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20일을 전후해 금융당국이 금융권의 일자리 창출 현황을 측정한 결과를 발표한다. 측정 대상은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Sh수협·SC제일·한국씨티은행 등 시중은행과 DGB대구·BNK부산·BNK경남·광주·전북·제주은행 등 지방은행이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각 은행의 직접 고용 규모와 함께 비정규직과 여성 등의 비율까지 더해 인력 운용 전반을 살펴본 결과물이다. 은행이 각 산업에 지원한 자금 규모와 고용유발계수를 활용한 간접 고용 창출도 포함됐다. 정부가 민간 금융사의 일자리 현황을 집계해 발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금융당국의 금융권 일자리 창출 현황 측정 결과 발표를 앞두고 업계가 고민에 빠졌다. 사진=박정훈 기자
야심찬 계획이었지만 이 작업은 초기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당초 8월에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미루고 미루다 결국 연말에 가까워서야 발표날짜를 잡았다. 금융권이 “사실상의 채용 압박”이라거나 “간접 효과를 계량화하는 기준이 뭐냐”며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이다. “왜 애먼 시중은행만 평가하느냐”는 형평성 논란도 제기됐다.
이 때문에 금융감독원이 각 시중은행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취합하는 데만도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이 소요됐다. 공통된 기준이 없는 데다 시중은행별로 자료 유형이 다르다보니 제각각 자료를 제출했고, 금감원은 이를 다시 재분류하거나 자료 재요청 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이 때문에 당초 예정됐던 8월 발표는 일찌감치 물 건너갔다.
금감원은 10월이 돼서야 최종 취합된 측정 자료를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료를 기반으로 금융위와 금융연구원 등은 다시 고용 유발 효과나 일자리 창출 구조변화 등을 분석해야 했다.
작업이 길어지자 금융권의 불신은 더 커졌다. 당국도 간접적 일자리 창출 기여도까지 평가하는 것은 처음이다 보니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소문부터 시간을 끄는 것을 보니 숫자를 끼워 맞추고 있는 것 같다는 의심까지 나왔다. 특히 금융부문의 일자리 창출 기여도가 낮다는 결과가 나오면 금융당국도 질책을 피할 수 없을 테니 의미 있는 수치를 만들기 위해 통계를 ‘마사지’하고 있다는 괴담까지 흘러나왔다.
금융권에 튀게 될 불똥에 대해서도 걱정이 태산이다. 은행권에서는 우선 국책은행은 쏙 빼고 민간기업이 대부분인 시중은행만 따로 추려서 평가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높다. 물론 국책은행들도 별도로 채용현황 등을 공개하고 있지만, 이번처럼 당국이 직접 통계자료까지 만들어 공개 발표를 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금융권은 “사실상의 은행 줄세우기”라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한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예를 들어 규모가 비슷한 A 은행은 1000명인데 B 은행은 500명이라는 식이 될 경우 B 은행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결국 ‘고용 똑바로 안해?’라는 당국의 협박성 평가”라고 비판했다.
금융권은 특히 간접적 일자리 창출 기여도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평가할 만한 항목이나 범위가 애매모호해서다. 이번 발표에는 시중은행의 자체 일자리·간접적 일자리 창출 기여도 결과가 모두 포함될 예정인데, 자체 일자리 창출 기여도는 각 은행별 채용자료 등을 통해 구체적인 수치 확인이 가능하다. 반면 간접적 일자리 창출 기여도는 금융사가 직접 고용하지 않고 아웃소싱을 통해 창출하는 일자리에다 자금지원에 따른 고용유발효과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를 평가할 만한 기준이나 수치가 명확하지 않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기본적으로 간접적 일자리 창출 기여도에는 은행에서 콜센터나 정보기술(IT)회사 등에 외주를 주는 규모가 포함된다. 이 부분은 객관적인 숫자로 파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은행이 각 산업에 지원한 자금 규모와 이에 따른 고용유발 효과를 측정한 결과’다. 이를 테면 한 은행이 중소기업에 대출을 해준 뒤, 해당 기업에서 얼마나 고용유발효과가 일어났는지를 숫자로 보여주는 식이다.
금융권은 이를 두고 “코에 걸면 코걸이 식 해석이 될 게 뻔하다”고 걱정하는 중이다. 시중은행의 다른 관계자는 “예를 들어 키오스크(무인 주문시스템) 같은 자동화기기를 생산하는 기업에 대출을 해줬다고 가정해보자. 해당 기업은 매출이 늘고 고용이 증가했는데, 키오스크를 설치한 매장에서는 직원을 줄였다면 간접 고용이 늘어난 것인가 줄어든 것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책상에 앉아만 있고 햄버거 사러 매장에 가본 적도 없는 금융당국다운 발상”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불만이 커지자 금융당국은 개별 회사별 수치는 발표하지 않겠다면서 한 발 물러섰다. 각 시중은행별 평가결과를 취합한 ‘통합’수치만 발표한다는 것이다. 또 고용 창출효과에 대한 책임도 묻지 않는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하지만 이 또한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게 금융권의 반응이다.
다른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이미 개별 금융사들이 데이터를 모두 제출했으니 이를 분석했을 것 아니냐. 통합한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개별 데이터를 샅샅이 훑어봤다는 말”이라며 “발표만 안 할 뿐 찍힐 곳은 이미 다 찍혔다는 뜻이니 고용이 부진했던 금융사는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금융당국은 금융발전심의위원회(금발심)를 거쳐 보고서를 최종 공개할 계획이다. 금발심은 금융부문 최고 정책자문기구다. 윤석헌 금감원장이 위원장을 맡고 한국은행, 기획재정부, 예금보험공사 등의 고위관료가 위원으로 참여한다. 이들이 어느 은행이 얼마나 고용했는지 다 들여다봤다는 의미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