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면 전환용 인사를 선호하지 않는 문재인 대통령 역시 긍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조국 전 장관 조기 사퇴 역시 당에서의 강한 반발이 문 대통령 결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게 중론이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11월 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열린 청와대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 경호처 국정감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강기정 정무수석은 이러한 기류에 불을 붙였다. 강 수석은 11월 1일 청와대 국정감사 도중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언쟁을 벌여 도마에 올랐다. 이유를 떠나 청와대 정무수석이 제1야당 원내대표에게 고성을 지른 것 자체를 놓고 여권 내에서조차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친문재인계 의원은 “그런 장면은 처음 봤다. 질의를 받은 당사자도 아닌데 갑자기 소리치는 것은 백번 잘못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중진 의원도 “정무수석이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게 야당의 쓴소리를 듣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무수석만큼은 좀 거슬리더라도 무조건 참아야 한다”고 했다.
강 수석 돌발 행동으로 1야당 자유한국당과의 관계는 얼어붙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예산안 처리 등을 앞두고 여권으로선 대형 악재를 만난 셈이다. 정무수석 교체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당 의원들은 민주당과의 협상 테이블에 나오는 전제조건으로 강 수석 경질을 요구하고 있다.
여권에선 국정감사에 출석해 태도 논란과 준비 부족 등으로 질타를 받은 이호승 경제수석 역시 교체를 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이 수석은 10월 13일 톨게이트 수납원에 대해 ‘없어지는 직업’이라고도 말해 여권 주요 지지층인 노동계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 밖에 최근 북한 미사일 발사를 놓고 혼선을 빚은 외교안보라인도 교체 가능성이 흘러나온다.
참모진 개편의 핵심 키워드는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이다. 윤 실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문의 남자’다. 윤 실장은 문 대통령 대선 후보 시절 핵심캠프였던 이른바 ‘광흥창팀’ 주축 멤버다. 댓글조작 사건으로 구속된 드루킹은 법정에 나와 “청와대 권력서열 1위는 대통령, 2위는 윤건영, 3위는 김경수 지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국정기획상황실은 청와대로 올라오는 모든 정보가 모이는 곳이다. 대통령이 가장 믿을 만한 인물이 실장을 맡아왔다. 그리고 그들은 정권 실세로 불렸다. 윤 실장 역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진 않지만 청와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로 꼽힌다. 특히 윤 실장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 ‘메신저’ 역할을 맡으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여권에선 윤 실장이 ‘순장조’가 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윤 실장 역시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윤 실장 본인이 사의를 내비쳤다는 얘기도 뒤를 잇는다. 윤 실장을 대체할 인력이 마땅치 않다는 고민이 있긴 하지만 친문 인사들은 “문 대통령 스타일상 윤 실장 뜻을 존중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친문계 의원은 “정부 출범 후 과도한 업무가 이어지면서 윤 실장이 상당히 힘들어했던 것으로 안다”면서 “앞으로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출마 쪽으로 가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친문 진영은 조국을 내세워 PK(부산·경남)를 공략하려던 전략을 세웠었다. 조국 카드가 힘든 상황에서 ‘대통령 복심’ 윤 실장이 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윤 실장은 부산 출신이다. 일각에선 윤 실장 자택 주소지가 있는 부천 출마설도 나돈다.
노영민 비서실장 거취도 관전 포인트다. 인적쇄신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차원이지만 여권의 노영민 비토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친문 진영이 그 진원지로 꼽힌다. 조국 정국 당시 노 실장 역할에 대한 회의론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친문 일각에선 문 대통령과 노 실장 관계가 예전만 못하다는 목소리까지 새어 나온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노 실장이 문 대통령 눈 밖에 난 것으로 들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청와대 참모진 교체와 관련해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다만, 여당과 야당에서 나오는 지적들을 잘 듣고 있다. 이를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게 우리 일인데, 인적쇄신이 필요해 보이는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여당에서 오히려 그런 요구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