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12라운드가 종료된 현재 레스터 시티의 돌풍이 거세다. 사진은 2-0 승리를 거둔 아스널전에서 골을 넣고 환호하는 레스터 시티 선수들. 사진=연합뉴스
#시즌 전부터 가능성 보였던 레스터 시티
레스터 시티는 2015-2016 시즌 동화 같은 우승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들의 우승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당시 현지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서는 이들의 우승 확률을 5000분의 1로 예상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시즌에는 우승은 아니어도 최근 프리미어리그의 ‘빅6(맨시티, 리버풀, 첼시, 토트넘, 아스널, 맨유)’ 구도를 깰 유력한 후보로 평가받았다. 지난 시즌 성공적인 반전을 이끌어낸 로저스 감독의 안정적인 지도력, 적절한 전력 보강 등이 고평가 요인으로 꼽혔다.
현재 레스터는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을 보이고 있다. 11승 1무로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는 리버풀을 제외하면 레스터보다 높은 순위에 오른 팀이 없다. 12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레스터가 약팀만 만났던 것도 아니다. 첼시를 상대로 1-1 무승부를 거뒀고 북런던을 연고로 한 두 팀 토트넘과 아스널에 모두 승리했다. 선두 리버풀과 일전에서도 90분 내내 대등하게 싸우다 후반 추가시간에 아쉽게 골을 내줬다.
중위권 이하의 팀들을 확실하게 잡는다는 점에서 레스터는 강팀의 면모까지 보이고 있다. 특히 사우샘프턴전에서는 9-0 스코어를 만들어내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는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다 점수 차 기록. 레스터의 이번 시즌 좋은 흐름을 만천하에 알리는 경기였다.
브랜든 로저스 감독(맨 오른쪽)은 4년 만에 돌아온 프리미어리그에서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준우승 감독에서 우승 감독으로…진화한 브랜든 로저스
로저스 감독은 지난 시즌 도중 레스터에 소방수로 투입되며 프리미어리그에 복귀했다. 리버풀 지휘봉을 잡았던 2015년 이후 4년 만이다. 그는 리버풀에선 2015-2016 시즌 도중 단 8경기 만에 경질당한 아픔이 있다. 후임 감독(위르겐 클롭)이 큰 성과를 내며 자주 비교를 당하는 처지지만 로저스는 혹독한 비난만 받았던 인물은 아니다. 리버풀 부임 2년 차에는 승점 2점 차로 아쉽게 우승을 놓치기도 했다.
우승까지 2점이 모자랐던 로저스는 리버풀에서 경질당한 이후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셀틱으로 떠나 ‘우승 감독’이 됐다. 셀틱이 밥 먹듯 우승컵을 따내는 스코틀랜드의 강호라고는 하지만 로저스는 리그 3연패, 2년 연속 트레블(리그, 스코티시컵, 리그컵 동시 우승)을 달성했다. 이 기간 리그 무패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4년 만에 돌아온 프리미어리그에서 그는 우승 감독으로서 능력을 유감없이 보이고 있다. 쓸 선수만 쓰며 다소 경직된 선수단 운영을 보인다는 리버풀 시절의 비판에서 탈피하는 모양새다. 여전히 그가 선호하는 4-3-3 포메이션이 주로 가동되지만 상대에 따라 다양한 선수를 적재적소에 기용하고 있다. 주로 중앙에 포진하는 플레이메이커 제임스 메디슨을 강팀과 상대할 때는 측면에 배치해 중원을 두텁게 만드는 것이 한 예다. 지난 시즌 부임 초반에는 3명의 중앙 수비수를 기용하는 변칙적 전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팀의 핵심 제임스 메디슨은 로저스 감독의 전술적 열쇠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레스터 시티 인스타그램
레스터는 2015-2016 시즌 대성공 이후 매 시즌 주축 선수의 유출을 경험했다. 지난 3시즌 동안 은골로 캉테(첼시), 리야드 마레즈(맨시티), 해리 매과이어(맨유)를 내보냈다.
하지만 팀의 에이스를 보내며 무너지는 팀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레스터는 울며 겨자 먹기로 싼 값에 에이스를 넘겨야 하는 가난한 구단이 아니다. 태국 재벌 킹파워그룹의 탄탄한 재정 지원에 아쉬울 것이 없는 이들은 철저한 협상으로 큰 이적료를 얻어내는 ‘거상’으로 거듭나고 있다. 최근 3년간 캉테, 마레즈, 매과이어, 대니 드링크워터(첼시) 판매로 2억 유로(약 2572억 원)가 넘는 금액을 벌었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은 아낌없이 공백 메우기에 투자된다. 매과이어 판매로 구단 역사상 최고 이적료 수입 기록이 경신된 동시에 유리 틸레망스, 아요세 페레즈를 데려오며 지출 기록도 새롭게 썼다. 이들은 영입과 동시에 팀 내에서 핵심 선수로 맹활약하고 있다.
매과이어가 떠난 빈자리에는 찰라르 쇠윈쥐가 단단한 수비력을 뽐내면서 주목받고 있다. 그 또한 매과이어 이탈에 대비해 불과 1년 전 독일에서 데려온 수비수다.
불과 1년 전 매과이어의 백업이었던 쇠윈쥐는 이번 시즌 매과이어의 공백을 훌륭하게 메우고 있다. 사진=레스터 시티 페이스북
#경쟁자들의 부진
맨시티-리버풀 2강체제로 재편되고 있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레스터가 또 다시 우승을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 걸린 4위 이내에는 충분히 들 수 있다는 예측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같은 예상은 경쟁자들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맨시티와 리버풀을 제외하면 빅6로 꼽히던 팀들이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아스널, 맨유, 토트넘 모두 리그 초반 12경기에서 5승조차 거두지 못하며 흔들리고 있다. 이들 팀과 달리 챔피언스리그나 유로파리그 등 유럽 대회에 나가지 않는다는 점도 레스터에 체력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에당 아자르 이탈로 어려움이 예상됐던 첼시만 3위에 올라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매번 같은 팀들이 순위표 상단을 차지하던 프리미어리그에서 레스터의 돌풍은 신선함을 불어넣고 있다. 레스터의 ‘이유 있는’ 선전이 시즌 종료 시점에는 어떤 결과를 낼지 지켜볼 일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