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아파트 화재 때 두 모자가 가정집 냉장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검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화재 연기에 의한 질식사다. 하지만 연기를 마시고도 냉장고에 누워 있었다는 점에서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사진=박현광 기자
이번 사건을 수사한 충남서북경찰서 관계자는 “두 시신에서 외상이나 약물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정신이 깨어있을 때 연기를 마셔서 사망했다고 보인다. 두 사람이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판단하고 내사 종결 처리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화재 연기를 마시고도 고통에 몸부림치지 않고 냉장고 속에 가만히 누워있었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는다. 불이 나서 발생하는 연기는 번개탄을 피워서 생기는 일산화탄소를 마시는 것과는 다르다.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9월 충남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이 잡힌 뒤 집 안에 있던 냉장고에서 어머니와 아들의 시신이 나왔다. 양문형 냉장고는 전원 플러그가 뽑힌 채 하늘을 보고 누워 있었고 문이 열려 있었다. 내부 구조물이 제거된 냉장고의 냉장실에선 어머니가, 냉동실에선 아들이 발견됐다. 두 시신은 겉면만 그을린 상태였고, 외상은 없었다(관련 기사 “인정 많았는데 한달 전 돌변” 천안 화재 ‘냉장고 모자 시신’ 미스터리)
외부인 침입 흔적은 없었다. 현관문 잠금장치 세 개가 모두 안에서 잠겨있었고, 현관문 틈에 청테이프가 부착돼 있었다. 잘린 도시가스 밸브에선 가스가 새고 있었다. 발화지점은 집안이었다. 경찰은 아파트 CCTV(폐쇄회로화면)를 분석해 아들이 전날 오후 6시 16분쯤 인화 물질이 담긴 통을 들고 집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확인했다.
절단된 문 사이로 보이는 집 안. 사건 두 당사자는 생계를 걱정할 만큼 궁핍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박현광 기자
사건 두 당사자는 생계를 걱정할 만큼 궁핍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남편이자 아버지인 A 씨(65)와는 2002년부터 17년 동안 따로 살며 거의 왕래가 없었지만 A 씨는 최근까지 아내와 아들에게 매달 150만 원 정도를 생활비로 보내줬다. 이들이 살던 아파트는 32평(105.8㎡)으로 이 동네에선 “잘 갖춰진 아파트”로 통했다.
사건 초기 아들이 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어머니를 살해한 뒤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앞집 주민은 “사건 한 달 전부터 집 안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부검 결과 두 시신에서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타살이 아니라면 사건 당사자는 방화 직전 약물을 복용해 인사불성 상태에서 화재 연기를 흡입해 질식사했을 가능성이 가장 유력해 보였다. 바닥에 뿌려놓은 휘발성 물질에 일정 시간이 흐른 뒤 불이 붙게 하는 지연 장치를 만들어 활용했다는 추측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시신에서 약물이나 알코올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 발표를 종합하면 어머니와 아들은 냉장고 문을 열어둔 채로 냉장고 속에 누웠고, 방화한 뒤 연기를 마시고 질식사한 셈이다. 연기를 마시고도 가만히 누워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지점이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의식이 전혀 없거나 몸을 아예 못 가누는 정도가 아니고선 연기를 마시고 가만히 있을 수 있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경찰 발표가 현장과 명확히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현장 조사를 위해 경찰 과학수사대를 비롯한 감식팀이 화재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방재안전관리연구센터장을 역임한 조원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다른 설명을 내놓았다. 조원철 교수는 “냉장고 문을 닫고 들어가서 연기를 마시기 전에 질식 상태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있다. 냉장고 속 산소는 생각보다 부족하다. 의식이 없을 때 연기를 마셨다면 무의식적으로 몸부림쳤을 테고, 그 과정에서 냉장고 문이 열렸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
한편 일요신문은 목숨을 잃은 모자의 유가족인 A 씨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사건 초기 아무런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경찰의 사인 발표가 있었던 10월 28일 다시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A 씨는 번호를 바꾼 상태였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