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사르데냐는 부드럽고 새하얀 백사장으로 특히 유명하다. 일부 해변에는 몽글몽글한 작은 자갈이 깔려있기도 하며, 또 어떤 해변은 햇빛을 받으면 분홍빛이 돌기도 한다. 이처럼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기에 유럽인들 사이에서 여름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는 이곳이 수년 전부터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최근 독일 시사주간 ‘슈테른’이 보도했다.
다름이 아니라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사라지고 있는 백사장 때문이다. 급기야 몇 년 전부터는 해안선의 형태까지 변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급속도로 모래가 사라지고 있는 이유는 바로 ‘모래 도둑’들 때문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혹은 그저 기념품이나 선물로 가져가려는 관광객들이 늘면서 사태가 심각해진 것이다. 이에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선 사르데냐섬 당국은 모래 반출을 막기 위한 각종 묘안을 짜내면서 분주한 모습이다. 심지어 무단으로 모래를 빼돌릴 경우에는 최대 징역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이스 아루타스 해변의 하얗고 몽글몽글한 모래. 관광객들의 모래 반출로 해변이 줄어들어 사르데냐섬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진=sardegnaturismo.it
사르데냐섬 서쪽에 위치한 ‘이스 아루타스’ 해변. 발끝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의 백사장이 아름다운 이곳은 해마다 유럽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올 정도로 사르데냐섬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변 가운데 하나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이른 아침의 해변 풍경은 더없이 평화롭기만 하다. 이런 곳에서라면 딱히 이렇다 할 범죄 행위가 일어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모래 보안관’ 피나 카레두(58)는 알고 있다.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에서도 사실은 암암리에 불법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카레두는 매의 눈으로 해변,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모래를 감시한다. 그의 주된 임무는 백사장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관광객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바다를 오가는지, 또는 어떻게 모래를 움켜쥐고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는지, 아니면 그 모래를 몰래 가지고 나가는지 등이다.
카레두는 “나는 그저 우리 해변을 걱정하는 한 명의 시민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바로 사르데냐섬에서 해마다 사라지고 있는 모래다. 카레두는 “내가 어렸을 때는 여름이 돼도 해변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7, 8월만 되면 사람들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다”고 말했다.
‘이스 아루타스’ 해변이 관광객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인 이유는 바로 이 모래에 있다. 이곳의 모래는 유난히 부드럽고 고운 데다 새하얗기에 단번에 관광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이에 감동한 일부 관광객들이 모래를 페트병에 담아 몰래 가져가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문제가 심각해졌고, 급기야 몇 년 전부터는 이를 제재하기 위한 강력한 법이 도입됐다.
처음 카레두가 모래를 병에 담아가는 관광객에게 다가가 주의를 준 것은 10년 전쯤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런 행위를 제재할 수 있는 명확한 법규정이 없었기에 카레두는 주의를 주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자 사르데냐섬 당국은 결국 2017년, 이를 전면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이를테면 사르데냐섬 전역에서 모래, 조개껍데기, 자갈 등을 외부로 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모래를 훔치다 적발되면 징역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반출하려다 압수된 모래 페트병들. 사진=페이스북 Sardegna Rubata e Depredata(사르데냐 도난 및 박탈)
법이 적용된 후 최초의 적발 사례는 지난 8월에 발생했다. 한 프랑스 부부가 40kg의 모래를 열네 개의 플라스틱 병에 나눠 남아 반출하려다 페리 터미널에서 체포된 것이다. 당시 부부는 “기념품으로 가져가려고 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불법인지 몰랐다”며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당국은 부부의 행위가 엄연히 불법에 해당된다고 보고 있으며, 현재 이들 부부는 최대 징역 6년형에 처해질 수 있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사르데냐섬의 모래가 관광객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비상이 걸린 당국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책 마련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해변을 정기적으로 순찰하는 경비대를 배치한 것이 한 예다. 인력이 부족한 곳에는 카레두처럼 지역 시민으로 구성된 민간인 보안관을 추가로 배치해 돕도록 했다.
카레두의 임무는 수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발견되면 현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후 다가가 주의를 주는 것이다. 카레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발이 되면 이를 시인한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뻔뻔하게도 자신의 행위를 부정한다.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이 독일인들이다. 만일 그들이 불법 행위를 시인하지 않으면 나는 경찰을 부른다. 물론 동영상으로 모든 상황을 녹화해둔다”고 말했다.
고작 모래나 자갈 때문에 그런 처벌을 하는 것이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카레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서 “만일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플라스틱 생수병 한가득 모래를 담아간다면, 아마 여기에 남아나는 모래는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실제 지난 수십 년간 ‘이스 아루타스’의 해안선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1970년대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해변의 폭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보호구역 담당관인 마시모 마라스는 “이는 분명 모래 도둑들의 영향이 크다. 모래는 한정적이다. 무한대로 바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모래가 사라지면 해안선도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를 막기 위해 마라스는 바닷가를 찾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제작해서 배포하고 있다. 이 전단지에는 해변의 자갈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간절한 호소문이 적혀 있다. “여러분, 제발 저를 집으로 데려가지 마세요!”
옥색 바다로 유명한 ‘라 펠로사’ 해변도 무분별한 모래 반출로 그 폭이 과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다. 사진=sardegnaturismo.it
‘이스 아루타스’ 북쪽에 있는 ‘라 펠로사’ 해변은 이런 조치로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아름다운 옥빛의 바다로 유명한 이곳은 수심이 얕기에 특히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작은 해변이지만 이곳 역시 과거에 비해 그 폭이 절반가량 줄어든 상태다. 이유는 역시 같다. 무분별한 모래 반출 때문이다.
해변이 위치한 스틴티노의 시장인 안토니오 다이아나 역시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모래 반출을 막기 위해 각종 규정을 도입한 그는 먼저 네 명의 해안 순찰대를 배치한 것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해변 매트’ 사용을 의무화했다. 요컨대 비치타월이나 담요, 수건 등을 모래사장에 직접 닿게 펼쳐선 안 되고, 그 아래에 반드시 별도의 ‘해변 매트’를 깔아야 한다. 이는 행여 모래가 묻어 나갈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이와 관련, 다이아나는 “최근 우리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비치타월 한 장 당 손실되는 모래는 100g이다. 여름 휴가철에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하루 최대 7000명가량이다.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백사장은 언젠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라고 말했다.
만일 이를 모르고 처음 위반할 시에는 경고가 주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적발될 경우에는 벌금 100유로(약 13만 원)가 부과된다. 또한 바닷가를 떠날 때에는 반드시 발에 묻은 모래를 완전히 털고 나가야 한다.
사르데냐섬의 모래는 중고거래 사이트 ‘이베이’에서 거래되기도 한다. 몰래 페트병에 모래를 퍼담는 관광객. 사진=페이스북 Sardegna Rubata e Depredata(사르데냐 도난 및 박탈)
이처럼 모래가 기념품이나 선물용 등으로 반출되는 것도 문제지만, 보다 심각한 문제는 상업적인 용도로 대량으로 반출되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 수년간 온라인 중고 거래 사이트인 ‘이베이’에는 사르데냐섬의 모래가 매물로 올라온 경우가 많았다.
해변에서 적발되지 않은 불법 행위가 공항에서 적발되는 경우도 많다. 실제 매일 3만 명의 승객들이 오가는 사르데냐섬의 올비아공항에서는 이를 막기 위한 대대적인 검색이 이뤄지고 있다. 공항 검색대에서는 트렁크 안에 몰래 숨겨진 모래가 담긴 병들이 압수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렇게 압수된 플라스틱 병들은 점점 늘어나서 현재 톤 단위에 달하고 있다. 이에 공항 측은 주기적으로 모래와 자갈이 담긴 생수병들을 공항 활주로를 따라 나있는 하수로에 버려 바다로 흘려보내는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보관되어 있던 10톤 분량의 모래와 자갈을 바다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한 공항 관계자는 “보관장소가 부족해 이렇게라도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바다로 되돌려 보낸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지만 사실 거의 매일 압수되는 모래와 자갈 때문에 보관 장소가 부족하다는 것이 현실적인 이유라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적발 및 압수, 그리고 되돌려 보내는 작업을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 사르데냐섬 당국은 무엇보다 관광객들의 올바른 양심이 우선이라고 말하면서 부디 당국의 제재 조치를 따라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모래가 마피아도 군침 흘리는 인기 광물? 모래 불법 반출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곳은 비단 사르데냐섬뿐만이 아니다. 도미니카공화국이나 태국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또한 미국 하와이의 경우에는 모래를 훔치다 적발될 경우 최대 9만 유로(약 1억 원)의 벌금형에 처해지기도 한다. 이처럼 모래 반출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는 사실 관광객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전세계적으로 모래가 귀한 상품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특히 모래의 70%를 이루고 있는 광물인 석영은 물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천연자원이다. 이에 대해 독일 언론기관의 통합생물다양성연구센터의 오로라 토레스는 “우리 현대 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 바로 모래다”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건물을 지을 때 사용될 뿐만 아니라 유리, 아스팔트, 화장품, 치약, 마이크로칩, 스마트폰 액정화면, 자동차, 비행기 등 사실상 거의 모든 제조산업에 모래가 필요하다. 또한 모래에서 추출한 이산화규소(SiO2)는 와인산업과 식료품 제조산업에도 사용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마피아들이 모래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한지도 오래다. 토레스는 “소위 말하는 ‘모래 마피아’는 특히 인도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그 조직은 현재 가장 폭력적이고 폐쇄적인 범죄 집단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