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BS는 히어로즈 구단 내부 회의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구치소에 있는 이 전 대표가 여전히 구단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사실을 알렸다. 구단도 이미 감사위원회가 진행 중이라며 어느 정도 사실을 인정했다. 논란이 불거지면 구단은 해명을 내놓고 개선을 약속한다. 이 전 대표와 그의 영향을 받고 있는 구단 관계자들이 보이는 행태다.
이장석 전 대표의 ‘옥중경영’ 실체가 드러난 이면에는 박준상 전 대표 측과 임은주 부사장 측의 ‘구단 내 헤게모니 싸움’이 있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구단 출범식에 나선 박준상 전 대표. 사진=연합뉴스
#이장석의 옥중 경영이 가능했던 배경
이 전 대표가 수감된 상태에서 구단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최대주주라는 신분 때문이다. 이 전 대표는 여전히 지분율 67.56%인 히어로즈 구단의 최대주주다. 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은 오래 전부터 이 전 대표와 지분 40%에 대해 다툼을 벌였다. 그동안 법원은 여러 판결을 통해 이 전 대표에게 지분 40%를 홍 회장에게 넘기라고 결정했지만 이 전 대표 측은 ‘법인 지분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미뤘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전 대표는 구치소 안에서도 자신의 측근인 박준상 전 대표와 임상수 변호사를 통해 구단 운영에 깊이 관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SBS는 방송을 통해 박준상 전 대표와 변호인 등이 KBO와 구단의 업무와 관련된 접견 금지 명령을 무시하고 교도소 면회를 통해 이 전 대표의 지시 사항을 경영에 반영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방송이 나간 후 히어로즈 구단은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9월 말부터 이와 관련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선수단에 악영향을 미칠까봐 조용히 진행했고 결과는 포스트시즌 이후 발표하기로 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 사이에 박준상 전 대표는 사임했고, 자문변호사 역할을 담당했던 임상수 변호사와 법률자문 계약이 해지됐다.
#임은주의 의혹 제기는 ‘자책골’?
이 전 대표의 옥중경영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배경에는 임은주 부사장의 의혹 제기가 있다. 임 부사장은 지난 9월 감사위원회에서 이 전 대표의 옥중경영 의혹을 제기했다고 한다. 임 부사장은 자신이 갖고 있는 녹음 파일을 근거로 박준상 전 대표와 임상수 변호사가 이 전 대표를 수시로 접견해온 것을 감사위원회에 알린 것이다. 당시 감사위원회 위원장은 하송 현 신임 대표였다. 하송 대표는 임 부사장의 의혹 제기에 감사를 착수했고, 임 부사장에게 녹취 파일 제출을 요구했지만 임 부사장이 차일피일 미루며 제출하지 않아 감사가 오래 걸렸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번에는 임 부사장도 옥중경영에 연루된 정황으로 직무 정지를 받았다. 히어로즈 구단은 지난 31일 “감사위원회의 감사 과정에서 임은주 부사장 역시 옥중경영에 참여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사안이 중대하고 시급해 임 부사장에게 직무정지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즉 구단 임원들의 옥중경영 의혹을 제기한 임 부사장도 옥중경영 연루자라는 것이다.
임은주 부사장(맨 오른쪽)은 박준상 부사장의 옥중경영 연루를 폭로했지만 자신도 이와 관련된 의혹에 휩싸이며 직무가 정지됐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야구장 방문 당시 사진. 왼쪽부터 전풍 두산 베어스 대표이사, 정운찬 KBO 총재, 박 장관, 박준상 대표, 류대환 KBO 사무총장, 임 부사장. 사진=연합뉴스
#구단 수뇌부의 헤게모니 싸움 때문?
임 부사장은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축구 심판 출신인 그는 2013년 강원 FC 대표이사로 부임해 K리그 사상 첫 여성 CEO로 활약하다 2017년 2월 FC 안양 단장을 거쳐 올 초 히어로즈 신임 단장으로 야구계에 등판했다가 축구단 단장 재직 시절 여러 송사와 의혹에 휩싸였던 점이 재조명되면서 열흘 만에 단장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그러나 단장 자리에서만 물러났을 뿐 부사장으로 재직하면서 구단 운영에 더 깊숙이 관여했다는 후문이다. 임 부사장은 열흘 동안의 단장직을 수행할 당시 ‘일요신문’과 인터뷰에서 이장석 전 대표의 ‘옥중경영’과 관련해 이런 생각을 들려줬다.
“밖에서는 이장석 전 대표가 히어로즈를 ‘옥중경영’한다고 알려졌는데 난 내 머리 위에 누군가를 두고 일 못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도지사, 안양시장도 나한테는 간섭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난 신념과 철학이 단단한 편이라 쉽게 타협하지 못하고 내 권한을 침범하는 행위도 용납하지 못한다.”
그러나 임 부사장은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과 달리 히어로즈 감사 과정에서 그 역시 이 전 대표의 옥중경영을 도왔다는 지적을 받았고, 직무정치 처분을 받았다. 히어로즈 구단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A 씨는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축구인인 임은주가 갑자기 히어로즈 단장으로 선임된 배경에는 이장석 전 대표의 지시가 있다. 단장 선임 뒤 여론이 안 좋아지자 부사장으로 보직을 변경했는데 그 또한 이 전 대표의 결정이었다. 이 전 대표로선 박준상 전 대표와 변호인 외에 임은주 부사장을 구단 경영에 내세우며 옥중경영을 해나가려 했던 것이다. 임 부사장은 그대로 다른 생각을 했다고 본다. 회사 경영이 박 전 대표와 변호인 위주로 흘러가는 걸 두고 볼 수 없다고 보고 회의 과정을 녹취했을 것이고, 그 녹취 파일을 자신의 무기로 갖고 있었는데 감사 과정에서 임 부사장이 이 전 대표의 옥중경영을 도운 게 나타난 것이다.”
A 씨는 이 전 대표가 구단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임 부사장을 직무정지는 시킬지언정 쉽게 버릴 수 있는 카드가 아니라고 말한다. 서로 이해 관계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하송과 허민도 이 전 대표의 최측근?
키움은 2018년 12월 KBO에 ‘경영 및 운영 관리 개선안’을 제출하면서 외부 인사인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이사를 사외이사(이사회 의장)로 영입해 팀 체질을 바꿔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허민 이사회 의장과 함께 히어로즈에 자리를 잡은 인물이 하송 대표다. 서울대 선후배 사이인 허민 의장과 하송 대표는 히어로즈의 ‘감시자’로 구단 경영에 개입한 케이스. 하 대표는 현재 소셜커머스 위메프 부사장이고, 위메프의 최대주주는 허민 의장이 이끄는 원더홀딩스다. 국내 최초 독립야구단인 고양 원더스 시절 구단주가 허민이었고, 대표가 하송이었을 정도로 두 사람은 사업과 야구단 운영과 관련해서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허민(사진) 의장과 그의 측근으로 알려진 하송 신임 대표도 이장석 전 대표의 옥중경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이들은 이 전 대표의 ‘옥중경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 대표는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이 전 대표와 거리를 뒀다. “나는 이장석 대표의 말을 들을 사람도 아니고, 조직적으로 엮여 있지도 않다. 야구단에서 나간다고 굶어 죽을 것도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야구계에서는 하송 대표의 구단 운영에 여전히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구단 경영 감시자 역할을 맡은 허민 의장이 자신의 최측근인 하송 대표의 구단 운영과 관련해 제대로 된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 때문이다. 앞에 언급했던 A 씨도 비슷한 의견을 나타냈다.
“이장석 전 대표의 옥중경영을 이전 감사위원장으로 있던 하송 대표가 몰랐을 리 없다. 어느 부분에서는 알고도 모른 척했다고 본다. 만약 언론에서 이 전 대표의 옥중경영을 터트리지 않았다면 당시 하송 감사위원장이 이 내용을 정확히 언론에 알렸을까 싶다. 그런 사람들이 박 전 대표와 임 변호사가 물러난 뒤 감시자에서 경영자로 위치가 바뀌었다. 야구단이 구멍가게도 아닌데 이들의 행태는 마치 구멍가게 운영보다 못하다. 이 전 대표가 없는 구단 운영과 관련해 히어로즈 수뇌부의 헤게모니 싸움이 치열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일련의 일들은 그걸 입증하는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KBO는 히어로즈 구단으로부터 경위서를 받고 사실 관계를 확인해 상벌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무리 징계를 내려도 개의치 않고 지속적으로 일탈 행위를 벌이는 히어로즈 수뇌부에 대해 야구인들은 성토를 하고 나섰다. 구단 자정 능력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이 전 대표가 구단을 매각하거나 히어로즈를 퇴출시키는 등의 강력한 제재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비슷한 일탈이 반복될 것이라는 것. KBO가 상벌위원회를 통해 어떤 결론을 도출할지 궁금하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