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드 이후 현대모비스의 유재학 감독은 “현재보다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했고, 라건아와 이대성을 받은 KCC는 단숨에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전주 KCC 최형길 단장과 인터뷰를 통해 트레이드 막전막후 스토리를 취재했다.
지난 11일 KBL 전체를 뒤흔들 트레이드가 단행됐다. 이대성(왼쪽)과 라건아(오른쪽)가 KCC로 리온 윌리엄스, 김국찬, 박지훈, 김세창이 현대모비스로 향햐는 2대4 트레이드였다. 사진=KBL
“신인 드래프트(11월 4일)가 열리기 전이었다. 갑자기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이 만나자고 하더라. 시즌 중 다른 팀 감독이 내게 만남을 요청한 것은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트레이드 논의였다.”
나름의 시나리오를 세우고 유재학 감독을 만난 최형길 단장. 먼저 유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고 한다.
“처음에는 유 감독이 라건아 이야기를 하더라. 라건아야 탐나는 선수지만 라건아를 데려오려면 그에 걸맞은 선수를 내줘야 하는데 우리 팀에 이정현, 송교창 외에는 모비스에서 탐을 낼 만한 선수가 없었다. 내가 유 감독에게 “우리가 내줄 선수가 없다. 이정현, 송교창 정도의 선수라야 카드가 맞을 텐데 설마 그들을 생각하는 건 아닐 테고, 도대체 누구를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유 감독이 김국찬을 거론하더라. 김국찬은 전창진 감독이 비시즌 동안 공을 많이 들인 선수다. 내 마음대로 김국찬을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할 수 없는 일이라 일단 전 감독과 상의 후 연락주겠다고 말했다.”
올 시즌 KCC는 외국인선수의 빈곤한 득점력에 애를 먹었다. 특히 조이 도시는 수비나 스크린 등 팀에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올 시즌 13경기에 나와 6.1득점 8.6리바운드로 아쉬운 활약을 펼쳐 교체 대상으로 꼽혔다. 최형길 단장으로서는 조이 도시를 내보내고 라건아를 세운다면 한층 탄탄한 전력을 갖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유재학 감독이 원하는 김국찬은 선뜻 내주기 어려운 카드였다.
김국찬은 2017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로 전주 KCC에 지명됐지만 그동안 십자인대·발목 부상 등으로 재활을 반복하다 올 시즌 전창진 감독을 만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전 감독은 비시즌 동안 저녁마다 김국찬과 개인훈련을 하며 애정을 쏟았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최 단장으로선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유재학 감독은 또 다른 비장의 카드를 제시했다. 바로 이대성이었다. 이대성은 지난 시즌 연봉 협상에서 스스로 연봉을 낮춰 받는 선택을 했다. 모비스 구단은 이대성에게 3억 원을 제시했는데 선수가 1억 9500만 원을 받겠다고 하면서 시즌 종료 후 FA로 나갈 때 보상선수 없이 팀을 선택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이대성은 모비스와 1억 9500만 원에 계약하는 것으로 내년 시즌 모비스에 남지 않겠다고 공표한 셈이었다. 모비스 입장에서는 이대성을 데리고 있을 경우 내년 시즌 보상선수도 받지 못하고 이대성을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라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대성과 라건아가 우리 팀으로 온다면 이정현, 송교창을 포함해 대표팀 포지션별 선수들이 모인 거나 마찬가지다. 유 감독을 만난 후 전창진 감독에게 트레이드 관련 의향을 물었더니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대답하더라. 물론 김국찬을 포함해 리온 윌리암스, 박지훈, 신인 김세창을 내줘야 하는 아픔이 있지만 우리로서는 라건아, 이대성의 합류로 전력 상승을 노릴 수 있어 외면하기 어려운 트레이드였다.”
트레이드를 결정한 후 팀을 떠나야 하는 선수들과 면담이 진행됐다. 만남이 아닌 이별의 순간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만 존재한다. 최 단장은 먼저 리온 윌리엄스를 만났다고 한다. 리온 윌리엄스는 2012-2013시즌 고양 오리온스에 입단 후 안양 KGC, 부산 KT, 서울 SK, 원주 DB, 전주 KCC를 거쳐 다시 현대모비스로 이적한 터라 그에게 다시 트레이드 이야기를 꺼내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내가 20여 년 동안 농구단 프런트로 일하면서 리온 윌리엄스처럼 착하고 예의 바른 외국인 선수를 본 적이 없다. 오죽하면 전 감독이 리온을 가리켜 ‘천사’라고 말할까. 그를 앉혀 놓고 현대모비스로 트레이드됐다고 설명하니까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한숨만 내쉬더라. 나도 인간적으로 상당히 미안하고 괴롭다고 말했다. (김)국찬이도 트레이드 이야기를 꺼내니까 눈물을 보였다. 부상 등으로 어려운 시간들을 보냈고, 올 시즌 뭔가 해보려고 했던 의지가 컸던 만큼 팀을 떠나는 감정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 듯했다. 국찬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농구 열심히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돼 있다고. 그리고 열심히 해서 내가 너를 보낸 걸 후회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근면 성실한 선수라 유재학 감독 밑에서 잘 성장하리라고 믿는다.”
김국찬은 이번 트레이드로 KCC에서 데뷔 3시즌만에 현대모비스로 유니폼을 갈아입게 됐다. 사진=KBL
전주 KCC는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하며 또 다른 소식을 전했다. KBL에서만 9번째 시즌을 치르는 외국인 선수 찰스 로드 영입이다. 찰스 로드는 부산 KT 시절인 2014-2015시즌 이후 5시즌 만에 전창진 감독과 재회하면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찰스 로드는 올 시즌 일본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일본프로농구 B리그 시가 레이크스타즈에서 활약했는데 생활 면에서 어려움이 많았던 모양이다. 구단과 개런티 계약이 돼 있었지만 그조차 받지 않을 테니 제발 내보내달라고 애원한 끝에 팀을 나왔고, 이후 에이전트와 접촉하면서 마침내 우리 팀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
최 단장은 원래 대체 용병으로 지난 시즌 삼성 썬더스에서 활약했던 유진 펠프스와 트로이 길렌워터 등을 놓고 고민했다고 말한다. 그러다 찰스 로드가 일본 팀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접한 후 주장인 이정현을 만나 3명의 외국인 선수 중 어떤 선수가 팀 전력에 보탬이 될 수 있는지 알아봤다는 것. 이정현의 선택은 찰스 로드였다. 전창진 감독도 찰스 로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터라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는 선택이었다.
귀화 선수인 라건아의 국적은 한국. 외국인 선수 찰스 로드를 영입한 KCC는 규정상 외국인 선수 한 명을 더 영입할 수 있다. 그러나 KBL 규정에 따르면 라건아를 보유한 팀은 외국인 선수 2명의 연봉 총액이 42만 달러를 넘지 못하고, 한 선수 최고액은 35만 달러로 제한된다(라건아가 없는 팀은 2명의 외국인 선수 연봉 총액이 70만 달러, 한 선수 최고액은 50만 달러). 그로 인해 KCC는 찰스 로드에게 남은 8개월 동안 32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또 라건아를 보유한 팀은 외국인 선수 2명 포함해서 경기 출전은 1명만 가능하다. 즉 KCC는 라건아, 찰스 로드 중 경기에는 1명만 내보낼 수 있다. KCC가 굳이 또 한 명의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KCC는 트레이드와 함께 외국 선수 교체도 단행했다. 찰스 로드는 양손을 좌우로 벌리는 특유의 세리머니를 KCC 유니폼을 입고 펼치게 됐다. 사진=KBL
이정현-송교창-이대성-라건아-찰스 로드의 라인업은 가히 국가대표급이다. 이로 인해 KCC는 단숨에 우승 후보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전창진 감독은 아직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냈다.
“외부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겠지만 3~4라운드 정도까지 안정적인 전력을 이뤄야 가능한 부분이라고 본다. 아직은 섣불리 우승을 거론하기는 어렵다.”
전 감독은 유재학 감독이 이대성만이 아닌 라건아를 내준 데 대해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고 말한다. 모비스 경기를 보면서 팀 내부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대성, 라건아를 한꺼번에 트레이드시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
“포지션 별로 봤을 때 우리 팀에 가장 필요한 선수들이 합류해 반가움이 앞서지만 문제는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농구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부분이 앞으로 우리 팀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도록 모두 노력해야 한다.”
KCC의 주장 이정현은 주장으로서 새로 온 선수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고 말한다.
“대표팀에서도 호흡을 맞췄던 선수들이라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아직은 트레이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어 천천히 적응해가도록 돕고 싶다. 좋은 선수들이 합류한 만큼 서로 희생하고 양보하면서 팀워크를 구축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런 점에서 기대가 크다.”
KCC가 우승 후보로 꼽힌 데 대해 이정현은 “선장(감독)이 그 목표를 향해 간다면 선원들(선수들)은 당연히 따라가야 한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