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stem of the world 19-12: 200x80cm Acrylic on fabric and wood 2019
풍류에 특별히 관심 없는 사람일지라도 우리의 산천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오밀조밀한 선으로 다듬어진 많은 산이 빚어낸 경치가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사계절 덕분에 다양한 색채의 풍경을 맛볼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자연이다.
조선 후기 화가들은 우리 경치를 자랑스럽게 여겨 많은 작품에 자부심을 담아냈다. 이런 그림을 ‘실경산수화’라고 부른다. 이름을 얻었거나 숨어 있는 절경을 찾아다니며 현장에서 보고 그리는 것이다. 19세기 유럽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좇아 야외 사생했던 태도와 같은 이치다.
그런데 우리 선조 화가들은 단순히 경치의 겉모습만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풍경의 근본 모습을 찾으려고 했다. 진짜 경치를 그리려 했던 이런 시도를 ‘진경산수화’라고 한다. 풍경의 본 모습인 진짜 경치는 어떤 것일까.
System of the world 19-01: 91x40cm Acrylic on fabric and wood 2019
그것은 그냥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라 경치를 이해하는 것이다. 멋진 경치 앞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빼어난 경관은 물론이고 바람의 움직임, 숲이나 나무의 향기, 공기의 신선함과 온몸으로 전해오는 정취. 이처럼 오감으로 경치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풍경을 진짜로 알게 된다. 이런 생각으로 그리는 풍경이 진경이다.
진경의 정신을 처음 그림으로 확립한 이는 겸재 정선(1676-1759)이다. 이런 생각은 그의 대표작 ‘박연폭포’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그림은 개성 북쪽에 있는 폭포를 직접 보고 그렸다. 그러나 그림은 실제 폭포와 많이 다르다. 겸재는 현장에서 받은 감동을 더욱 실감나게 표현하려고 눈으로 본 폭포의 모습과 다르게 연출해 그렸다.
거대한 폭포와 마주했을 때 그곳에는 눈을 압도하는 절벽과 함께 소리도 우렁차게 들릴 것이다. 그리고 촉촉한 물안개와 신선한 내음이 촉각과 후각을 자극할 것이다. 또 이 모든 감각이 합쳐 느껴지는 청량한 기운이 마음을 깨끗이 씻어준다.
겸재는 이 모든 걸 ‘박연폭포’에 담아냈는데, 단순히 보는 풍경이 아니라 오감으로 체험하는 풍경이 진짜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System of the world 19-05: 40x71cm Acrylic on fabric and wood 2019
이런 진경의 생각을 이 시대의 감성에 맞게 연출하는 작가가 이원순이다. 그의 그림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설명 없이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다. 쉬운 그림이지만 결코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특별한 회화다.
세찬 빗줄기 속의 들판이나 눈보라 치는 풍경이 주된 소재다. 그림은 영화 스크린처럼 오목한 화면 속에 들어 있다. 작가가 연구한 끝에 얻어낸 각도의 화면이다. 그리고 거친 질감으로 마무리해 아주 사실적으로 보인다. 풍경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현장에 있는 느낌을 시각적 연출로 구현한 젊은 작가의 노력이 회화의 본질에 맞닿아 있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그래서 이원순의 그림은 인기가 많다.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