행보. SK와 김광현 측은 프리미어12가 끝난 뒤 본격적으로 논의를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김광현한테 관심을 두고 있는 구단들의 상황이 여유롭지만은 않다. 익명을 요구한 메이저리그 동부지역 팀의 한 스카우트는 기자에게 이런 내용을 귀띔해줬다.
“우리 구단도 올 시즌 내내 김광현의 경기를 현장에서 체크하며 스카우팅 리포트를 작성해왔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지금까지도 SK 구단과 김광현의 속마음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김광현에 대한 보고서가 단장한테 올라갔고 이후 사장한테 올라가려면 선수의 의중을 파악해야만 한다. 그런데 프리미어12를 이유로 11월 지나서 입장을 정리한다면 일정에 큰 차질을 빚는다. 너무 늦게 알려지기 때문이다. 국제대회가 열리기 전 선수와 구단이 하루 빨리 입장 정리를 해줬으면 좋겠다.”
이 스카우트는 김광현이 메이저리그 진출 시 받을 대우와 관련해서 조심스런 설명을 덧붙였다.
“선수는 선발투수로 나서길 바라겠지만 만약 오프너(야구 경기에서 첫 1~2회에 등판하는 불펜투수)나 불펜 투수로도 나선다면 김광현을 원하는 메이저리그 구단은 의외로 많아질 것이다. 즉 선발투수로서의 계약만 아니라 오프너, 불펜투수로 계약한 다음 팀 상황에 따라 선발로 돌아설 수 있는 옵션도 고려한다면 2+1년, 또는 3년 계약에 2300만 달러(270억 원)의 연봉은 받을 것이다.”
뉴욕 메츠 프런트 출신인 대니얼 김은 김광현 정도의 입지를 다진 선수라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광현으로서는 올 시즌이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김광현은 SK는 물론 대한민국 야구를 위해 기여한 바가 크다. 충분히 역할을 한 만큼 이제는 개인적인 꿈을 위해 우리가 놔줘야 한다고 본다. 선수는 한 번 정도는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 SK는 김광현과 함께 네 차례 우승을 경험했다. 마지막 기회인 선수의 꿈을 위해 구단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선수에게 그 기회를 안겨줘야 한다. 지금 겨울 이적 시장이 여유로운 게 아니다. 메이저리그 트레이드 루머에도 언급되려면 하루 빨리 선수의 입장이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팬들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김광현이 좀 더 큰 무대에서 뛸 수 있도록 팬들의 열린 도움이 필요한 시기다.”
이영미 스포츠전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