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홈쇼핑이 갑작스럽게 (주)한진 지분 매입을 결정하자 해석이 엇갈린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지난 4월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된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빈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행법상 고 조 전 회장의 지분은 상속자의 지분이다. 이에 따라 GS홈쇼핑에 지분을 매각하는 주체는 고 조 전 회장의 상속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조현민 한진칼 전무다. 양사는 별도 주주 간 계약과 같은 절차는 거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GS홈쇼핑은 지분 매입은 한진과 협업을 강화해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급변하는 배송 환경에 한층 더 능동적으로 대응해 나가기 위해 이뤄졌다”며 “한진은 물류 관련 광범위한 사업영역과 인프라를 가지고 있어 투자에 적합하다. GS홈쇼핑이 한층 더 높은 배송을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높은 단계의 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진그룹 관계자도 “기존 거래의 협력 관계 강화 차원”이라고 말했다.
GS홈쇼핑은 설립 초기부터 한진과 협업해 왔다. 현재 GS홈쇼핑 배송물량 가운데 약 70%를 한진이 담당하고 있다. GS홈쇼핑 전담 배송원 제도도 운용 중이다. 한진그룹도 계열사인 대한항공과 한진을 통해 GS홈쇼핑 지분 8%를 보유하는 등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GS홈쇼핑은 그동안 편의점에서 택배를 찾아갈 수 있는 픽업서비스나 실시간으로 배송 상태를 확인하는 라이브 배송 서비스 등 ‘안심 배송’ 쪽에 비교적 힘을 실어왔다. 양쪽 회사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아직까지 협업 계획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진 않았지만 안심 배송과 더불어 배송 속도를 높이고 한진의 배송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화 서비스 등을 강화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선 이번 지분 매입이 GS홈쇼핑에 이익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량의 한진 지분을 상대적으로 싼값에 매입했기 때문이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 논란을 기점으로 5만~6만 원대에 머물렀던 한진 주가는 현재 3만 원대다. 재계 관계자는 “사업 시너지 측면뿐만 아니라 향후 한진그룹의 이미지와 경영이 개선되면 GS홈쇼핑과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선 한진그룹 총수 일가가 고 조 전 회장 보유 지분 매각 대각 대금을 상속세 납부에 사용할 것으로 관측한다. 서울 서소문 한진그룹 본사 전경. 사진=이종현 기자
결국 이번 지분 매입은 GS홈쇼핑 입장에선 ‘전략적 투자’인 셈이다. 그러나 시장은 반대로 반응했다. GS홈쇼핑의 지분 매입 소식이 알려진 다음날인 지난 10월 24일부터 주말을 앞둔 25일까지 주가는 23일 종가(15만 700원)보다 떨어져 14만 9000원~15만 원대에 거래됐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GS홈쇼핑의 경우 지분 매입 소식을 제외하면 별다른 이슈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시장과 유통업계는 다른 해석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 GS홈쇼핑의 이번 지분 매입을 두고 ‘느닷없다’ ‘깜짝 매입’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회사 쪽이 밝힌 매입 목적은 배송 서비스 강화에 맞춰져 있는데, 실효성에도 의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통업계를 담당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이커머스 업체를 중심으로 배송 시장이 속도전으로 변화한 지 오래됐다. 회사가 밝힌 ‘서비스 강화 목적’이 전부라면 한참 늦은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애널리스트 역시 “한진은 이미 GS홈쇼핑 상품만을 전담하는 별도 차량과 하역장을 갖추고 있는 등 협력 관계는 이미 끈끈했다. 향후 어떤 변화가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귀띔했다.
이번 지분 딜과 관련해 다른 시선은 한진그룹 총수일가가 내야 할 상속세에 맞춰지고 있다.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최대주주는 고 조양호 전 회장으로, 지분율은 17.84%다. 조원태 회장 지분율은 2.34%에 불과하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현민 한진칼 전무 지분율은 각각 2.31%, 2.30%다. 적극적으로 경영 참여 시도를 하고 있는 사모펀드 KCGI의 한진칼 지분율은 15.98%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 입장에선 고 조양호 회장 지분을 안정적으로 상속받아야만 경영권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
그런데 한진그룹 총수일가가 내야 할 상속세 규모는 최대 28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상속세가 2000억 원이 넘을 경우 5년간 나눠서 6번에 걸쳐 내는 연부연납이 가능한 만큼 한진그룹 총수 일가는 세금을 나눠 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오는 10월 말까지 국세청에 상속세 신고를 마쳐야 했다. 이 시점에서 등장한 게 GS홈쇼핑이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가 상속세 납부에 이번 지분 매각 대금을 사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연부연납할 경우 당장 첫 회 납부분에만 최소 400억 원가량이 필요하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는 고 조 전 회장이 남긴 퇴직금과 이번 GS홈쇼핑에 지분을 매각한 대금(250억 원)을 더해 500억 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GS홈쇼핑에 매각한 지분은 경영권과도 무관하다. 고 조 전 회장의 지분이 없어도 한진의 최대주주는 지분 22.19%를 보유한 한진칼이다. 지배구조에도 큰 영향이 없다. 결국 GS홈쇼핑이 한진그룹의 ‘큰 고민거리’를 덜어준 모양새가 됐다.
재계에선 GS그룹과 한진그룹의 과거부터 이어진 ‘긴밀한 관계’에 주목한다. 앞서 한진은 2000년 GS홈쇼핑(당시 LG홈쇼핑)이 상장할 때 주식 50만 주를 샀다. 한진그룹 계열사인 정석기업 원종승 대표는 GS홈쇼핑의 기타비상무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룹 총수 일가들의 사이도 돈독하다.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의 형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조양호 전 회장 장례식 때 추도사를 맡았다.
이에 대해 GS그룹 관계자는 “이번 지분 매입은 GS홈쇼핑 이사회를 통해 결정됐고, 지주사 차원에서 검토한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조 전 회장) 개인의 지분이 매각된 것이라 확인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한편 그동안 한진그룹 총수일가는 상속을 두고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번 GS홈쇼핑에 지분 매각한 것을 기점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한진 총수일가의 이번 지분 매각은 전체 상속세와 비교하면 숨통이 트인 수준에 불과하다. 향후 상속세 재원 마련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