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람 등급을 둘러싼 문제는 오랜 기간 반복돼왔다. 무리하게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내려 영화 흥행을 저해한다는 지적을 넘어 요즘은 “너무 느슨하게 적용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소위 ‘고무줄 등급’이라 불리는 영화 등급 심의,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사진=영화 ‘조커’ 홍보 스틸 컷
#살인하고, 야해도 ‘15세’면 봐도 된다?
‘조커’는 미국에서 R등급 판정을 받았다. 제한된(Restricted) 관람 등급인 R등급 딱지가 붙으면, 17세 미만 관객은 부모를 비롯한 성인을 동반해야 극장에 들어갈 수 있다. 통상적으로 미국 영화 시장이 한국에 비해 표현의 자유가 높고, 성과 범죄에 대한 표현 수위가 높은 것을 고려할 때 국내에서 ‘조커’가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은 것으로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한국 영화 최초로 지난 5월 열린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도 마찬가지다. 빈부격차를 지하와 반지하 등 상징성 있는 공간으로 표현한 이 영화 역시 ‘조커’와 마찬가지로 계층 간의 차이를 노골적으로 그린 주제의식을 고려할 때 15세 관람가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또한 등장인물 간 살해 장면과 성적 수위가 높은 장면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어야 한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기생충’은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은 후 10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결국 이 문제는 지난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생충’에 대해 “작품성이 있는 영화지만 관람등급이 15세인 게 적절한지 논란이 일고 있다”며 “최근 3년 동안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의 비율은 감소하는 반면 15세 이상은 증가하고 있다. ‘15세 이상’이 관객동원이 훨씬 쉽다는 것을 고려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사진=영화 ‘기생충’ 홍보 스틸 컷
반면 국내와 해외의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박도 있다. 미국 사회가 ‘조커’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며 R등급을 매긴 이유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캐릭터인 조커가 등장하는 또 다른 영화인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 상영 당시 미국 콜로라도 한 극장에서 “나는 조커다”라고 외친 한 남성이 총기를 난사해 1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래서 ‘조커’ 상영 때는 관객이 가면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이 영화가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에게 당위성을 부여하기에 현실 속 범죄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개인의 총기 소지가 허용된 미국 사회의 특수성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한국에 똑같이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나오기 했다.
한 영화 관계자는 “문화 콘텐츠가 사회를 반영하기는 하지만 어떤 문제를 야기한다고 직접적으로 연결 지어 설명하면 곤란하다. ‘조커’는 15세 이상 되는 대중이면 누구나 이해할 만한 내용을 갖춘 완성도 높은 콘텐츠라 보는 것이 옳다”고 말하면서도 “중요한 건 관람 등급의 기준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모든 콘텐츠에 일관성 있게 적용돼 관람 등급이 매겨진다면 논란도 사그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관람 등급, 무슨 기준으로 정하나
한국 영화 등급은 영등위에서 매긴다. 전체, 12세, 15세 관람가를 비롯해 청소년관람불가와 제한상영가 등 5단계다. 제한상영가를 받으면 전용 극장에서만 상영할 수 있는데 국내에는 전용관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상영 불가 판정이다. 배우 최민식, 이병헌이 주연한 영화 ‘악마를 보았다’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아 편집을 거쳐 청소년관람불가로 바뀐 적이 있다.
평가 항목은 주제(유해성 등), 선정성, 폭력성, 대사(저속성 등), 공포, 약물, 모방위험 등이고 표현수위는 매우높음, 높음, 다소높음, 보통, 낮음 등 역시 5단계로 점수가 매겨진다. 이 중 단 1개의 항목에서라도 ‘높음’ 판정이 나오면 청소년관람불가 영화가 된다. ‘기생충’을 기준으로 보자면 약물 항목만 ‘보통’이고 나머지 항목은 모두 ‘다소높음’ 판정을 받았다. ‘조커’의 경우는 선정성 항목만 ‘보통’이고, 나머지는 모두 ‘다소높음’이다.
사진=영화 ‘독전’ 홍보 스틸 컷
이런 기준을 모두 초과할 만한 표현 수위를 갖췄음에도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아 관람 등급 논란을 일으킨 영화는 지난해 개봉된 ‘독전’이었다. 이 영화는 마약의 제조 및 복용 과정이 아주 상세히 묘사되고, 등장인물의 손이 잘리는 폭력적 장면도 포함됐다. 게다가 여성의 가슴이 고스란히 노출되지만 15세 관람가 영화로 인정받았다. 결국 이 영화는 520만 관객을 모아 흥행에 성공했다.
‘독전’은 영등위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됐다.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은 “‘독전’ ‘기생충’ ‘곡성’은 일반인들이 더 높게 등급을 매기라고 했다. 표현의 자유나 예술성을 너무 강조하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영화 관계자는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은 ‘독전’은 관람 등급 논란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며 “한번 기준이 흔들리면 다른 영화를 심의할 때도 공평한 잣대를 들이밀 수 없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보다 명확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