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연이어 미국의 거물급 인사들을 영입하는 이유에 대해 나스닥 상장이나 매각을 위한 포석 아니냐는 시나리오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쿠팡은 지난 6일 나이키와 월마트, 딜로이트 출신 재무 전문가 마이클 파커를 최고회계책임자(CAO)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파커 CAO는 쿠팡 합류 직전 나이키에서 부사장으로 재임하며 외부 회계감사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보고를 담당했다. SEC는 미국 증권 업무를 관리·감독하는 최고기구로, 미국 증시에 상장하려는 기업들은 SEC에 기업공개(IPO·상장) 신청서를 제출해 심사받아야 한다. 파커 CAO는 앞서 월마트에서 근무하며 부패 방지용 재무 통제 시스템을 도입했고, 그보다 앞서는 딜로이트 뉴욕 본사에서 감사 서비스 시니어 매니저 등을 역임하며 12년간 일했다.
쿠팡의 거물급 해외 인사 영입은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다. 쿠팡은 지난 3월 미국 월마트 부사장을 지낸 법률 전문가 제이 조르겐센을 법무·컴플라이언스 최고책임자로 앉혔다. 지난 10월에는 케빈 워시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를 모회사 쿠팡LLC의 새 이사회 멤버로 영입했다. 워시 이사는 2017년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 이후 의장 후보로 거론되던 금융계 거물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연준 이사 시절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걸쳐 주요 20개국 정상회담의 대표단으로 활약했고, 연준 이사회를 대표해 아시아 신흥 및 개발국 경제특사로도 임명된 바 있다. 미국 대통령실 경제정책 특별보좌관과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수석보좌관을 역임했다.
업계에서는 쿠팡의 잇단 해외 인사 영입이 나스닥 상장을 위한 포석이라고 본다. 누적된 적자로 신규 투자가 시급한 쿠팡이 자금 수혈을 위해 나스닥 상장을 서두른다는 관측이다. 쿠팡은 2017년 6389억 원, 2018년 1조 97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거듭 적자를 내고 있다.
쿠팡이 의지해온 소프크뱅크 비전펀드 상황도 좋지 않다. 쿠팡LLC 최대주주인 비전펀드는 2015년 이후 쿠팡에 3조 원가량 투자해왔으나 추가 자금 투입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우버와 슬랙이 상장 이후 주가가 떨어지고, 위워크도 실적 악화로 최근 상장에 실패하는 등 주요 투자 기업이 부진을 겪으면서 입지가 좁아진 탓이다. 실제 6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이날 실적을 발표하면서 비전펀드 사업 손실로 올 3분기 영업손실이 7001억 엔(약 7조 4452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3분기 5264억 엔(약 5조 5980억 원)의 흑자를 낸 것과 대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은 한국 시장 이해도가 높은 로컬 인사보다 미국 증시와 재무상황을 잘 아는 해외 전문가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 영향력을 활용해 쿠팡의 상징성과 신뢰도를 끌어올려 더 유리한 방향으로 나스닥 상장을 도모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최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사우디아라비아 포럼에서 연설할 때 행사장이 텅텅 빌 만큼 신뢰도가 흔들리고 있는데, 만년 적자 쿠팡에 추가 투자가 가능하겠느냐는 의견이 많다”며 “투자 유치가 시급한 상황에서 미국 재무전문가들을 잇달아 영입하는 건 나스닥 상장을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고 말했다.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도 “쿠팡은 적자 규모가 크고 당장 수익성이 없어 코스닥 시장에서는 투자자 모집이 어렵고 요건에도 맞지 않겠지만, 미국 증시는 미래 성장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분위기가 있어 유리할 것”이라며 “미국의 영향력 있는 유명 인사를 영입하면 투자자들을 더 잘 설득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작용한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편으로는 매각설도 급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 이커머스 기업들은 11번가와 이베이코리아 이외에 대부분 적자를 보는 상황으로, 영업손실이 1조 원을 넘어서는 쿠팡을 인수할 만한 상황이 못 된다. 앞의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기업 중에는 쿠팡을 인수할 만한 후보가 없는 반면 아마존은 한국에 진출하지 않고 있으니 매각설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쿠팡이 미국의 거물급 재무·회계·금융 전문가들을 영입하면서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오른쪽부터 마이클 파커 최고 회계책임자(CAO), 케빈 워시 쿠팡LLC 이사회 이사, 제이 조르겐센 법무·컴플라이언스 최고책임자. 사진=쿠팡
일각에서는 거물급 인사 영입 주체가 소프트뱅크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한다. 로켓배송 등으로 유통업계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혁신성은 인정할 만하지만 시장점유율이 10%도 채 안 되는 기업이 미국 거물급 인사를 영입하기란 상식적으로 쉽지 않다. 또 블룸버그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 위주로 소프트뱅크의 자산 상각 계획이 보도되는 등 비전펀드가 손실이 나자 부실기업에 대한 자산을 빼내고 있는 상황이다. 매각이든 상장이든, 투입한 투자자금을 효율화하기 위해 쿠팡 내부 사정과 실상을 면밀히 파악하려는 것 아니겠느냐는 의견이다.
유통업계 고위 관계자는 “아무리 글로벌 기업 근무 경험이 있다고 해도 한국 시장 및 실무 이해도가 낮은 외국인을 계속해서 끌어들이는 것은 의문”이라며 “다른 목적을 가지고 군불을 때는 것 아닌가 싶다”며 “쿠팡에 계속 투자했지만 외형적 매출만 늘고 적자는 커진다는 사실이 입증된 만큼 볼륨만 키우는 전략에서 벗어나 비용 효율화를 도모하는 차원으로도 보인다”고 분석했다.
상장이든 매각이든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이란 시각도 있다. 비전펀드 투자기업의 최근 실적이 좋지 않아 신뢰도가 흔들리고 있다. 앞의 IB업계 관계자는 “위워크 상장도 무산된 마당에 그보다 규모가 작고 흑자전환도 못한 쿠팡이 상장하기엔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매각설의 경우에도 해외 기업들이 탐낼 만큼 쿠팡이 매력적인 매물이 아닐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커머스업계 다른 관계자는 “쿠팡은 많은 자금을 투자해야 하는 구조인 데다 큰 적자와 대규모 인력까지 감당해야 하기에 아무리 글로벌 대기업이라고 해도 인수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등 한국 시장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쿠팡의 성장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해외 인사 영입을 둘러싼 갖가지 해석에 대해 쿠팡 관계자는 “회사가 계속 커가는 만큼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는 차원이지 나스닥 상장이나 매각과 무관하다”고 답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