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황새울로 358에 위치한 상상인저축은행 본사 건물. 사진=이종현 기자
지난 10월 31일,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는 상상인저축은행과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 그리고 전·현직 대표에 대해 기관경고 및 직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엔 ‘기관경고’를, 상상인저축은행 대표에겐 ‘직무정지’, 유준원 전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 대표(최대주주 겸 상상인그룹 대표)에게는 ‘직무정지 상당’의 징계가 내려졌다. 금융위원회에서 징계가 확정되면 유 대표는 향후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에서 지분 매각 명령까지 받을 수 있다.
금감원이 확인한 것으로 알려진 상상인의 위법행위는 광범위하고 복잡하다.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의 경우 담보로 잡은 기업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한 뒤 상상인그룹의 다른 계열사에 처분하면서 6억 원가량 매각 대금을 덜 받아 결과적으로 대주주에게 이익을 제공한 것으로 봤다. 또 대출을 해주면서 예금을 상상인에 예치하게 하는 등 ‘꺾기’ 행위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은 상상인·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이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담보로 대출을 하는 과정에서 5% 이상의 지분을 취득하고도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은 것도 문제 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이 명목상 사업자등록증을 가진 개인에게 개인사업자대출을 제공하면서, 법상 개인대출 한도인 8억 원을 초과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상상인그룹 관계자는 “관례적으로 해왔던 대출을 지속해오면서 금감원의 감독 지침이 변한 걸 인지하지 못했을 뿐, 고의적 과실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상상인에 대한 금감원의 이번 조치 내용이 중요한 이유가 대주주 등이 포함된 제재라는 ‘상징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금융권은 입을 모은다.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던 ‘코스닥의 하이에나’ 유준원 대표를 금융당국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했다는 것이다.
사실 상상인그룹과 유준원 대표는 최근 금융권에 ‘일’이 있을 때마다 이름이 거론됐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모펀드 관련 의혹이다. 상상인저축은행은 조 전 장관의 배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사모펀드를 통해 투자한 회사 더블유에프엠(WFM)의 전환사채를 담보로 앳온파트너스에 100억 원을 대출해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관련기사 기업사냥 파트너? ‘조국 펀드’ 코링크-상상인 수상한 관계 추적).
앳온파트너스는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이자 사모펀드 ‘몸통’으로 지목받는 조범동 씨와 연루된 포스링크 부회장이 감사를 맡은 회사다. 앳온파트너스에 대한 대출이 이뤄진 시점은 2018년 7월으로, 공교롭게도 상상인 측이 골든브릿지증권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던 시기다.
이 때문에 지난 10월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여러 의혹이 다수 제기됐다.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중단된 상태였는데 11월에 다시 변경 심사를 재개해 올 2월 대주주 자격을 승인했다”며 “조국 펀드에 100억 원을 지원한 데 대한 대가성 특혜가 아닌지, 정권 차원의 비호가 있었는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상상인 측은 대출 당시 조 씨와 조 전 장관의 관계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으며, 대출도 적법한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유 대표가 2012년 스포츠서울의 주가 조작을 모의했다는 의혹이 MBC PD수첩을 통해 제기됐다. 스포츠서울 임원과 주식브로커 등이 연루된 주가조작 사건에서 유 대표가 돈줄 역할을 했음에도 관련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상상인증권 측은 PD수첩을 상대로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상상인증권은 “법원에서 ‘유준원이 시세조종이 이뤄지고 있음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한 상태에서 워런트를 행사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금융권을 시끌벅적하게 만든 유준원 대표는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베일에 싸여있던 개인투자자였다. 1974년생으로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순한 전업투자자가 아니라 사채업자였다는 소문도 있지만 확인은 되지 않고 있다.
그의 공식적인 이력은 데모라인이라는 회사의 이사를 거쳐 멀티비츠미디어와 리피씨엔아이의 대표를 지냈다는 것 정도다. 그런 그가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35세였던 2009년이었다. 유 대표는 네트워크 솔루션 기업인 코스닥 상장사 텍셀네트컴과 현대차 부품 납품사인 씨티엘의 경영권을 약 200억 원에 전격 인수했다.
이후 그는 금융권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선박부품사인 한중선박기계와 세종저축은행·공평저축은행, 주식담보대출을 하는 샤인스탁 등을 잇달아 사들였다. 특히 두 저축은행과 샤인스탁은 그가 주식시장의 슈퍼개미에서 기업자금조달 시장의 거물이 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주로 대전과 충남지역 코스닥 상장사를 상대로 돈을 빌려주며 명동 사채 시장을 대체하는 큰손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금융권은 그가 돈을 대출해주고 회수하는 방식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상장사 대주주 주식을 담보로 잡고 사채보다 더 높은 이자로 대출을 해준 뒤 주가가 하락하면 주식을 매각해 자금을 회수하는 방법을 써왔다. 회사나 대주주 입장에서는 위험 부담이 큰 방식”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이 입수한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상상인·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이 주식담보대출의 반대매매를 통해 회수한 금액은 170억 원으로, 전체 저축은행업계의 회수금액(284억 원)의 59.8%에 달했다. 평균 대출금리는 16%로 업계 평균인 10.9%보다 훨씬 높았다. 오비이락 격인지 유독 상상인에서 대출받은 코스닥 기업들은 경영상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상장폐지된 기업 11곳 중 무려 9곳이 상상인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던 기업이었다.
유준원 대표는 지난해 골든브릿지투자증권 인수 계약을 맺으며 금융그룹 포트폴리오 확장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불거져 관련 심사가 중단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상상인은 지난 1월 골든브릿지증권 인수구조를 변경하며 심사중단 사유를 해소했고, 두 달 뒤인 3월 금융위 승인으로 인수가 최종 확정됐다.
유 대표는 외부 노출을 꺼리는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주로 대리인을 내세워 활동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감춰왔다. 하지만 ‘조국 사태’를 계기로 베일에 싸인 그의 존재는 조금씩 실체가 드러나는 중이다. 검찰의 칼끝이 유 대표를 향하고 있고, 금융당국도 그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유 대표가 슈퍼개미인지 하이에나인지를 확인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전망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