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북한 여자 축구대표팀은 오는 12월 부산에서 열리는 2019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 불참의사를 전했다. 이들의 불참은 지금까지 단 1회(2010년 6회 대회)에 불과했기에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축구계에서 남북이 으르렁거리고 있는 모양새다.
2019년 10월에 앞서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난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라는 이름으로 평양 원정을 경험한 바 있다. 사진은 당시 판문점을 통해 복귀하는 박종환 감독(가운데)과 선수단. 사진=연합뉴스
29년 전인 1990년 10월 13일 ‘남북통일축구대회’라는 이름으로 남북간 친선경기가 열린 바 있다. 당시 참가한 대표팀 수장은 박종환 감독이었다. 여주시민축구단 총감독직을 맡고 있는 박 감독에게 1990년 평양 원정기 이야기를 들어봤다.
황해도 옹진군이 고향인 박종환 감독에게 평양 원정은 더욱 특별했다. 그는 “황해도에서 나고 자라다가 8·15 해방 때 내려왔다. 고향에 가까이 간다는 것이 설레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북측 선수단도 이 같은 박 감독의 배경을 알고 있었다. “북한 선수단과 식사 자리에서 ‘박 감독은 이북사람이지요’라고 먼저 말하더라. 사전에 나름 조사를 한 모양이다”라고 전했다.
당시 한국 선수단에 북한과 인연이 있는 인물은 박 감독만이 아니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었던 이회택 감독이 고문 자격으로 함께했다. 한국전쟁 당시 의용군으로 징집돼 헤어진 부친이 있는 이산가족이었다. 고문 자격으로 대표팀과 원정길에 동행해 부친을 40년 만에 극적으로 만났다. 박 감독은 “나는 전쟁 전에 가족들과 함께 내려왔기에 이산가족은 아니지만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남북통일축구대회가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열릴 수 있었던 것은 남북 화합과 친선을 위한 경기였던 덕분이다. 박 감독은 “‘꼭 이겨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당시 윗선으로부터 들었다. 일종의 정치적인 게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기 분위기 또한 지난 10월 15일 열린 경기와 달랐다. 지난 평양 원정은 무관중 경기일 뿐 아니라 다방면에서 북한의 ‘뻣뻣함’이 느껴졌다. 취재진이나 응원단의 방북도 무산됐고 선수들은 베이징을 경유해 평양으로 향해야 했다. 경기장에서도 북한 선수들이 유난히 거칠게 나왔다는 선수들의 증언이 있었다. 코칭스태프도 90분 내내 선수들을 향해 욕설을 내뱉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종환 감독은 “우리는 부딪혀서 넘어지면 일으켜주기도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경기를 치렀다. 분위기상 강하게 나가기가 어렵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대표팀 주장 손흥민은 “다치지 않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며 북한 선수들이 거칠었다고 평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현재 대표팀은 북한과 0-0으로 비기며 승부를 내지 못했다. 반면 박종환 감독이 이끈 29년 전 대표팀은 평양과 서울에서 이어진 2연전에서 1승 1패를 주고받았다. 팔순이 넘는 고령에도 여전한 승부욕을 자랑하는 박 감독은 “실력 면에서는 우리가 훨씬 나았다.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였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1승 1패라는 결과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박 감독은 “비겨주는 것으로 했던 게임”이라며 털어놨다. 이어 “자세히 어디서 지시가 내려왔는지 이야기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실력대로 해서 이길 수는 없는 분위기였다”면서 “원래는 한 골 넣으면 한 골 먹어주고 하려 했는데 북한이 그런 융통성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특별했기에 별다른 전술 지시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박 감독은 “선수들에게 특별한 주문을 안 했다. 전술이 없었다. 수비 때도 별다른 수비 전술이나 지역방어 없이 일대일 마크로 막으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평양 원정 1차전에서는 김주성의 선제골로 한국이 앞서 나갔지만 후반 페널티킥 2개를 내주며 1-2로 역전패했다. 심판마저 북측이 맡으며 석연치 않은 판정이 나온 것이다. 찜찜함을 남긴 경기와 달리 경기 외적으로는 남북 화해 무드가 반영됐다. 남북한 선수들이 숙소를 함께 사용하며 매번 식사도 함께 했다. 박 감독은 “식사를 할 때 북한 선수들은 어색해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그래서 우리가 재미있게 풀어나가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면서 “북한 선수들은 그런 호텔식 식사도 처음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중엔 적응을 했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도 함께 부르며 즐겁게 보내려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박 감독은 “북한 선수들이 마음 놓고 이야기하는 상황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그의 방북 기간 내내 북한 정부 측 인사가 북한 선수단 옆에 붙어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어 했지만 옆에 누군가가 있으니 북한 선수들은 딱딱한 대답만 하더라”라고 했다.
서울에서 열린 2차전에서는 북한 선수들의 다소 부드러워진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에선 워커힐 호텔에서 남북 선수들이 함께 지냈다. 이동할 때도 버스를 함께 탔는데 우리가 탄 버스에 팬들이 몰렸는데도 북한 선수들은 앞만 보고 딱딱하게 앉아있었다. 그러자 우리 선수들이 ‘북한 선수들에게 창밖에 보고 손 좀 흔들어 줘라’라고 하면 북한 선수들도 그제야 손을 흔드는 식이었다. 다른 자리에서도 조금 편안해진 것이 느껴졌다. 서울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보고 그 친구들도 조금은 달라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황해도 출신인 박종환 감독에게 이번 평양 원정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사진=임준선 기자
이번 평양에서는 경기 이외의 시간에도 북한 측의 철저한 선수단 통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숙소 이외에는 출입이 통제됐다. 통일축구대회 당시 선수단은 사정이 다소 나았다. 박 감독은 “우리도 절대 밖으로 나가지는 못했다”면서도 “그 때 호텔 지하에 백화점 같은 곳이 차려져 있어서 거기에 구경하러 많이 갔다. 그 유명한 옥류관에 단체로 가서 냉면도 먹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백화점에서 뭔가를 사지는 않았다. 영 살 게 없었다”며 웃었다.
29년만의 대표팀 방북에 이를 앞서 경험했던 박종환 감독의 머릿속에도 많은 추억들이 다시 스쳐지나갔다. 그는 “중계가 안 돼 경기를 보지 못했다는 점이 참 아쉽다. 이번 경기는 관중 문제도 그렇고 북한에서 정말 생각을 잘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더 많은 경기가 열려 교류가 확대되길 바라는 마음도 전했다. 그는 “친선전이든 정식 경기든 언젠가는 팬들도 왕래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도 건강관리 잘 하면서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