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HDC현대산업개발 본사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정몽규 HDC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주체인 금호산업은 지난 12일 이사회를 열고 아시아나항공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 컨소시엄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금호산업 측은 “아시아나항공 매각 최종입찰에 참여한 3개 컨소시엄 중 HDC현산 컨소시엄이 아시아나항공 경영정상화 달성 및 중장기 경쟁력 확보에 가장 적합한 인수후보자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매각은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구주 6868만 8063주(지분율 31.05%)와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할 신주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아시아나항공뿐 아니라 에어서울과 에어부산, 아시아나IDT 등 6개 자회사도 함께 ‘통매각’ 대상이다. 다만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경우에 따라 자회사 개별 매각도 가능하도록 여지를 둬 협상 과정에서 일부 자회사가 개별 매각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HDC현산 컨소시엄은 매입가로 2조 4000억~2조 5000억 원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업계 전망치(1조 5000억~2조 원)를 훌쩍 뛰어넘은 액수이자, 함께 본입찰에 참여한 애경그룹-스톤브릿지 컨소시엄이나 KCGI-뱅커스트릿 컨소시엄보다 최대 1조 원을 더 제시한 것이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지난 12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국가기간산업인 항공산업이 HDC그룹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부합한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HDC그룹은 항공산업뿐 아니라 나아가 모빌리티(교통운수)그룹으로 한걸음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범현대가 재계순위도 변동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넷째 동생 정세영 전 현대자동차 회장의 장남이다. 현대자동차로 현대그룹에 첫발을 들였다. 1988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상무와 전무이사를 거쳐 5년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어 만 34세였던 1996년에는 부친 정세영 회장에 이어 현대자동차 회장직을 역임하며 현대차를 받을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현대그룹 분리 과정에서 현대차 경영권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넘어갔고, 정몽규 회장은 대신 현대산업개발을 받게 됐다.
HDC현대산업개발은 과거 현대그룹의 한국도시개발과 한라건설이 모태다. 1986년 두 회사가 합병하면서 탄생했다. 이후 1999년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했다. 회사는 주택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사업다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HDC아이파크몰을 운영하며 유통업에 뛰어들었고, 2015년 호텔신라와 손잡으며 HDC신라면세점을 통해 면세시장에도 진출했다. 지난 4월 한솔그룹의 오크밸리(현 HDC리조트)를 인수하며 호텔·레저사업도 확장했다. 또한 영창악기와 부동산114 등을 인수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단순시공을 넘어 디벨로퍼(부동산개발사)로도 적극 참여, 다른 대형 건설사와 달리 자체개발사업 매출 비중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HDC현대산업개발이 국내 2위 항공사 아시아나항공을 품게 되면서 근간인 건설업을 비롯해 호텔·레저·면세점을 넘어 항공업으로까지 확장, 종합그룹으로 도약할 전기를 맞게 됐다. 특히 주력사업이 항공으로 옮겨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HDC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마무리하면, 범현대가 기업들의 재계순위에도 변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HDC그룹의 올해 자산규모는 10조 5970억 원으로 재계순위 33위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완료하면 자산규모는 21조 6513억 원까지 커질 수 있다. 그럼 재계순위 역시 17~18위로 뛰어오른다.
범현대가로 분류되는 기업은 HDC현대산업개발 외에 재계순위 2위의 현대차그룹과 10위 현대중공업그룹, 21위 현대백화점그룹, KCC(34위), 한라그룹(49위), 현대그룹(50위권 밖) 등이다. 따라서 정지선 회장의 현대백화점그룹과 HDC현대산업개발의 재계순위가 뒤바뀔 전망이다.
#‘승자의 저주’ 피할 비책 있나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의 천문학적인 부채규모로 HDC현대산업개발이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난 2분기 기준 아시아나항공은 부채 9조 5989억 원에 자본 1조 4555억 원 규모로, 부채비율이 660%에 달했다. 영업손실도 1169억 원을 기록했다. 여기에 향후 실사 과정에서 우발채무가 나올 가능성도 존재한다.
아시아나항공은 신주 자금 유입으로 재무구조가 안정되고, 신규 투자가 이뤄지면 경영정상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실제 신주 인수 자금으로 기대되는 약 2조 원이 아시아나항공에 수혈되면 부채비율은 277%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럼에도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정상화 작업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선이 많다. 박형렬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최종 인수금액에 따른 변동은 있으나, HDC현대산업개발의 순현금은 순차입금으로 전환될 것”이라며 “HDC현대산업개발 자본 투입 이후에도 아시아나항공 실적이 개선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채상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 역시 “아시아나항공 인수시 대규모 자본투자가 진행돼야 하고, 부채비율의 급격한 변화가 수반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재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 문제는 내부 문제뿐 아니라 외부 요인도 존재한다. 항공업 시장 자체가 현재 과잉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외국 대형항공사와 국내외 LCC(저비용항공사) 사이에서 샌드위치로 경쟁하고 있다. 또한 한일 무역분쟁에 따른 일본 불매운동으로 일본 노선은 축소됐다”며 “생존을 위해서는 투자가 계속돼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럼 그룹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남은 과제는?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항공 본사에 내걸린 아시아나항공 깃발.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변수는 존재한다. 본협상에서 HDC현대산업개발과 금호산업이 구주 및 신주 가격, 경영권 프리미엄 등의 조건을 두고 치열한 밀고 당기기를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HDC현대산업개발이 다른 두 컨소시엄과 비교해 전체 매각가는 가장 높게 썼지만, 금호산업에 돌아가는 구주 가격은 4000억 원 아래로 평가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거의 산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산업은 ‘만족스럽지 않은 조건’에 구주 가격을 최대한 높이기 위한 신경전을 벌일 수 있다.
반면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아시아나항공 재무·경영상태를 면밀히 재검토, 돌발 채무 가능성 등을 잡아내 인수가격을 낮추는 전략을 펼 것으로 보인다.
본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연내 주식매매계약 체결 등 모든 매각 작업이 마무리될 전망지만,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매각이 유찰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HDC현대산업개발은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교정시설 부지 뉴스테이 개발사업 진행 과정에서 중견쇼핑몰 운영업체 엔터식스에 ‘갑질’을 저질렀다는 주장이 불거져 논란이 한창이다. 이는 지난 10월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쟁점화됐다. 절차에서 위법사항으로 볼 수 있는 혐의가 발견돼 HDC현대산업개발 및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대한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국토부 역시 정치권의 목소리에 민감하게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토부는 건설업 및 항공산업의 주무부처다.
하지만 ‘갑질’ 문제가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 의견은 낮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회 국토위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국회의원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감사원이나 국토부가 HDC현대산업개발의 갑질 의혹에 대해 제대로 조사를 할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