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신호는 이뿐만이 아니다. 북미에서 10월 19일(현지시간) 개봉한 ‘기생충’은 초반 30여 개 상영관으로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크린이 확대돼 6일 현재 400여 개까지 늘었다. 물론 미국 관객의 입장에선 낯선 외국어 영화 ‘기생충’이 과연 아카데미의 주요 부문을 거머쥘지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수상을 낙관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의 ‘2020년 아카데미 예상 기사’에 등장한 영화 ‘기생충’. 사진=버라이어티 홈페이지 캡처
미국 엔터테인먼트 매체 버라이어티는 ‘기생충’을 ‘2020년 오스카 경쟁 10편’으로 꼽았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전설의 팝스타 엘튼 존의 이야기인 ‘로켓맨’ 등 작품과 더불어 아카데미 수상 유력 영화 후보군에 들었다.
‘기생충’은 현재 미국에서 ‘오스카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보통 미국에서는 10월 말부터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이듬해 2월까지의 시기를 ‘오스카 시즌’으로 칭한다. 아카데미를 노리는 영화들 대부분이 시상식의 계절로 통하는 이 시기를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때문이다. 현재 봉준호 감독도 미국에 머물면서 외신과 인터뷰에 나서고, 아카데미 회원들과도 폭넓게 만나면서 작품을 알리고 있다.
일찌감치 낭보도 나왔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 3일 LA에서 열린 제23회 할리우드 필름 어워드 시상식에서 필름메이커상을 받았다. 내년 초 시작하는 골든글로브, 아카데미상 등의 향방을 먼저 가늠해볼 수 있는 시상식이란 점에서 이번 수상은 의미를 더한다. 이날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은 “10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 영화가 이젠 오스카의 무대에 오를 때도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히면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불과 한 달여 전과 비교하면 사뭇 분위기가 달라진 발언이다. 봉 감독은 ‘기생충’의 북미 개봉 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 및 한국 영화 가운데 수상작이 없다는 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카데미는 미국의 로컬(지역)영화제다”라고 답한 바 있다.
‘기생충’은 현재 북미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11월 1일 기준 북미 박스오피스 기준 565만 9526달러(약 66억 466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봉준호 감독이 북미에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시킨 작품으로 평가받는 ‘설국열차’(456만 3650달러)의 수익을 앞질렀다. 또한 박스오피스모조에 따르면 ‘기생충’의 전 세계 흥행 수입은 1억 달러(1160억 원)를 돌파했다. 전 세계 205개국에 판매된 ‘기생충’은 프랑스, 베트남, 호주 등 11개국에서 한국 영화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했다.
‘기생충’ 홍보 스틸 컷.
#바뀐 국제영화상 심사 방식…‘기생충’에 유리할까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기생충’을 두고 “봉준호 감독의 걸작이자, 올해 최고의 영화”라고 평했다. 할리우드 거장으로 꼽히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봉준호는 천재가 분명한 것 같다”고도 말했다. 고무적인 반응 속에 ‘기생충’이 외국어 영화에 시상하는 국제영화상을 너머 감독상 등 아카데미 주요 부문 후보에도 오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에 힘을 얻는다.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인 네온 측이 꺼내는 전망도 비슷하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을 높이는 이유는 작품의 완성도뿐 아니라 작품이 담은 메시지의 힘도 크다. 소득 양극화와 계층 갈등의 이슈는 전 세계 공통의 화두인 만큼 현지 관객과 평단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는 현재 북미에서 연일 흥행 기록을 새로 쓴 ‘조커’ 열풍과도 맞닿아 있다. ‘조커’ 역시 빈부격차와 계층 갈등 속에 태어난 악당을 그리면서 북미뿐 아니라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았다. ‘기생충’과 더불어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한 수상작으로 꼽힌다.
‘기생충’ 미국 포스터
올해 100주년을 맞은 한국 영화는 그동안 한 번도 아카데미 시상식에 진출하지 못했다. 수년간 외국어영화상을 공략했지만 번번이 최종 후보에도 들지 못했다. 올해 초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예비후보에 꼽혔지만 결국 최종 후보 진입은 실패했다.
다만 내년 후보작부터 심사 기준을 바꾼 아카데미의 변화가 ‘기생충’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은 있다. 그동안 외국어영화상은 세계 각국에서 출품한 100편 가운데 아카데미 회원 투표를 통해 예비후보 10편을 정한 뒤, 다시 뉴욕과 LA·런던에 거주하는 회원만 참여하는 방식으로 최종 5편을 추렸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국제영화상으로 바뀌면서 모든 심사 과정에 전체 회원이 참여하게 됐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