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두 차례에 걸친 경찰과 검찰 조사 끝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검찰의 ‘김학의 지키기’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얘기가 달라졌다. 특별수사단이 꾸려져 재수사를 펼쳤고, 관련 사법부의 첫 판단이 나왔다.
첫 선고가 나온 것은 ‘뇌물(성접대 등) 제공자’인 윤중천 씨다. 11월 15일 오후 법원은 건설업자 윤중천 씨에게 유죄 판결과 함께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선고가 오래 걸릴 것이니 편하게 들으라”는 말과 함께, 1시간 가까이 유무죄 판단 이유와 양형을 설명했다. 일부 무죄 판단도 있었지만, 분명 김학의 전 차관에게는 불리한 판결이다. 뇌물 공여자가 유죄를 받았기 때문. 최후 변론에서 “동영상 속 인물은 내가 아니”라며 혐의를 부인했던 김학의 전 차관도 유죄를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받고 있다.
건설업자 윤중천 씨. 사진=임준선 기자
11월 15일 오후 4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손동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등 치상),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알선수재) 등 혐의로 기소된 건설업자 윤중천 씨에 대한 선고 공판을 진행했다.
윤 씨는 2006~2007년 김 전 차관에게 소개한 이 아무개 씨를 지속적으로 폭행하거나 협박하고, 성관계 영상 등으로 억압하거나 위험한 물건 등으로 위협하며 성폭행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11~2012년에는 건설업 운영대금과 강원도 원주 별장 운영비 명목 등으로 21억여 원을 내연관계였던 권 아무개 씨에게 돌려주지 않은 혐의(사기)도 있다. 돈을 갚지 않고자 부인을 시켜 자신과 권 씨를 간통죄로 고소한 혐의(무고)도 받고 있다.
윤 씨는 김학의 전 차관의 뇌물수수 및 성범죄 의혹의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윤 씨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엄격했다. 검찰은 10월 14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징역 13년을 구형했는데, 법원은 징역 5년 6월을 선고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등 치상) 혐의는 공소기각(소송에서 형식적인 흠결이 있을 때 실체적 심리 없이 소송을 종결하는 것) 판결을, 무고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나머지 혐의들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했다.
윤 씨는 성범죄에 대해서는 강제성이 없었다면서도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일부를 시인했다. 게다가 이미 재판 과정에서 반성하고 있다는 입장을 드러내며 죄를 인정한 바 있다. 그는 앞선 결심공판 최후진술을 통해 “제 자신이 부끄럽고 싫다. 제 가치관이 잘못됐고, 삶을 잘못 산 것은 맞는 것 같다”며 “조금의 아쉬움이 있다면 2013년 사건이 불거졌을 때 그렇게 끝났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고개를 숙인 바 있다.
#억대 뇌물 및 성접대 김학의 전 차관 ‘유죄’ 가능성
이제 법조계 관심은 김학의 전 차관으로 쏠리고 있다. 같은 날 윤중천 씨와 함께 기소된 김 전 차관은 따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윤 씨보다 일주일 뒤인 11월 22일 선고공판이 예정돼 있다.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억대 뇌물과 성접대를 혐의 기소된 김 전 차관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김 전 차관은 윤 씨와는 다른 전략을 들고 있다. 혐의를 다투고 있다. 김 전 차관은 1심 선고 전에 열린 마지막 재판까지, 자신을 향한 혐의 사실을 적극 부인했다. 김 전 차관은 윤중천 씨와 잘 알고 지낸 사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윤 씨의 별장에 함께 간 적 없느냐’는 검찰 측 질문에는 “그런 기억이 없다”고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검찰이 김 전 차관의 모습이 담겼다며 제시한 증거 사진에 대해서는 “가르마 모양이 정반대다. 나는 평생 다른 방향으로 가르마를 탔다”며 검찰 측의 증거도 부인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진=고성준 기자
김 전 차관은 이처럼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윤 씨는 검찰 조사 등에서 “영상 속 인물이 김학의 전 차관이 맞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미 피해 여성들의 진술도 확보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검찰은 앞선 재판에서 증인들의 진술을 통해 재판부에 유죄로 볼 수 있는 근거들을 직접 제시했다. 10월 초에는 윤 씨의 운전기사가 증인으로 출석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게 청탁 차원에서 성접대와 금품을 제공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그는 “처음 김 전 차관을 만난 뒤 한달에 한두 번은 얼굴을 본 것 같다. 성접대 관련 여성의 오피스텔에 여러 차례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전 차관이 윤 씨의 원주 별장에 방문한 적도 있었으며 그 자리에 여성을 동원한 것도 목격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9월 초에는 세간을 시끄럽게 만든, ‘동영상 CD를 만든 사람’이 직접 나와 법정에 나왔다. 윤 씨의 5촌 조카가 바로 그 증인인데, 그는 “지난 2013년 경찰 조사에서 윤 씨의 부탁을 받고 김 전 차관의 성관계 동영상 CD를 직접 만들었다”고 털어놨다. 검찰은 해당 CD를 법정에서 제시했는데, 2008년 10월 14일 수정된 ‘2007년’이라고 적힌 폴더에는 ‘hak.skm’, ‘K_hak.skm’, ‘khak.skm’ 세 파일이 있었다.
5촌 조카는 저장 경위를 묻는 검찰에 “윤중천 씨가 휴대전화에서 꺼내 PC에 저장하라고 했다”며 “윤 씨에게 김 전 차관이라는 얘기를 들어서 적은 것 같다. 큰 의미를 갖고 만들지는 않았고 복원하다 보니 이름이 저렇게 만들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hak’(학)이라는 제목을 쓴 것이 김학의 전 차관을 지칭한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다.
여기에 윤 씨 유죄 선고까지 더해지면서, 사실상 김학의 전 차관의 유죄는 확정이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재판부를 역임한 부장판사는 “같은 사건이 나뉘어서 다른 재판부에 배당됐을 때 미리 사건에 대한 판단을 어느 정도 공유한다”며 “김 전 차관 주장 외에는 모든 증거가 ‘뇌물성 성접대’였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검찰 관계자 역시 “김 전 차관이 윤 씨에게 부동산 등 각종 뇌물을 요구했다는 진술이 이미 확보된 상황에서 뇌물 제공 부분이 유죄가 됐다는 것은 받은 측(김 전 차관)의 유죄 확률이 80% 이상 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유무죄를 다툴 때는 ‘유죄’가 나오면 뉘우침이 없다고 봐서 처벌이 가중된다”며 “김 전 차관이 성공률이 낮은 확률의 싸움을 한 게 아닌가 싶다. 지금 속으로 ‘아차’ 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