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리스크를 털어낸 롯데그룹이 ‘원(ONE) 롯데’ 구상의 마지막 퍼즐 맞추기에 집중하고 있다. 롯데는 호텔롯데 상장이라는 마지막 과제를 남겨뒀지만, 면세점 사업에 먹구름이 드리우며 호텔롯데 상장에 속도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2017년 4월 3일 열린 롯데월드타워 그랜드 오픈식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50주년 기념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롯데는 우리나라 기업입니다. 호텔롯데에 대한 일본 계열 회사들의 지분 비율을 축소할 겁니다. 주주 구성이 다양해질 수 있도록 기업공개를 추진하고 종합적으로 개선 방법을 강구하겠습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015년 8월 경영권 다툼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형제 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지배구조 문제가 드러나며 불거진 ‘일본기업’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이후에도 신 회장은 꾸준히 호텔롯데 상장 의지를 내비쳐왔다. 호텔롯데를 상장하고 롯데지주와 호텔롯데를 합병해 ‘원 롯데’를 완성하겠다는 것. 호텔롯데의 상장은 호텔롯데에 대한 일본 지분 비중을 줄이고, 롯데지주 위에 호텔롯데가 있는 ‘옥상옥’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지난 9월 기준 호텔롯데 최대주주는 19.07%의 지분을 보유한 일본롯데홀딩스. 나머지 77%가량의 지분도 L투자회사 등 일본롯데 계열사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 신 회장이 연루된 데다가 2017년에는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까지 겹치며 호텔롯데 상장은 멀어졌다. 호텔롯데 상장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면세사업부의 실적이다. 면세사업부는 호텔롯데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3분기 호텔롯데의 매출액 5조 3980억 원 가운데 면세부문 매출은 4조 4750억 원으로 총 매출의 82%를 차지했다.
하지만 ‘믿는 도끼’인 면세사업부가 오히려 상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매출 8000억 원 규모의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을 잃었다. 점유율 회복을 위해 오는 12월 예정된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사업권 선정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이지만, 앞서 인천공항공사와 임대료 갈등을 빚었던 만큼 이번 입찰 결과를 낙관하기 어렵다.
신 회장에 대한 유죄판결로 월드타워점 특허 유지 여부가 불확실한 것 또한 문제다. 관세청은 2018년 2월 1심에서 신 회장의 뇌물공여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자 특허 취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면세시장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속하게 결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간 신 회장 재판이 길어지며 관세청의 결정이 지연됐으나, 지난 10월 법원의 최종판단이 나오며 관세청 또한 결정을 미룰 수 없게 됐다. 롯데면세점 관계자에 따르면 월드타워점의 지난해 매출은 1조 200억 원으로 면세부문 매출(7조 5000억 원)의 14%가량을 차지한다.
롯데에서는 월드타워점 특허 취소 가능성을 낮게 점치고 있다. 법리상 월드타워점 특허 취소가 불가하다는 것. 롯데 측은 신 회장의 뇌물 공여가 특허 ‘취득’ 과정과 관계가 없고, 면세점 운영인이 신 회장이 아니라는 점을 근거로 내세운다. 뇌물의 대가로 면세점 특허 발급을 위한 공고가 이뤄졌다 할지라도 취득과정에서 문제가 없으면 위법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현행 관세법 제178조 2항에서는 ‘세관장은 특허보세구역의 운영인이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특허를 받은 경우 특허를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관세청의 결정을 기다려볼 수밖에 없지만, 특허가 취소가 될 것이라 보지 않는다. 특허 공고과정과 취득과정이 나눠져 있다. 관세법 178조에서는 특허 취득과정에서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어 공고와는 관계가 없고, 특허 취득 당시 롯데면세점 대표이사가 신 회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관세법에서 규정하는 ‘운영인’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대기업들이 면세점을 철수하며 업계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1500명 가까운 월드타워점 근무자들의 고용 문제 등을 고려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롯데면세점의 기대와 달리 면허 취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선 과거 정부의 입장이 이같은 전망의 근거다. 이와 관련, 대기업 계열 면세점 관계자는 “과거 관세청이 신규 사업권 추가를 강행했다는 논란이 불거지자 ‘문제가 확인되면 특허를 취소하겠다’고 밝혔다”면서 “그간의 히스토리를 봤을 때에는 특허 취소 혹은 중징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뢰 회복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는 관세청장의 현 수장이 검찰 출신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고용 문제가 걸려있어 정부와 관세청의 부담이 큰 것 같다”면서도 “현 관세청장이 검찰 출신인 것이 관세청이 월드타워점 특허 취소 여부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귀띔했다.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 관세청이 면세점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국정농단에 연루돼 논란의 중심에 섰던 만큼, 이번 기회를 통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영문 현 관세청장 임명 당시 청와대는 “관세청을 국민과 기업의 신뢰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게 할 적임자”라고 밝혔다.
관세청은 조만간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예정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월드타워점 특허 취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법리 검토가 마무리 단계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아직 결정이 나거나 공유받은 내용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이어 “담당 부서에서 법리적 검토 이외에 고용 문제 등을 고려해 특허 취소 여부를 결정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론이 나면 고용 문제에 관해서도 답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