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0일엔 2군 선수단의 열악한 처우와 대비되는 임원진의 고연봉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박준상 전 키움 대표이사는 지난 10월 중순 사의를 표명했는데, 그 과정에서 박 대표가 지난해 연봉 1억 8000만 원에서 무려 3억 2000만 원이 오른 5억 원을 올해 연봉으로 받아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강태화 키움 홍보·마케팅 상무는 이와 관련해 “우리 구단은 자립해야 하는 특성상 임원들도 영업에 참여한다. 지난해까지는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았다”며 “하지만 지난해 12월 이사회에서 임원들의 인센티브를 없애고 대신 그 금액을 연봉에 포함하기로 결의했다. 그 결과 박 전 대표의 인센티브가 연봉에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뚫고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한 선수단 활약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키움 히어로즈의 운영이 또 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사진은 한국시리즈에서 안타를 기록하는 박병호. 사진=연합뉴스
#히어로즈 전 대표는 왜 5억 원을 받았나
구단은 박준상 전 대표가 키움증권과 5년간 500억 원 규모의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른 정성평가 결과 성과급이 연봉 5억 원에 포함돼 계산됐다는 의미다. 강태화 상무는 “대표이사 연봉을 본인이 스스로 올리고 내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이사회에서 평가해 사인한 금액”이라고 했다. 그러나 후원 협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인사는 “박 대표가 키움증권과 협상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귀띔해 의문을 안겼다.
더불어 오랜 기간 구단 법률자문을 맡았던 임 아무개 변호사의 법무법인도 올해 3월부터 자문료로 월 평균 5000만 원 이상을 받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지출한 법률자문료의 2배 수준이라고 한다. 한 야구단이 법률자문료로 지출하기엔 지나치게 큰 금액이다.
대부분 구단은 규약 개정, FA 계약, 해외 캠프 계약, 마케팅 관련 계약, 선수들의 개인적 사건·사고 등이 있을 때 법률자문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 법을 전공했거나 법률 지식이 해박한 직원이 1차적으로 해결하고, 큰 사건일 때는 모기업 법률팀에 자문을 요청한다. 타 구단 관계자는 “키움은 모기업이 없고, 다른 팀에 비해 마케팅이나 광고 계약이 굉장히 많은 구단이기 때문에 다른 팀보다 법률자문료가 더 많이 들었을 수는 있다”고 했다.
강 상무는 이와 관련해 “우리 팀은 그동안 다른 팀에 비해 유독 법률자문이 필요한 일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법률자문료가 아무래도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며 “지난 3월까지는 임 변호사에게 월급 형태로 자문료를 지급했지만, 4월 감사위원회에서 비효율적인 지출을 줄이기 위해 일반 변호사와 같이 타임제(수임 시간에 따라 보수 지급)로 계약 방식을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감사위원회 방침에 따라 수임료 지급 체계를 바꿨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 지출이 더 커졌다는 얘기다.
강 상무는 “이런 문제 때문에 차라리 법무법인을 바꿔보자는 제안이 나왔다”며 “결국 지난 10월 임 변호사와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법무법인과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장석 연결고리 지우기’인 줄 알았는데…
박 전 대표와 임 변호사는 이장석 전 대표이사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끊임없이 ‘옥중경영’ 의혹을 받아왔던 키움은 박 전 대표와 임 변호사가 퇴진하면서 일단 이 전 대표의 색을 더 지웠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하지만 이 전 대표의 측근들이 구단 운영에서 손을 떼는 것이 반드시 히어로즈의 발전으로 연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이 전 대표 없는 지난 한 시즌의 여러 사태들이 그 우려를 그대로 보여준다.
키움은 지난해 12월 KBO에 ‘경영 및 운영 관리 개선안’을 제출하면서 외부 인사인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이사를 사외이사(이사회 의장)로 영입해 팀 체질을 바꿔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또 이사회를 사내이사 3명과 사외이사 3명으로 구성해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구단을 운영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박 전 대표의 후임이 된 하송 신임 대표이사는 허 의장과 함께 키움에 자리를 잡은 인물이다. 부사장 겸 감사위원장을 지내다 역시 이사회가 개정한 정관에 따라 1년 만에 새 대표자리에 앉았다. 최측근 인사가 새로운 사장으로 부임한 이상, 허 의장이 키움 구단의 경영 감시자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엔 의문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키움은 이미 지난 1월 축구인 출신인 임은주 전 안양 FC 단장을 새 단장으로 영입했다가 열흘 만에 교체한 전력이 있다. 임 전 단장은 취임 직후 과거 강원 FC와 안양 FC 단장 재직 시절 여러 송사와 의혹에 휩싸였던 점이 재조명돼 논란을 빚었다. 그러나 단장자리에서만 물러났을 뿐, 오히려 부사장으로 재직하면서 구단 운영에 더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다만 그 후 마케팅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역량을 발휘했다는 게 타 구단 관계자들의 평가다. 오히려 하 신임 대표의 구단 내 역할이 불분명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온다.
강 상무는 “박 전 대표가 사의를 밝히면서 한국시리즈 종료 후인 지난 10월 29일 긴급 이사회를 소집했고, 그 자리에서 정관에 따라 등기이사이자 다음 순번 임원인 하 부사장이 신임 대표로 선임됐다”고 했다. 대표이사 사임과 교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질 때까지 구단이 침묵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새 대표이사 선임이 확정된 뒤 공식 발표를 준비하던 중 보도가 나와 구단이 한 발 늦은 모양새가 됐다”고 해명했다.
#녹취록으로 드러난 ‘옥중경영’ 실태
그러나 ‘설마’는 종종 사람을 잡는다. 이 모든 문제가 불거진 다음 날, 히어로즈가 KBO의 엄중한 제재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장석 전 대표이사의 ‘옥중경영’ 속에 지난 한 시즌을 꾸려 왔다는 사실이 추가로 적발됐다. 최근 사임한 박준상 전 대표이사와 임 아무개 전 고문 변호사가 “이장석 대표님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 혼자 결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와 같은 발언을 한 녹취록이 지난 30일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히어로즈가 굳이 박 대표의 사임 사실을 2주일 넘게 숨겼던 이유도 동시에 드러났다. ‘일신상의 이유’라는 퇴임 사유와 “공식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다”던 해명은 모두 거짓이었던 셈이다. 박 전 대표가 이 전 대표와 지속적으로 만나며 구단 운영을 상의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키움 구단은 하루 만에 “감사위원회에서 이 건과 관련해 감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박 대표가 사임했고, 임 변호사와 법률자문 계약을 해지했다”고 뒤늦게 입장을 바꿨다. 거짓 해명으로 옥중경영 의혹을 덮고 넘어가려다 명징한 증거 앞에 끝내 실상을 토로한 모양새다.
이장석 전 대표이사는 지난해 11월 열린 KBO 상벌위원회에서 남궁종환 전 부사장과 함께 KBO 규약 부칙 1호 ‘총재의 권한에 관한 특례’에 따라 영구실격 제재를 받았다. 당시 KBO는 “두 사람은 현 시점부터 어떤 형태로든 리그 관계자로 참여할 수 없고 복권도 불가능하다”며 “향후 히어로즈 구단 경영에 관여한 정황이 확인될 경우 구단은 물론 임직원까지 강력히 제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히어로즈가 이 전 대표의 영향력 안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소문은 늘 야구계에 파다했고, 결국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 실상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구단의 대표들이 ‘옥살이’를 하고 있는 이장석 전 대표와 지속적으로 만나며 구단 운영을 상의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구속된 이장석 대표. 사진=연합뉴스
#‘양치기 소년’이 된 키움의 실태에 다시 난감해진 KBO
구단의 보고가 아닌 언론 보도를 통해 중대한 사안을 확인한 KBO 입장은 난감하다. 일단 히어로즈 구단에 이 건과 관련한 상세 경위서를 요청해 받았다. KBO 고위 관계자는 “경위서를 면밀히 검토하고 어떤 상황인지 파악한 뒤 법률적이고 규약적인 검토를 거쳐야 한다”며 “현재 관련 당사자들이 둘 다 사임한 상황이지만, 필요하다면 경위서 내용을 보고 상벌위원회를 열어 제재를 심의할 수 있다”고 했다.
KBO는 경위서를 통해 이 전 대표의 경영 참여 범위가 어느 정도였는지, 그 결정이 구단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누가 옥중경영을 주도하고 누가 숨겼는지 파악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아직 징계 수위가 어느 정도에 이를지 결정하기 어려운 단계다. 서류를 순서대로 검토해 보고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추가 증명도 요청할 것”이라며 “당사자를 포함해 구단 전체를 전면적이고 다각도로 조사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미 자리에서 물러난 박 전 대표와 임 변호사를 엄중하게 징계한다고 해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다. 이미 이 전 대표에 대한 최고 수준 중징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대로’ 한 구단이 히어로즈다. 박 전 대표가 “직접 삼고초려해 모셔왔다”고 자랑스러워했던 허민 이사회 의장 역시 이 전 대표와 긴밀한 관계라는 게 야구계 정설이다. 허 의장의 최측근인 하송 신임 대표이사도 다르지 않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녹취록 속 발언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문제제기도, 문제 연루도 임은주 부사장이 했다?
언론 보도 이후 히어로즈 구단이 지난 10월 31일 발표한 입장문에도 의문점이 많다. 구단은 “이장석 전 대표의 옥중경영 의혹과 관련해 임은주 부사장이 감사위원회에 의혹을 제기한 것은 지난 9월 말이었다”며 “그 후 하송 당시 감사위원장이 감사에 착수했고, 현재까지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이례적으로 처음 문제를 제기한 인물의 실명을 공개했다.
그러나 옥중경영 의혹을 제기한 임 부사장 역시 문제가 많다고 부연설명했다. “감사위원회에서는 임은주 부사장에게 본인이 녹취하여 갖고 있다고 한 녹음파일 등 증거자료 제출을 수차례 요청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며 현재까지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감사위원회의 감사 과정에서 임 부사장 역시 옥중경영에 참여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사안이 중대하고 시급해 임 부사장에게 직무정지 처분을 내렸고, 감사 결과에 따라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요악하자면 옥중경영을 고발하기 위해 녹취 증거까지 수집해 구단에 문제를 제기한 인물이 임 부사장인데, 누군가에게 ‘임 부사장도 옥중경영에 참여했다는 제보’를 받아 도리어 감사 대상에 올리고 징계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다. 임 부사장의 정체는 밝히면서 그를 고발한 또 다른 제보자가 누구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또 임 부사장이 어떤 이유를 대며 녹취록을 감사위원회에 제출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히어로즈 경영 감시를 위해 영입했던 허 의장의 능력에 다시 한 번 물음표가 붙었다. 단장 선임 열흘 만에 교체됐던 임 부사장이 옥중경영 정황을 포착하고 증거를 모으는 동안, ‘구단 경영 감시자’로 키움에 온 허 의장과 하 전 감사위원장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거나 알고도 모른 척했다는 얘기가 된다. 심지어 박 전 대표와 임 변호사가 물러난 뒤 감시자에서 경영자로 위치가 바뀌었다.
#키움의 끝없는 구설수, 과연 여기가 끝일까
문제는 키움이 앞으로 또 다른 구설수에 휘말릴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구단 관계자는 “이미 야구계에 알려진 히어로즈 수뇌부 헤게모니 싸움의 일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미 키움 임원들간 구단 내 헤게모니 싸움이 치열하다는 소문이 외부에 파다하게 퍼져 있다. 또 다른 구단 관계자는 “현재 키움 구단의 상황을 보면, 정말 야구단 운영에 애정이 있고 팀 발전을 먼저 생각하는 임직원이 남아 있는지 의문”이라며 “다들 팀이 어수선한 틈을 타 주도권을 잡고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눈치싸움을 하고 있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분명 히어로즈는 올해 키움증권이라는 새 파트너와 함께 아름다운 새 출발을 했고, 구단 이름을 바꾼 첫 해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좋은 성과까지 냈다. 그러나 선수단을 밀어주고 당겨줘야 할 구단 내부는 여전히 어수선하기만 하다. 히어로즈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팀이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중이라 조용히 진행하려 했다”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언론을 통해 공개된 후 뒤늦게 해명하면서도 또 다시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간 선수단의 성과 뒤에 숨어 버리려 한다.
히어로즈는 일찌감치 파악한 옥중경영 정황을 왜 KBO에 미리 알리지 않았을까. 공식 발표를 하지 않더라도 KBO에 조용히 신고해 공조했다면, 구단이 “제출을 차일피일 미뤘다”고 주장하는 임 부사장의 녹취록을 더 일찍 얻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구단은 “신임 대표이사와 더불어 히어로즈 임직원은 히어로즈 프로야구단이 KBO 리그에서 모범적인 구단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앞으로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해 나갈 것을 약속 드린다”고 했다. 1년 전에도, 2년 전에도 그리고 더 오래 전에도 히어로즈는 경천동지할 물의를 일으킨 뒤 늘 이렇게 입장문을 끝맺곤 했다. 어느덧 야구계는 히어로즈발 각종 파문에 내성이 생겨 웬만한 일에는 충격도 받지 않고 둔감해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