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복수를 맹세하지만 그 관리도 여기에 대비해 경계를 늦추지 않기에 복수는 쉽지 않다. 사무라이들은 그래서 미친 척을 하거나 거지 노릇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위장의 하이라이트는 이들이 거짓 연기를 한다고 의심한 관리의 부하가 사무라이의 칼을 칼집에서 빼내는 장면이다. 놀랍게도 그 칼에는 녹이 잔뜩 슬어 있었고, 이 얘기를 들은 관리는 더는 이들을 경계하지 않게 된다.
서민 단국대 교수.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자살이긴 하지만, 그 배후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다고 추정됐다. 이 사건은 정치와 연을 맺지 않으려던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살아생전 노 전 대통령이 “나이는 적지만 믿음직한 문재인을 친구로 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할 만큼 둘의 사이는 돈독했으니, 전부는 아닐망정 문 대통령이 정치판에 나선 데는 ‘복수’에 대한 생각도 있지 않았을까. 한 차례 낙선하긴 했지만 문 대통령은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고, 이 전 대통령을 구속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제 복수는 끝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대통령과 사무라이는 다르기 때문이다.
사무라이는 자기 영주를 죽게 만든 이를 응징하는 것으로 복수를 끝내도 된다. 하지만 대통령은 5000만 국민을 돌보는 존재며, 이 일을 얼마나 잘해냈느냐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 제대로 된 복수를 위해선 적폐청산만으로 부족하며, 적폐의 본산인 이전 대통령들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내야 했다.
집권 2년 반이 지난 지금의 평가는 콘크리트 지지층을 제외하면 대체로 부정적이다. 경제는 이전보다 훨씬 더 나빠졌다. 최저임금 상승을 통한 내수확대는 별 효과를 보지 못했고, 일자리 창출도 성과가 없다시피 하다. 외교는 망했다. 일본과는 무역전쟁 중이며, 그렇게 공을 들였던 북한은 미사일을 뻥뻥 쏘는 등 노골적으로 문 대통령을 무시한다.
문재인 케어의 영향으로 건강보험 재정은 적자로 돌아섰고, 출산율은 0을 향해 쾌속 질주하는 중이다. 유일하게 기댈 것은 도덕성이었지만, 문 대통령은 조국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함으로써 그것마저 날려버린다. 취임 초 내건 인사원칙에 어긋난 것은 둘째 치고,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인사를 고집을 부려가며 임명한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에선 다음과 같은 문답이 오간다. “문 대통령이 잘한 게 뭐가 있지요?” “글쎄요. 질문이 너무 어렵네요.”
다행인 것은 이제 겨우 임기의 절반이 지났다는 점이다. 남은 2년 반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문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기엔 전제가 있다. 그간의 정책에 대한 진솔한 반성도 필요하지만, 더욱 시급한 것은 소위 ‘문빠’라 불리는 콘크리트 지지층과 결별하는 것이다.
뭘 해도 지지해주는 이들의 존재는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게 함으로써 대통령을 나락으로 떠밀기 마련이니 말이다. 조국 사태가 장기화한 것도 그들이 서초동에 모여 ‘조국 수호’를 외치며 난리 블루스를 췄기 때문이 아니던가. ‘나 좋다는 사람들을 어떻게 외면해?’라는 마음이 들 수도 있을 테니, 이 말만 하자.
이대로 간다면 문 대통령은 직위를 이용해 사적인 복수만 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고, 그때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대통령이 사무라이랑 다른 게 도대체 뭐야?”
서민 단국대 교수
서민 교수는? 기생충학자로 28년째 기생충을 연구하고 있다. 기생충이 미움 받는 이유는 외모지상주의 때문이라며 기생충의 권리를 소리높여 외치지만, 사회에 스며든 인간 기생충에겐 가차 없이 구충제를 투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요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