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벤다졸을 먹고 암을 완치했다고 주장한 조 티펜스의 인터뷰 영상. 오른쪽은 진행자. 사진=유튜브 캡처
펜벤다졸 신드롬의 시작은 2016년 말기 소세포폐암으로 3개월의 시한부 진단을 받은 미국인 조 티펜스다. 그는 한 병원에서 임상시험에 참여하던 중 알고 지내던 수의사로부터 구충제를 복용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펜벤다졸을 먹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조 티펜스는 펜벤다졸 복용이 암 완치에 도움이 되었다는 내용의 글을 블로그에 올렸고 이 내용은 지난 4월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을 통해 소개됐다. 한국에서는 지난 9월 초 조 티펜스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화제가 됐다.
조 티펜스의 증언 이후 암 환자들 사이에서는 동물용 구충제인 ‘펜벤다졸’을 복용하는 이른바 ‘자가 임상’이 들불처럼 번졌다. 더 이상 효과 있는 약을 찾기 힘든 말기암 환자들은 펜벤다졸을 마지막 희망으로 삼기도 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 입장에서는 동물용 구충제든 사람용 구충제든 어떠한 시도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큰 까닭이다.
펜벤다졸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직접 나섰다. 식약처는 “유튜브 등을 통해 유포되는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와 안전성 관련 주장은 증명된 사실이 아니다. 펜벤다졸을 고용량으로 장기간 투여했을 때 혈액이나 신경, 간 등에 심각한 손상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며 특히 항암제와 함께 구충제를 복용하는 경우 약물상호작용으로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동물용 구충제의 무분별한 복용을 금지할 것을 당부했다.
동물용 구충제가 위험하다는 말이 돌자 이번에는 사람용 구충제인 알벤다졸로 눈을 돌리는 환자들이 늘어났다. 펜벤다졸 품귀현상으로 더 이상 약을 구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동물용 약이 위험하다면 같은 벤다졸 계열의 사람용 약은 괜찮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유방암 환자 김 아무개 씨(56)는 12일 일요신문과 만나 “어렵게 구한 펜벤다졸을 다 먹고 현재는 알벤다졸만 복용하고 있다. 아무래도 사람용 약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마음이다. 놀라운 사실은 아직 수술을 받기도 전인데 1.2cm의 암이 3주 만에 0.5cm로 줄었다”고 말했다.
비슷한 효과를 낸다면 1500~2000원인 펜벤다졸보다는 1000원 내외인 알벤다졸을 복용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또 다른 유방암 환자 문 아무개 씨(61)는 “조 티펜스는 수의사 지인 때문에 펜벤다졸을 먹은 것으로 안다. 또한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사람용 구충제보다 동물용 구충제가 더 저렴해 조 티펜스가 동물용 구충제를 먹은 것이 아닐까 싶다. 비슷한 화학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용 구충제를 먹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펜벤다졸이나 알벤다졸과 같은 벤다졸 계열의 약은 신체 내 있는 유충 세포의 포도당 흡수관에 결합하여 이 관을 봉쇄시키는 역할을 한다. 영양소 흡수 경로를 차단해 기생충을 굶겨 죽이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벤다졸 계열의 구충제를 먹는 환자들은 “암도 세포이므로 이와 비슷한 기전으로 암 치료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복수의 전문가들은 “효과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한 의학연구원은 13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구충제를 먹을 수밖에 없는 환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말은 할 수 없다. 의료인은 반드시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말해야 하는데, 구충제가 항암제가 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건강한사회를위한약사회 이동근 정책기획팀장 역시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벤다졸 계열의 구충제에 대해 “가능성은 알지 못하지만 유효성에 대한 입증을 잘 해내면 정식 항암제로 쓰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암에 반응하는 만병암치료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항암제는 결국 생존율로 평가해야 하는데 그걸 평가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환자 본인의 선택은 존중하지만 자신들의 말이나 영상으로 인해 적시에 치료 가능한 방식들을 포기하는 사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의료용 대마인 CBD(칸나비디올) 오일을 섭취하는 환자도 늘고 있다. 과립형 펜벤다졸의 흡수율을 높이기 위해 CBD 오일을 함께 먹었다는 조 티펜스의 복용 방법을 그대로 따르기 위해서다. 여기에 CBD 오일의 광범위한 통증 완화 효과를 기대하는 환자도 더러 있었다. 현행법상 대마초가 불법인 국내에서 잎과 열매를 이용해 만든 CBD 오일은 판매와 통관이 금지돼 있지만 상황이 절박한 일부 암 환자들은 외국에 사는 지인에게 구입을 부탁하거나 가까운 일본에서 직접 들여오는 방법으로 CBD 오일을 구하고 있었다.
펜벤다졸을 복용 중인 개그맨 김철민 씨는 11월 12일 자신의 SNS에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사진=김철민 페이스북
물론 이러한 낭설들이 아무런 근거 없이 튀어나온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펜벤다졸을 이용해 제1형 당뇨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시도가 한 차례 있었다. 또 당뇨 치료제를 이용한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 임상시험도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기반으로 당뇨 치료제가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당뇨 치료에 효과가 있을 수 있는 구충제 역시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그러나 복수의 전문가들은 구충제와 당뇨, 알츠하이머를 연관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당뇨병학회 관계자는 “펜벤다졸을 이용해 제1형 당뇨병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를 시도한 건 맞지만 실패했다. 환자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검증된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의 역시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 뇌의 당대사에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토대로 당뇨 치료제를 치매약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시도는 있었다. 현재는 당뇨 치료제인 인슐린으로 치매 진행을 막을 수 있는지를 보는 임상실험이 장기 연구 중에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연구 단계일 뿐 명확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며 “구충제가 당뇨에 효과가 있을 수도 있으니 알츠하이머 치료에도 효과를 보일 수 있다는 말은 논리적 비약으로 보인다. 이러한 말들이 퍼져 잘못된 상식이 될까 걱정이다”라고 지적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펜벤다졸 품귀현상에 정작 반려견은 제때 못 먹어 동물용 구충제인 펜벤다졸을 먹고 암을 완치했다는 조 티펜스의 이야기가 유튜브를 통해 확산되면서 전국의 동물병원은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시 강동구에 소재한 한 동물병원 의사 B 씨는 “파나쿠어c(펜벤다졸계 구충제)가 있느냐는 문의 전화가 하루에도 수차례 오는 것은 물론, 직접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도 많다. 이 약을 처방해달라는 문의도 적지 않은데 동물용 약을 사람에게 처방할 수 있는 법은 없다”고 곤혹스러워했다. 동물용 약을 사람이 먹겠다고 하니, 정작 반려동물들이 먹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B 씨는 “강아지들은 1년에 3~4회, 고양이의 경우 두 달에 한 번 정도 구충제를 먹어야 하는데 약을 구하지 못하는 반려동물 보호자들이 늘고 있다. 이제는 해외직구로 직접 구매해서 먹이라고 조언하는 지경이다. 심지어 암에 걸린 반려동물에게 펜벤다졸을 먹이겠다는 보호자도 나타났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수의사회는 지난 10월 20일 “동물을 진료하지 않고 보호자 방문만으로 동물용의약품을 판매하는 행위는 수의사법 위반”이라며 “동물 진료 및 처방 목적 외에 의약품이 판매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해달라”는 입장을 냈다. 최희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