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중학교 시절 졸업사진. 오른쪽 빨간 동그라미 안에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사람이 이춘재다. 사진=박현광 기자
조작된 허위자백은 범행 현장에서 생겨난 의혹과 반드시 충돌한다. 반면 진정한 자백은 수사 과정에서 알 수 없는 사실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특징을 가진다. 이를 ‘비밀의 폭로’라고 한다. 진범의 자백은 수사 과정에서 구타, 고문 등 가혹행위로 허위자백한 뒤 누명을 쓴 ‘사법 피해자’가 재심 청구할 때 결정적 증거가 된다.
재심 청구 끝에 무죄를 받은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과 ‘완주 삼례 나라슈퍼 3인조 살인사건’에서 또한 진범의 자백이 주효했다. 약촌오거리 사건과 삼례 나라슈퍼 사건에서 진범과 사법 피해자의 당시 진술서를 확보해 비교해봤다. 비밀의 폭로와 허위자백 사이에 간극은 확연하다.
#약촌오거리 살인 “칼끝에 갈비뼈가 걸렸다”
2000년 8월 새벽 2시께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 유 아무개 씨가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옆구리, 오른쪽 어깨, 가슴 등 12군데를 흉기로 무참히 찔려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익산경찰서는 사건 현장에서 범인 도주를 목격한 다방 오토바이 배달원 당시 15세 최 아무개 씨를 용의자로 지목해 살인 혐의로 체포한다. 최 씨는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10년 만기 출소했다.
하지만 사건 발생 3년 뒤인 2003년 6월 진범 김 아무개 씨가 나타난다. 군산경찰서는 김 씨를 살인 혐의로 체포한다. 당시 김 씨를 숨겨준 친구 임 아무개 씨도 범인은닉 혐의로 함께 체포됐다. 김 씨와 임 씨는 범인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내용을 진술하며 자백한다.
2016년 11월 광주고등법원에서 열린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최 아무개 씨와 그의 어머니. 어머니가 최 씨 팔에 기대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결정적인 진술 중 하나가 “쇄골 부위를 찌르자 칼끝에 뼈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는 말이었다. 김 씨는 2003년 6월 첫 경찰 조사에서 “택시기사를 보니까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 같아 제가 제 왼팔로 택시기사 왼쪽 어깨 옷을 잡고 오른손으로 잡고 있던 칼로 오른쪽 목 밑 쇄골 부위를 찌르자 칼끝에 뼈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으며 칼로 찌른 후부터는 택시기사에게 붙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는 마구 찔렀는데 어디를 몇 번을 찔렀는지 기억에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피해자 시신의 상태와 맞아떨어졌다. 부검 결과 택시기사 유 씨 시신의 두 개의 갈비뼈는 부러진 상태였다. 김 씨가 범행에 쓴 흉기를 직접 본 친구 임 씨의 진술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임 씨는 경찰 조사에서 “칼끝이 휘어져 있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누명을 쓴 최 씨 진술에선 비슷한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최 씨는 2000년 8월 첫 경찰 조사에서 범행 수법에 대해 “피해자 우측 옆구리를 3회 찌르자 피해자인 운전기사가 택시 운전석으로 도망하여 제가 택시 조수석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아 운전석에서 무전기를 들고 ‘약촌오거리 강도야’라고 말하는 피해자의 우측 어깨 부위를 5회, 우측 옆구리를 3회 우측 안면 얼굴 부위를 1회 힘껏 찌르고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게 도망“했다고 진술했다.
최 씨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오른손에 든 칼로 상대방 오른쪽 옆구리를 찔렀고, 택시로 도망가는 피해자를 쫓아 옆자리인 조수석에 탔다. 피해자의 어느 부위를 몇 회 찔렀는지 정확히 기억했다. 하지만 칼끝에 뼈가 걸렸다는 내용은 없다. 긴박한 상황에서 찌른 부위를 정확히 기억한다는 부자연스러운 진술은 이후 네 차례 조사를 더 받으면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수회 찔렀다”로 수정된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 “문 열려 있었다”
1999년 2월 새벽 2시경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한다. 이들은 잠들어 있던 박 아무개 씨와 아내 최 아무개 씨를 흉기로 제압하고 금품을 강탈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유 아무개 할머니(당시 77세)를 질식해 사망에 이르게 한다. 완주경찰서는 엄마가 없고 지적장애가 있는 세 명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세 명의 용의자는 최종 3~6년 징역을 선고받았다.
세 명 용의자의 진술에 따르면 이들은 닫힌 대문을 열기 위해 한 명이 담을 넘어 문을 열었고, 마당을 지나 첫 번째 문을 열 땐 드라이버와 ‘뿌라야’를 사용해 따고 들어갔다. 패물과 현금 45만 원을 훔쳐서 나왔다.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삼례 나라슈퍼 살인사건 3인조가 2016년 10월 28일 전주지방법원 법정을 빠져나오고 있다. 왼쪽부터 임명선, 강인구, 최대열 씨다. 사진=연합뉴스
누명 쓴 세 명 중 강인구 씨와 최대열 씨는 1999년 2월 경찰 조사에서 이렇게 진술한다. 강인구 씨는 “손으로 밀었는데 대문이 열리지 않자 (임)명선이가 대문 옆에 있는 담을 넘고 저희들은 망을 보았는데 담을 넘어 들어간 명선이가 안에서 대문을 열어주어 밖에서 망을 보던 저희들이 열린 대문을 통해서 마당으로 들어(갔다)”라고 말한다.
최대열 씨는 “농과 궤짝 안에 있던 현금통을 뒤져 저는 현금통 안에 있던 돈 45만 원 정도 되는 만 원권과 천 원권을 들고 나왔고 인구는 농 안에 있던 현금과 목걸이와 또 베개 안에 있던 팔찌와 반지를 들고나왔다”고 답했다.
3인조 진술은 슈퍼를 운영하던 피해자 최 씨의 말과 충돌했다. 최 씨는 경찰 조사에서 “대문은 고장 나서 잠기지 않는 상태”였다는 말했다. 담을 넘었다는 3인조 진술과 배치된다. 또 최 씨는 45만 원을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현금 30만 원이 점퍼 주머니에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 씨가 강도당한 현금은 15만 원가량이었다. 하지만 3인조는 ‘의심받지 않고’ 옥살이를 한다.
사건 발생 약 10개월 뒤 부산지방경찰청은 진범으로 보이는 조 아무개 씨, 이 아무개 씨, 배 아무개 씨 등 세 명을 검거했다. 3인조는 경찰 조사에서 슈퍼 주인 최 씨의 진술과 일치하는 자백을 한다. 뒤늦게 잡힌 3인조 가운데 한 명인 이 씨는 2000년 1월 부산지방검찰청 조사에서 “열린 대문을 통하여 들어갔으며, 그다음에 부엌문을 힘껏 잡아당기니 그냥 힘없이 열려 부엌으로 들어(갔다)”고 답한다.
또 이 씨는 “결혼예물로 보이는 여자용 반지, 팔찌, 목걸이 한 세트와 남자용 반지 등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천 원권 지폐와 만 원권 지폐를 조 아무개로부터 배 아무개가 받아 그의 호주머니 안에 넣었는데, 천 원권 지폐가 많았으며 당시 만 원권 지폐는 2장인가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며 그 액수는 10여만 원 정도였다”고 말한다.
#이춘재의 ‘비밀의 폭로’
약촌오거리 사건과, 삼례 나라슈퍼 사건에서 진범의 자백과 같이 이춘재는 화성 8차 사건을 두고 범인만 알 수 있는 내용을 자백했다고 확인된다. 최근 경찰이 공개한 현장 사진에 따르면, 당시 13세 중학생이었던 강간살해 피해자 박 아무개 양은 발견 당시 의복이 정갈하게 입혀져 있었다. 이를 두고 이춘재는 ‘유의미한 자백’을 했다고 알려진다.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0년을 복역한 윤 아무개 씨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가 10월 30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8차 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0년 옥살이를 한 윤 아무개 씨는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윤 씨의 재심을 담당하는 박준영 변호사는 10월 30일 “사건을 경험한 범인만 알 수 있는 ‘비밀의 폭로’가 있다”며 “이춘재의 자백은 물증이 필요 없고 반박조차 불가능한 굉장히 의미 있는 자료”라고 밝혔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