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제형식: 33.3x45.5cm Mixed media on canvas 2019
동양의 가장 오래된 조형 언어인 서예는 자연 현상이나 이치에서 뜻을 추출해 함축된 형태나 상징 기호로 보여주는 예술이다. 19세기 우리나라 화가들은 이러한 서예의 본질에서 새로운 회화의 길을 찾으려고 했다.
즉, 글에 담긴 깊은 정신성을 그림으로 담아내려고 했던 것이다. 글자의 기운을 회화에 담으려는 노력인데, 문자의 형상미를 좇거나 서예의 필력으로 회화를 만들려는 시도들이었다. 이를 두고 미술사가들은 ‘글의 정신’ 혹은 ‘글자의 정신’이라고 칭했다.
명제형식: 50x70cm Mixed media on canvas 2019
이런 기능에 가장 충실한 작가로는 오귀스트 르누아르를 꼽는다. 프랑스 인상주의 대표작가 르누아르는 ‘가장 아름답고 예쁜 그림의 작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의 그림에 대한 대중의 인기는 좀처럼 식을 줄을 모른다. 오늘날에도.
그는 당대에도 인기 작가였다. 그것은 그가 색채 혁명으로 불리는 인상주의 작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색채주의자였다는 점, 유럽 근대화의 새로운 세력인 중산층의 일상과 그들의 긍정적인 정서를 이해하기 쉽게 담아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행복해진다. 르누아르는 이처럼 사람들에게 그림으로 행복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림이란 벽을 장식해야 한다. 그림이란 호감 가는 것,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담았기 때문에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는 작가로 살아 있는 셈이다.
박영희 작가의 그림을 보면 르누아르의 생각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선 그의 그림은 행복한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특별한 설명이 없이도 보는 순간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림의 흡입력이 강하다.
명제형식: 112.1x145.5cm Mixed media on canvas 2019
완성된 그림도 그냥 스치듯 보면 미완성처럼 보인다. 작가 자신도 그림에서 손을 떼는 순간이 완결된 그림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림은 무질서한 낙서처럼 보이지만 일정한 질서가 보인다. 필력이 잘 드러나는 여러 성격의 선의 조화, 세련된 색채 감각, 숫자와 기호, 메모같이 보이는 문장들. 그리고 여백도 있는데 그의 회화에서 그림 전체를 아우르는 중요한 요소로 보인다.
따라서 그의 작업에서는 본능적 직관력이 잘 드러나 있다. 계획된 회화가 아니라 철저하게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그림이다. 그래서 필력과 세련된 감각이 작업의 성공 여부를 가늠한다. 이런 방법으로 그가 회화를 통해 말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에는 인간이 해석하지 못하는 세상이 존재합니다. 그것을 표현하려는 노력의 결과가 제 작업입니다.”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