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분기 롯데쇼핑은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연결기준 매출액 4조 4047억 원, 영업이익 876억 원으로,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반토막(-56%)이 났고 매출액(-5.8%)도 줄었다. 시장 예상치를 크게 밑도는 실적이다. 대형마트 실적 부진이 큰 영향을 미쳤다. 롯데마트의 3분기 영업이익은 123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1.5% 쪼그라들었고 매출액도 1조 6637억 원으로 2.6% 줄었다.
롯데쇼핑은 올해 3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롯데마트의 실적 부진이 큰 영향을 미쳤다. 롯데마트 서울역점. 사진=고성준 기자
앞서 유통업계 ‘부동의 1위’ 이마트도 올해 2분기 영업손실 299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를 냈다. 창사 이후 처음이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3분기 실적에 대한 기대감도 높지 않다.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영업이익이 약 30%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롯데쇼핑과 같이 오프라인 할인점의 부진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런데 주식시장에선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오고 있다. 대형마트들이 매출은 오르지 않고 영업이익은 큰 폭으로 떨어지는 총체적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지만, 11월 들어 이마트 주가는 약 16% 상승했다. 지난 10월 말 종가는 11만 1500원이었는데, 현재 13만 원대까지 뛰었다. 같은 기간 롯데마트를 보유한 롯데쇼핑과 신세계, 롯데하이마트 등도 10% 안팎의 상승세를 보였다. 이마트와 롯데쇼핑의 주가는 올해 초 각각 18만 원, 20만 원대를 기록하다 최근까지 급격한 하향세를 타고 있었다. 주요 유통주가 일제히 오른 건 올해 들어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선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마트와 롯데쇼핑이 최근 내린 처방들이 우선 거론된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10월 6년간 이마트를 이끌던 이갑수 대표와 임원 11명을 내보냈다. 대규모 ‘물갈이’를 지양해왔던 신세계그룹으로선 파격 인사 조치다.
11월 2일엔 그룹 차원에서 할인 행사 ‘쓱데이’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이날 하루에만 600만 명가량의 소비자들이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를 찾았다. 그동안 시장에서 실현 가능성 의문을 받던 ‘상시적 초저가 전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매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증가한 4000억 원을 넘어섰다. 한 이마트 관계자는 줄을 선 소비자들을 보고 “2000년대 초반 명절 이후 처음 보는 광경”이라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자율형 점포’를 늘렸다. 상권에 맞춰 주력 상품을 다르게 내세우고, 비규격 상품은 가격을 조정하는 등의 권한을 점포에게 주는 전략이다. 여기에 롯데그룹은 지난 10월 30일 롯데리츠를 코스피에 상장해 1조 원에 달하는 실탄도 확보했다. 롯데백화점, 마트, 아울렛 등이 보유한 자산을 유동화 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올해 2분기, 창사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낸 이마트의 3분기 실적 전망도 어둡다. 이마트 용산역점. 사진=고성준 기자
다만 이 ‘처방’들이 주가를 끌어 올렸다고 보기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유통업계를 담당하는 한 대형 증권사 연구원은 “수직 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쇼핑 트렌드에 대응하거나 선제적인 조치를 했다기보다는 오프라인 상권 ‘생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가 반등을 이끌어 낸 주요 원인이라고 볼 순 없다”고 분석했다. 그 밖에 사드 보복 이후 중국의 정책 변화, 소비자 소비 심리 회복도 거론되고 있지만 역시 눈에 띄는 변화는 없는 이슈들이다.
기관과 외국인이 시세 차익을 내기 위해 유통업계 주식을 사들이면서 시장 흐름이 바뀌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0월 말까지 기록한 이마트와 롯데쇼핑의 주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였다. 금융위기라는 특수한 상황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은 낮은 만큼 ‘바닥’이라고 판단해 반등을 기대하고 이들 주식을 사들였다는 의견이다.
실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11월 첫 거래일부터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대부분의 기관, 그리고 외국인 등 거의 모든 시장 주체들이 유통업계 주식을 샀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기관과 외국인이 유통업을 ‘저평가 업종’으로 분류했고 시세차익을 낼 수 있다는 판단이 유통업계 주가를 밀어 올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설득력을 얻는 건 따로 있다. ‘쿠팡 위기설’이다. 국내 이커머스 업계의 한 축인 쿠팡은 국내 유통업계 판도를 뒤흔든 메기로 불리며, 대형마트 추락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최근 쿠팡에 3조 원대 자금을 댔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지난 11월 6일 14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적자를 공식화했다. 손실 규모가 약 7조 4420억 원(7001억 엔)에 달했다. 특히 손정희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결산 발표를 통해 “너덜너덜하다”는 표현을 쓰며 “앞으로 투자 대상 기업이 적자에 빠졌다고 해서 이를 구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그룹의 첫 분기 적자로 촉발된 쿠팡 위기설로 대형마트 주가가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전경. 사진=고성준 기자
쿠팡은 올해 사상 최대 매출 실적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업계에선 거래 규모는 약 11조 원대, 매출은 6조 원을 예상하고 있다. 다만 손실폭도 그만큼 커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쿠팡은 2013년 창립 이후 누적 적자가 3조 원에 달한다. 영업손실 규모는 매년 늘어 지난해 1조 900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 적자는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더 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쿠팡은 그동안 “미래가치를 봤을 때 전략적인 적자”라는 입장을 보여 왔다. 그러나 소프트뱅크의 손실 공식화 이후 “수익성 개선이 없으면 향후 투자도 불투명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쿠팡은 또 지난 9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경영 유의’ 조치를 받았다. 금융당국이 1조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는 등 재무상황이 좋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고 경영 건전성 유지 방안을 수립할 것을 주문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유통업계 전반을 휩쓸던 쿠팡의 공세가 점차 약해질 수밖에 없는 일들이 짧은 기간에 겹쳤다”며 “대형마트 실적 부진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히던 쿠팡이 위기설에 휩싸이면서 이마트나 롯데쇼핑 등 오프라인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분간 쿠팡이 공격적인 전략보다는 수익성 개선에 집중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이에 맞춰 대형마트 주가 상승세가 꾸준히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올해 4분기 실적이 개선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실적이 크게 부진했기 때문이다.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각각 점포 구조조정과 이커머스 업체 합병 등을 통한 온라인 대응 강화가 거론되고 있지만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란 확신을 내리기엔 이르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유통업계는 이커머스를 중심으로 치킨게임을 벌인 지 오래인데, 대형마트들은 여기서도 열세”라며 “향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온라인 플랫폼 구축과 관련한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현재로선 그 효과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