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철 라인을 두고 당 일각에선 경계론이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발원지는 친노무현계 중진그룹이다. 이해찬 지도부 책임론을 둘러싼 당내 역학 구도에서 이 의원은 돌격대장을, 양 원장은 뒷배 역할을 각각 맡고 있다는 게 철철 경계론의 핵심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지도부 책임론을 둘러싼 당내 역학 구도에서 이철희 의원은 돌격대장을, 양정철 원장(사진)은 뒷배 역할을 각각 맡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해찬 사퇴론 물꼬가 터졌던 10월 중순 이후 친노 중진그룹 일각에선 ‘철철을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철철을 이해찬 지도부를 흔드는 배후로 사실상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민주당은 10월 24일 민주연구원이 정책홍보 목적으로 기획한 유튜브 ‘의사소통TV’ 첫 방송에 양 원장과 이 의원이 특별 출연한다고 전했다.
철철 연대 시나리오의 주 내용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 2선 후퇴 △이낙연 국무총리 조기 등판 △양정철 중심의 총선 전략 기획 △이철희 총선 역할 후 청와대행 등으로 요약된다. 철철 연대의 물꼬 트기는 ‘이해찬 간판으로는 어렵다’는 당 안팎의 여론 수위가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분기점은 이낙연 역할론 현실화다. 두 시나리오가 일사천리로 이뤄진다면, 철철 연대의 활동 공간은 한층 넓어진다.
조짐은 심상찮다. 11월 정국 들어 여권 내 수도권과 PK(부산·울산·경남) 의원들은 ‘이낙연 조기 등판론’에 불씨를 댕겼다. 시기는 12월 선거대책위원회 출범 때다. 명분은 ‘이해찬 한계론’, 실익은 외연 확장을 통한 ‘총선 승리’다. 이 경우 양 원장은 민주당 총선 전략을 총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양정철발 모병제 총선 공약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이 의원은 청와대 차기 정무수석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최근 청와대 안팎에선 강기정 정무수석의 총선 출마 여부가 이르면 12월 중순께 결정될 것이란 얘기도 돌았다. 강 수석 발탁 당시 이 의원도 유력한 정무수석 후보였다. 때마침 강 수석이 11월 2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 때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설전을 벌이면서 국회 파행의 주범으로 전락, 여권 내부에서조차 ‘강기정 경질 불가피론’이 나온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이 의원이 집권 중후반기 BH(청와대)로 가는 그림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해찬 사퇴론과 철철 경계론을 연결하는 고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조 전 장관 사퇴 이후 친문재인 지지층에게 ‘퇴진하라’는 문자 폭탄을 받았다. 이 대표 등 일부 인사가 조국 사퇴를 주도했다는 설이 퍼지면서 친문 지지층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사퇴론을 일축했던 이 대표는 11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정기국회가 끝나면 본격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직접 총선을 이끌겠다는 시그널을 보낸 뒤 40분 만에 의총 자리를 떴다.
이 대표의 정면돌파로 사퇴론은 다소 수그러들었다. 쇄신파의 지도부 책임론도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김부겸 민주당 의원 등 영남권 인사들은 “민심이 심상찮다”며 이 대표 등에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별다른 쇄신책 없이 “총선 인재영입을 직접 맡겠다”며 마이웨이를 택했다.
문 대통령 복심인 양 원장은 ‘조국 카드’가 부상했을 당시 물밑에서 강력하게 천거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조 전 장관과 양 원장은 일본 수출 규제 초창기 때 ‘항일전’을 주도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조 전 장관은 7월 13일 ‘죽창가’를 시작으로, 불과 10여 일간 40여 건의 글을 쏟아내며 페이스북 항일전을 전개했다.
양 원장도 가세했다. 그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7월 26∼27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 ‘총선 영향은 (민주당에) 긍정적’이라는 내용의 ‘한·일 갈등에 관한 여론 동향’ 보고서를 같은 달 30일 당 소속 의원 128명에게 보내 파장을 일으켰다. 자유한국당 한 의원은 “죽창가 등을 외친 것은 총선을 노린 정략적 목적이 아니냐”며 해임을 촉구했다. 양 원장의 튀는 행보에 화들짝 놀란 이 대표는 당시 비공개회의에서 양 원장에게 ‘옐로카드’를 주기도 했다.
이철희 민주당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친노 중진그룹에서 철철 경계론이 흘러나온 것도 이쯤이다. 하지만 초선발 쇄신은 여권의 자중지란으로 확전하지는 않았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30%대로 추락했던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반등한 데다, 당·청 갈등으로 정권을 내준 ‘열린우리당 트라우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당 한 의원은 “당에 열린우리당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했다. 초선발 쇄신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당 내부 갈등은 언제든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대표가 이철희 표창원 의원을 따로 만난 10월 28일 이후 지도부 사퇴론은 확전을 피했지만, 당 쇄신 요구는 한층 거세졌다. 이 의원은 11월 3일과 5일 SBS뉴스 ‘김현우의 취조’와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각각 출연해 “불출마 선언을 뒤따를 의원이 15~20명은 된다”, “단 1명이라도 물러나야 한다고 얘기하면 그 요구에 대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이 대표를 압박했다.
‘사퇴 요구는 극소수’라고 일축한 이 대표를 정면 비판한 것이다. 이 의원은 ‘질서 있는 쇄신’을 요구하면서도 이해찬 사퇴에 대해선 “합법적인 절차 없이 그만둬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친노 중진그룹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 ‘이해찬 흔들기’에는 선을 그은 셈이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이 대표와 철철의 역학 관계다. 이들의 힘의 균형은 리스크 국면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헛발질하는 쪽이 자멸한다는 얘기다. 이 대표를 둘러싼 환경은 첩첩산중이다. 청와대에서 이 대표 존재를 부담스러워한다는 얘기도 그치지 않는다. 반면 이낙연 역할론은 점점 커지고 있다. 임기 반환점 전후로 원조 친문인 ‘3철의 존재감’은 한층 뚜렷해졌다. 양 원장은 복수 관계자들이 꼽은 내년 4·15 총선 이후 전면에 나설 1순위 인사다. 부산 출마를 준비 중인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10월 29일 문 대통령 모친상 당시 문 대통령과 가장 먼저 만났다. 전해철 민주당 의원은 ‘포스트 조국’ 후보자로 거론된다.
이 대표도 국면전환 카드를 꺼냈다. 민주당은 친문계인 윤호중 사무총장을 비롯해 양 원장, 윤관석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금태섭 의원 등 15명을 총선기획단에 포함시켰다. 당 주류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지만, 조국 정국에서 쓴소리를 던졌던 금 의원이 포함되면서 포용 시그널을 보낸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다만 당 내부에선 이 대표가 반대파의 목소리를 누를 ‘명분용 인사’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더 큰 문제는 당연직으로 총선기획단에 합류한 양 원장과의 관계 설정이다. 양 원장은 10월 10일 서울 광화문 한 식당에서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신현수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이재순 전 청와대 사정비서관 등 검찰 인사들과 회동했다. 양 원장은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당 안팎에선 총선 영입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7월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양 원장으로부터 총선 출마를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양 원장과 채 전 총장의 만남은 조 전 장관 사퇴 나흘 앞두고 이뤄졌다. 이들은 포스트 조국 정국 및 내년 총선 전략 등을 공유했을 것으로 보인다. 채 전 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찍어내기를 한 인사다. 양 원장이 ‘윤석열 대항마’로 채동욱 카드를 검토했다는 설도 있다. 신 전 실장은 청와대 정무라인 및 차기 법무부 장관 후보군에 올랐다. 이 전 비서관은 충북 영동 출마설이 끊임없이 돌고 있다.
하지만 당 내부에선 양 원장이 앞서 서훈 국정원장에 이어 또다시 비밀회동 형식으로 만나자, 리스크를 거론하는 인사들이 부쩍 늘었다. 당내 반양정철 기류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서로 다른 루트에서 인재영입을 하는 이들이 총선 공천 과정에서 정면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