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19-2020 KBL 신인드래프트는 41명의 참가자 중 22명이 지명돼 지명률 53.7%를 기록했다. 사진=KBL
#최종 취업 관문에 쏠린 눈길
41명의 참가자는 대부분 10년 이상 농구를 해온 선수들이었다. 농구 선수로서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을지 판가름나는 자리, 본격적인 행사 시작을 앞두고 긴장감이 맴돌았다. 현장을 찾은 참가자들은 물론, 이들의 가족과 학교 선후배들도 긴장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대학농구 팬들도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들의 ‘취업’을 기원하며 현장을 찾았다.
KBL 10개 구단 감독과 관계자들에게도 중요한 순간이었다. 팀의 빈자리를 메우거나 향후 10년 이상 팀을 이끌 선수와 인연을 맺는 자리기 때문이다.
이번 드래프트의 특징은 빅맨 자원들이 두드러진다는 점이었다. 특히 고려대 출신 박정현(202.6cm), 연세대 김경원(198.1cm), 성균관대 이윤수(202.7cm), 경희대 박찬호(200cm)는 ‘빅4’로 불리며 기대를 모았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1라운드
앞서 지난 10월 28일 진행된 드래프트 순위 추첨 행사에서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현주엽 감독이 이끄는 창원 LG가 낮은 확률을 뚫고 1순위의 행운을 안았다. 공교롭게도 LG는 에어컨 리그에서 빅맨 김종규를 FA로 잃어 빅맨들이 대거 쏟아지는 이번 드래프트와 상황이 맞아떨어진다.
이번 시즌 영광의 전체 1순위 주인공은 고려대 빅맨 박정현(왼쪽)에게 돌아갔다. 오른쪽은 2순위 연세대 김경원. 사진=KBL
현주엽 LG 감독의 선택은 역시 빅맨이었다. 현 감독은 유력 1순위 후보로 꼽히던 박정현의 이름을 단상에서 외쳤다. 2순위 안양 KGC는 김경원을 선택했다. 김승기 KGC 감독은 팀 유니폼에 미리 새겨온 김경원의 이름을 내보이기도 했다.
예상대로 흘러간 1, 2순위를 지나 3순위에서는 잠실학생체육관을 울리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상민 서울 삼성 감독 입에서 나온 이름은 김진영이었다. 김진영은 3학년을 마치고 드래프트 무대에 나선 얼리 엔트리(조기 진출) 참가자다. 드래프트 이전부터 한국 농구 레전드 김유택 SPOTV 해설위원의 아들로도 관심을 받았다.
4, 5순위에서도 함성이 울렸다. 추일승 고양 오리온 감독은 비교적 선수층이 얇은 가드진을 메우기 위해 전성환을 선택했고 문경은 서울 SK 감독은 또 다른 조기 진출자인 안양고 김형빈을 뽑았다. 대학농구 ‘비주류’로 꼽히는 상명대 출신인 전성환은 상명대 역대 최고 순위 지명자로 이름을 남겼다. 김형빈은 SK 입단과 동시에 KBL 최연소 선수가 됐다. 대학 진학 대신 프로 진출을 선택해 눈길을 끌었다. KBL 최초 2000년대 출생(2000년 6월 5일 출생) 선수다.
2019-2020 KBL 신인드래프트 결과. 지명된 선수들의 이름이 빼곡한 1, 2라운드와 달리 3, 4라운드에선 구단들이 신인 지명을 대거 포기했다. 사진=KBL
#차갑게 얼어붙은 3라운드
2라운드 9순위였던 KGC를 제외하면 각 구단이 2명씩 선수를 선택했다. 선수 이름이 불릴 때마다 환호가 이어졌다. 특히 구단과 학교 관계자, 드래프트 대상 선수들과 부모들이 자리한 체육관 1층보다 관객석이 활기를 띠었다. 각 학교 선수들과 팬들이 무리지어 자리를 잡았기에 자신의 학교 선수가 호명되면 특히나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4라운드 9순위로 ‘프로행 막차’를 탄 KGC 박건호는 지명 소감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쏟았다. 사진=KBL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던 드래프트는 3라운드로 접어들면서 급격히 얼어붙었다. 대다수 팀들이 선수 지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3라운드에서 선수를 선발한 팀은 KGC와 전주 KCC뿐이다.
4라운드 분위기는 더 암울했다. 1순위 울산 현대모비스부터 8순위 삼성까지 모든 팀이 지명을 포기했다. 드래프트가 이대로 끝나는 듯했다. 이때 흐름을 깬 팀은 KGC였다. 중앙대 박건호(198.8cm)가 프로 타이틀을 얻은 이날의 마지막 주인공이 됐다. 중계 스크린에 잡힌 그의 어머니는 이날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드래프트 행사장을 찾은 스타들
이날 드래프트에는 이미 KBL 무대에서 활약 중인 선배들이 현장을 찾아 새내기들의 첫 걸음을 지켜봤다. 2015-2016 고교 졸업과 함께 프로에 직행하며 얼리 엔트리 열풍의 신호탄이 된 송교창도 드래프트 현장에 나타났다. 이미 프로에서 4시즌을 경험한 송교창은 이제야 학창시절 동기생들을 프로에서 만나게 됐다.
그는 이날 행사를 지켜본 소감으로 “팀별로 필요한 포지션에 친구들이 잘 찾아간 것 같다”면서 “우리 팀에 또래 선수가 와서 같은 팀으로 생활하게 돼 흥미롭다”는 말을 남겼다. KCC가 2라운드에서 지명한 곽동기는 송교창과 삼일상고 동기다. 이에 그는 “지내다보면 옛날 생각 많이 날 것 같다. 잘 맞는 부분이 많은 친구라 좋은 장면을 많이 연출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인천 전자랜드의 두 외국인 선수는 드래프트 현장을 찾아 신인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사진은 머피 할로웨이(왼쪽)와 양재혁. 사진=KBL
전자랜드의 지명을 받고 무대에 선 양재혁과 박찬호는 입단 소감을 말하기에 앞서 팀 선배들로부터 꽃다발을 건네받는 추억을 남겼다. 전자랜드의 두 외국인 선수 머피 할로웨이와 섀넌 쇼터가 현장에 나타난 것이다. 이들은 소속 선수가 지명될 때마다 무대에 올라 꽃을 건네고 자신의 휴대전화로 ‘셀카’를 찍는 모습을 연출해 지켜보는 이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소속팀의 별칭 ‘감동랜드’로서의 면모를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