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내부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들은 심상찮다. 그동안 각종 의혹들의 단순 참고인 및 방조범(증거인멸 혐의) 정도로 거론됐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핵심 피의자가 될 가능성이 조금씩 제기되고 있다. 검찰도 구속된 부인 정경심 교수를 서울구치소에서 불러 계속 수사하며 의혹들의 사실관계 속 조국 전 장관의 역할 파악에 집중하고 있다. 당초에는 10월 말 소환 가능성까지 거론됐지만 조국 전 장관 동생까지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신중하게 사실 관계 파악 후 부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힘을 받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진=임준선 기자
자녀 품앗이 스펙 조작 등 여러 의혹에 대해서는 피의자 신분 조사를 피해갈 수 없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하지만 검찰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의혹’은 뇌물 부분이다. 특히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덜미를 잡힌 부분은 계좌 흐름이다. 검찰은 정경심 교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2018년 1월 코스닥 상장업체 WFM(더블유에프엠) 주식을 매입한 날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5000만 원가량을 이체받은 기록을 찾아냈다. 당시 돈이 이체된 곳은 청와대 내부 101경비단에 있는 자동입출금기(ATM)로 알려졌는데, 검찰은 이를 토대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펀드 운영에 관여했다’는 것을 입증하려 하고 있다. 청문회 때만 하더라도 “‘펀드’를 처음 듣는다”고 했지만, WFM 주식 매입 당일 입금한 돈의 흐름을 감안할 때 깊숙하게 관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뇌물 가능성도 제기된다. 내로라하는 주가조작 세력들이 관여한 WFM 등으로부터 받은 자금을 ‘뇌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2018년 초, 정경심 교수는 WFM 주식 12만 주를 당시 차명으로 매입한 의혹을 받고 있는데, 거래 상대방 측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당시)이 관여한 것을 알고 잘 봐달라는 측면에서 가격 등에 혜택을 줬다”라고 한다면 뇌물죄 성립이 가능하다.
실제 일명 조국 펀드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에 회사를 매각한 우 아무개 전 WFM 대표는 WFM 지분을 무상으로 증여했다. 또 당시 배터리펀드 출자금 99% 역시 우 전 대표 측에서 나왔다. 우 전 대표가 코링크PE를 통한 상장 및 주가조작에 ‘쩐주’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추론이 나오고 있다. 이때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뒤에 있다’는 것을 알고 했다면 뇌물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관측이다.
조 전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시절이라 업무 관련성도 상당하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검찰뿐 아니라, 금융감독원 등을 통해 주가조작 세력들에 대한 정보 파악 및 관리를 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검찰 관계자는 “고위 공직자의 경우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수백만 원만 받아도 사안의 중대성 때문에 구속영장이 발부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물론 입증이 쉬운 것은 아니다. △민정수석 자리에서 취급하는 정보가 금전적 혜택을 건넨 작전세력 측에 전달됐는지 △이 과정에 조국 전 장관이 직접 개입해 지시했는지 등이 입증되어야 한다. 단순히 펀드 투자 및 자금 흐름을 알고 있었다는 정도만으로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찰 관계자는 “이제 돈 흐름이 포착된 이상 ‘몰랐다’는 얘기로는 해명이 부족하게 됐기 때문에 나오는 각종 시나리오들”이라며 “결국 WFM으로부터 매달 일정액씩, 수천만 원을 받은 것까지 ‘조국 전 장관이 알았느냐’는 전제로 조 전 장관의 개입 정도와 공범 성립 여부를 확인하려 할 것이다. 관련 정황이 나오면 정경심 교수와 조국 전 장관이 ‘공동 주머니’를 찼다고 보고 뇌물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성의 핵심 관계자가 검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하지만 내로라하는 사채업자들이 얘기하는 ‘조국 펀드’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언론에서 나오고 있는 WFM이 아니라 익성으로 큰 이득을 보려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자동차 소음을 줄여주는 흡음재를 만드는 자동차 부품회사 익성. 2014년부터 상장을 추진했다. 2차전지 음극재 관련 원천기술을 보유한 김 아무개 박사를 영입해 연구소를 만들고 신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1차 벤더(공급사)라는 한계 때문에 상장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조국 전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에 취임한 2017년 5월부터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 씨와 익성 부사장 이 아무개 씨가 2차 전지를 테마로 삼고 우회상장 및 주가 조작을 시도한 것. 영어교육 업체이자 코스닥 상장사 WFM을 인수한 뒤, 2차전지 기업으로 탈바꿈해 익성을 우회상장하려 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국내에 내로라하는 주가 조작 세력에게 ‘투자 제안’이 있었다는 게 주식 큰손들의 설명이다.
사채업계 관계자는 “다칠 수 있어 자세한 것은 말해줄 수 없다”면서도 “익성을 평가절하하는 얘기도 있지만, 익성은 매출이 700억~800억 원대이고 영업이익이 30억~40억 원은 꾸준히 나오는 단단한 회사”라고 아무런 자료도 보지 않고 술술 털어놨다(실제 익성은 지난해 매출이 777억 원, 영업이익은 37억 원을 기록했다). 그는 “그런 매출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붙이면 상장 이후 주가를 띄우는 게 매력적이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당시 주가조작 시도에는 코스닥 상장사 주가 관리에 일가견이 있다는 세력들이 붙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잘 아는 동생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내로라하는 투자자들이 당시 익성을 통한 우회상장 시나리오에 관여해 있었다”며 “언론은 정경심 교수가 돈을 받았다는 WFM을 주목하지만 사실 펀드가 궁극적으로 대박을 내고자 했던 곳은 익성”이라고 단언했다.
조국 전 장관이 자연스레 다시 소환되는 대목이다. 정경심 교수가 수백만 원씩 챙긴 행위나, 자산관리사 김 아무개 한국투자증권 PB(프라이빗뱅커) 등에게 얘기한 내용들만 놓고 보면 이렇게 큰 그림을 모두 설계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우회상장 및 테마주 편승을 통한 주가 조작으로 코링크PE가 이익을 본다면 설계자는 5촌 조카 조범동 씨일 수 있어도 투자자(조국 전 장관 가족)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 않았겠느냐”며 “청와대 민정수석이 된 시점과 맞물려 펀드가 움직이기 시작한 점 등을 감안할 때 확인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닌 것 같다”고 귀띔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