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대표팀은 2015년 도쿄돔에서 열린 프리미어12 결승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오재원(사진)이 9회 타석에서 물꼬를 트며 극적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사진=연합뉴스
가압 공기를 사용해 돔 지붕을 부풀리는 에어돔 방식. 돔 내부 기압을 야구장 밖보다 0.3% 높게 유지해 압력차로 돔 형태를 유지한다. 천연잔디가 자랄 수 없는 돔구장의 특성상 필드 터프 인공잔디를 쓰고 있다. 메이저리그 미네소타의 홈구장이었던 메트로돔을 모델로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돔을 짓는 데 투입된 돈은 약 350억 엔(약 3525억 원). 야구 경기를 할 때는 입석 4000명을 포함해 총 4만 6000명까지 입장할 수 있다. 센트럴리그 라이벌팀인 한신의 고시엔구장(4만 7800명)에 이어 일본 프로야구에서 두 번째로 수용 인원이 많은 야구장이다. 한국에는 3만 석이 넘는 규모의 야구장이 아예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규모다.
일본에는 돔구장이 유독 많다. 도쿄돔 외에도 삿포로돔(니혼햄), 나고야돔(주니치), 오사카 교세라돔(오릭스), 후쿠오카 야후오크돔(소프트뱅크), 세이부돔(세이부)까지 양대 리그 12개 팀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6개 구단이 돔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다. 그러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2006년 첫 대회부터 2017년 4회 대회까지 매년 도쿄돔을 대회 장소로 선택했다. 그만큼 상징적인 장소다.
특히 한국 야구는 도쿄돔에 얽힌 추억이 많다. WBC와 프리미어12를 비롯한 숱한 한일전에서 영욕의 역사를 아로새겼다. 첫 도쿄돔 경기는 1991년 제1회 한일 슈퍼게임. 김응용 감독이 선동열, 송진우, 이순철, 김기태 등 내로라하는 스타플레이어들을 이끌고 참가했다. 그러나 도쿄돔에서 열린 첫 판에서 요미우리 에이스였던 구와타 마스미를 공략하지 못했고, 아키야마 코지와 오치아이 히로미쓰에게 연속타자 홈런을 맞아 3-8로 졌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도쿄돔 맞대결도 각각 1995년과 1999년에 다시 열린 한일 슈퍼게임이었지만, 두 차례 모두 0-0과 8-8로 비겨 승부를 가르지 못했다.
2006년 초대 WBC에서 마침내 설욕 기회를 잡았고, 2009년 2회 WBC에서도 극적인 반전 드라마를 써 짜릿한 기억을 쌓아 올렸다. 2년 뒤 열린 2015 프리미어12 준결승에서도 그랬다. 또 한 번 한일전 역사에 명장면을 아로새겼다. 개최국 일본의 도가 지나친 방해공작에 지쳐 있던 때였다.
당시 한국은 상대 선발 오타니 쇼헤이의 괴력투에 제압당해 8회까지 0-3으로 뒤진 상태였다. 그러나 패색이 짙던 9회초 연속 안타 행진으로 한꺼번에 4점을 뽑아내면서 단숨에 경기의 결말을 4-3 승리로 바꾸었다. 결국 한국은 일본을 제치고 결승에 올라 대회 초대 우승국으로 이름을 남겼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