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여왕의 의상을 25년째 전담하고 있는 안젤라 켈리가 펴낸 책 ‘동전의 뒷면’ 표지.
절제된 스타일과 파스텔톤 색상의 투피스를 즐겨 입는 엘리자베스 여왕은 언제 어디서나 우아하고 세련된 스타일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기본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색상에만 변화를 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관련, 연예전문지 ‘헬로!’를 통해 책의 내용을 일부 소개한 켈리는 이런 이유에서 여왕의 의상을 날마다 기록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여왕의 의상이 짧은 기간 안에 최대한 겹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며, 여기에는 의상 스타일뿐만 아니라 색상도 포함된다.
또한 켈리는 여왕의 구두를 자신이 먼저 신어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켈리는 “언론에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된 것처럼, 보통은 하인이 먼저 여왕의 신발을 신어본다. 이는 신발이 편안한지, 그리고 걷기에 무리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현재는 내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여왕은 항상 바쁘기 때문에 신발을 미리 신어볼 시간이 없다. 다행히 내가 여왕과 신발 사이즈가 같기 때문에 내가 먼저 신어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모피 착용이 논란이 되자 켈리는 과감하게 인조 모피를 사용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켈리는 “여왕은 올해부터는 더 이상 모피를 입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만일 몹시 추운 날씨에 야외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하게 될 경우에는 인조털을 사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오래 전부터 여왕은 인조 모피를 즐겨 착용하고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가령 2008년, 슬로바키아 여행에서 입었던 트위드 원피스에도 이미 인조 모피 장식이 사용됐다는 것이다.
이런 여왕의 결정에 대해 동물보호단체인 PETA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PETA 관계자는 “이로 인해 영국 국민의 95%도 모피 착용을 거부하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정책은 시대적 흐름이다”라고 말했다.
안젤라 켈리는 이제는 여왕이 모피를 입지 않는다고 밝혀 동물보호단체의 호응을 얻었다. 여왕을 보필하는 켈리.
여왕은 300점이 넘는 방대한 양의 보석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가운데 일부는 왕실 가족과 이전의 군주로부터 물려받은 것들로, 수백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보석들도 있다. 다만 이렇게 오래된 만큼 새것처럼 깨끗하고, 착용 가능한 상태가 유지되도록 추가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이에 티아라,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의 광택을 내는 왕실의 비법을 공개한 켈리는 “약간의 진과 물을 사용해서 닦으면 다이아몬드가 더 반짝인다” “주방세제 한 방울과 물 한 방울이면 헤어스프레이 얼룩이 없어진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또한 1년에 한 번씩 매년 의회가 개회되기 전에 보석을 모두 꺼내놓고 깨끗하게 광택이 나도록 닦는다고도 말했다.
켈리는 또한 책에서 올해 초 의회 개회식 때 여왕이 왜 ‘제국 왕관’을 쓰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영국 왕실의 상징이기도 한 ‘제국 왕관’은 조지 4세의 대관식을 위해 1820년에 제작된 것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은 1952년부터 의회 개회식 때마다 벨벳으로 된 진홍빛 가운과 함께 이 ‘제국 왕관’을 착용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제국 왕관’ 대신 개회식 내내 ‘조지 4세 디아뎀(왕관)’을 쓰고 있었으며, ‘제국 왕관’은 여왕의 옆자리에 있는 방석 위에 놓여 있었다. 이에 대해 켈리는 “아마도 무게와 여왕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왕관을 쓰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제국 왕관’은 컬리난 II 다이아몬드를 포함해 다이아몬드 2868개, 진주 273개, 사파이어 17개, 에메랄드 11개, 루비 5개 등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그 무게만 1.1kg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지난해 BBC 다큐멘터리 ‘대관식’을 통해서도 이미 한 차례 고충(?)을 털어놓은 바 있다. 당시 여왕은 “제국 왕관을 쓰고 있으면 아래를 쳐다보면서 연설문을 읽을 수 없고, 고개를 든 채 연설을 해야 한다. 만약 고개를 숙이면 목이 부러지거나 왕관이 굴러 떨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제국 왕관’보다 더 가벼운 ‘조지 4세 디아뎀(왕관)’을 가장 아낀다고 한다. 10월 14일 의회 개회식에 참석한 엘리자베스 여왕. AP/연합뉴스
반면, 여왕이 가장 아끼는 ‘조지 4세 디아뎀’은 다이아몬드 1333개, 진주 169개로 장식되어 있으며, ‘제국 왕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편에 속한다. 이런 까닭에 여왕은 공식 행사나 의회 개회식에 참석할 때면 항상 이 왕관을 착용하고 있으며, 여왕이 아끼는 만큼 영국 우표나 동전, 지폐 초상화에도 사용되고 있다.
이 밖에도 대관식 때 쓰는 왕관으로는 ‘성에드워드 왕관’이 있는데 이 왕관의 무게는 무려 3kg이 나간다.
여왕의 화려한 모자 패션 역시 늘 관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켈리는 책에서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도 여럿 소개했다. 가령 봄에 열리는 세계적인 경마대회인 ‘로열 애스콧’에 매년 참관하고 있는 여왕은 그때마다 화려한 패션 감각을 뽐내곤 한다. 특히 모자가 그렇다. 이에 영국에서는 몇몇 도박업체들의 경우, 여왕이 개막식 당일 어떤 색의 모자를 쓰고 참석할지를 두고 돈을 거는 경우가 많다.
켈리는 행사 며칠 전부터 일부러 윈저성에 바람잡이용 모자를 공개 전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자의 색이 너무 빨리 바깥에 알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위장용인 것이다. 이에 대해 켈리는 “매일 아침 나는 여왕이 근래에 썼던 3~5개의 모자를 작업실에 전시해둔다. 모두 색깔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다. 이렇게 전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작업실을 지나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이 모자들을 보게 된다. 문 뒤에 숨겨져 있는 게 아니다. 어떤 비밀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하면 여왕이 실제 어떤 모자를 쓰려고 하는지 몰래 알아내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번은 말레이시아에서 모자와 관련해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1998년 말레이시아를 국빈 방문한 여왕은 당시 ‘영연방 대회’ 폐막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문제는 덥고 습한 날씨였다. 결국 의상팀은 재킷이나 코트를 걸치는 대신 화려한 코랄 색상의 원피스만 입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급작스레 계획이 바뀌자 영국에서 준비해간 의상에도 전체적인 변화가 불가피했다. 무엇보다 바뀐 의상과 모자가 어울리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켈리는 이 사실을 여왕에게 알려야 했다. 켈리는 행사 당일 오전에 “이 모자를 쓰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 모자는 의상과 어울리지 않네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여왕은 한참을 침묵하더니 고개를 들어 이렇게 말했다. “글쎄, 지금은 좀 늦은 것 같군. 내가 이것 말고 어떤 옷을 입을 수 있겠나, 나는 이 옷을 입어야 하는데.”
여왕의 말에 켈리는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한 가지 묘안을 짜냈다. 켈리는 여왕에게 “모자를 모든 각도에서 살펴봤는데 차라리 거꾸로 쓰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여왕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여왕을 설득했던 것은 남편인 필립공이었다. 필립공과 잠시 대화를 나눈 여왕이 남편의 조언을 받아들여 모자를 거꾸로 쓰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여왕은 대회 폐막식에 모자를 거꾸로 쓰고 참석했고, 당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안젤라 켈리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미셸 오바마의 스킨십에 대해 “위대한 여성에 대한 서로 간의 존경과 애정”이라고 풀이했다.
책에서 켈리는 왕실 예법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켈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여왕을 예방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엄격한 예법이란 것은 없다”고 말했다. 가령 여왕을 만났을 때 반드시 절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여왕에게 절을 하는 것을 좋아하거나 또는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왕을 만나면 존경의 표시로 허리를 굽히거나 뒷다리를 굽히는 방식으로 절을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정해진 ‘골든 룰’은 없고, 여성들은 본능적으로 뒷다리를 살짝 굽히는 방식으로, 남성들은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방식으로 예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켈리는 왕실 예법을 어겼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미셸 오바마의 태도에 관해서도 소개했다. 지난 2009년,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때 버킹엄 궁전에서 열린 리셉션에 참석하기 위해 여왕을 방문한 미셸은 당시 격의 없는 태도를 취해 빈축을 샀다. 여왕의 어깨에 한쪽 팔을 두르고 감쌌던 것이 문제가 됐던 것이다. 이에 화답하듯 여왕 역시 오른팔로 미셸의 허리를 감쌌고, 뒤에서 본 둘의 모습은 다정한 친구처럼 보였다.
이 모습이 공개되자 당시 영국에서는 미셸의 이런 태도에 여왕이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켈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여왕은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능력을 갖고 있다. 때문에 여왕을 만난 사람들은 때때로 여왕을 터치하고 싶은 본능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한 “둘이 서로를 팔로 감싸고 가까이 서있는 동안 왕실 예법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실제 또 다른 위대한 여성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보여주는 것은 여왕의 당연한 본능이었다”라고 말했다.
왕실 예법을 파괴한 또 다른 일화로는 제임스 본드와 관련된 것이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 영상에서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은 영국 배우 대니얼 크레이그와 함께 카메오로 출연한 여왕의 모습은 당시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런 출연이 성사된 배경에 대해 켈리는 “여왕 스스로 왕실 예법을 어기는 것에 동의하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하지만 2011년 영화감독인 대니 보일이 출연 요청을 해왔을 때는 달랐다. 여왕은 감독의 아이디어를 매우 흥미롭게 받아들였고, 즉시 승낙했다. 나는 여왕에게 그러면 대사도 원하느냐고 물었다. 여왕은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내가 무슨 말을 해야지. 어쨌든 그가 나를 구하러 오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어 켈리는 여왕에게 ‘굿 이브닝, 제임스’라고 말하고 싶은지, 아니면 ‘굿 이브닝, 미스터 본드’라고 말하고 싶은지 물었고, 007 영화를 알고 있던 여왕은 후자를 선택했다. 잠시 후 보일 감독에게 이 소식을 전했던 켈리는 책에서 당시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내가 여왕의 유일한 출연 조건이 ‘굿 이브닝, 미스터 본드’라는 본드 영화의 상징적인 대사를 말하는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을 때 아마 보일 감독은 이 말을 듣고 너무 놀라서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을 것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여왕의 최애템은 ‘로너백’ 여왕은 약 200개의 로너백을 소유하고 있다. 사진=launer.com 여왕이 신는 구두의 굽 높이는 항상 5cm 정도다. 또한 여왕이 신는 모든 신발에는 편안함을 위해 깔창이 깔려 있다. #코트 여왕은 공공장소에서는 절대 코트를 벗지 않는다. 또한 치마 길이는 항상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며, 바람에 치마가 펄럭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치마 단에는 무게감 있는 천을 덧댄다. #바지 지금까지 여왕이 공공장소에서 바지를 입고 사진을 찍은 적은 단 한 번 있었다. 1970년, 캐나다 순방 당시 무광 실크 바지 정장을 입었던 것이 유일했다. 이 의상은 젊은 왕실 의상 제작자였던 이안 토마스가 여왕의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바꾸기 위해 시도했던 스타일이었다. #핸드백 여왕이 애용하는 핸드백은 영국의 브랜드인 ‘로너백’이다. 현재 200개 정도 소유하고 있으며,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은 ‘로열’과 검정색 페이턴트 소재의 ‘트라비아타’다. 다만 여왕은 가능한 새로 사는 것보다는 대대로 물려받거나 오래 사용한 핸드백을 수선해서 사용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또한 악수를 할 때 불편하지 않도록 대체로 손잡이가 긴 스타일을 선호한다. #장갑 여왕이 가장 좋아하는 장갑의 길이는 15cm다. ‘코넬리아 제임스’사는 1947년부터 여왕의 장갑을 제작하고 있으며, 1년에 수십 켤레의 장갑을 왕실에 납품하고 있다. #우산 여왕은 모든 의상에 어울리는 다양한 색상의 우산을 갖고 있다. 특히 영국 회사인 ‘풀턴’의 투명한 우산을 선호하며, 이때 우산 테두리는 옷 색상과 조화를 이루도록 선택한다. #모자 여왕이 착용하는 모자는 얼굴을 가릴 정도로 챙이 넓어선 안 된다. 또한 여왕이 차에서 내릴 때 머리가 부딪히지 않도록 너무 높아서도 안 된다. #지퍼 모든 여왕의 의상에서 지퍼는 필수다. 이는 편의성을 위해서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여왕이 쉽고 빠르게 옷을 입고 벗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