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은 국내외 보톡스 시장의 강자들이다. 국내 시장은 메디톡스의 보톡스 브랜드 ‘메디톡신’이 독보적이다. 대웅제약은 국내 업체 가운데 가장 먼저 미국에 진출했다. 미국 보톡스 시장 규모는 약 4조 5000억 원으로 전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올해 초에는 유럽 진출을 위해 허가 신청서도 제출했다.
대웅제약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2.8%, 80.1% 감소했다. 서울 강남구 대웅제약 건물 전경. 사진=고성준 기자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이 올해 3분기 어닝 쇼크 수준의 실적을 기록했다. 메디톡스에 따르면 이 회사 별도 재무제표 기준 3분기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0.2% 증가한 484억 원, 영업이익은 82.8% 줄어든 33억 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이익은 80.1% 줄어든 29억 원이다. 시장 전망치를 밑돌았다. 앞서 증권가에선 메디톡스가 3분기 132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매출액도 532억 원으로 10%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메디톡스는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절반가량 줄어든 데 이어 3분기 역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대웅제약도 사정은 비슷하다. 올해 3분기 매출 2425억 원, 영업이익 28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와 비교해 매출은 4.5%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65.2% 감소했다. 순이익은 3억 2500만 원으로 무려 92.8% 줄었다. 대웅제약 역시 시장 전망치에 못 미쳤다. 증권가에선 대웅제약이 올해 3분기 매출 2578억 원, 영업이익 151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적 부진은 우선 경영 환경 악화 때문이다. 대웅제약의 주력 품목은 라니티딘 성분이 들어간 항궤양복합신약 ‘알비스’와 ‘알비스D’였는데, 지난 9월 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라니티딘 성분에 ‘NDMA’라는 발암 우려 성분이 포함돼 있다고 발표하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생산을 전면 중단했고 시중에 유통된 약품을 모두 회수했다. 메디톡스는 메디톡신의 수출 부진이 영향을 미쳤다. 메디톡스는 현재 60여 개국에 메디톡신을 수출하고 있다. 국내 업체의 보톡스 수출은 지난 3분기 포함 4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3분기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13.6% 줄어들었다.
메디톡스는 지난 2분기에 이어 올해 3분기에도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을 발표했다. 사진=메디톡스 홈페이지
생산 중단과 제품 회수, 수출 부진이라는 악재가 이미 실적 전망치에도 반영됐음에도 이를 밑도는 성적표를 받은 것은 3년째 벌이고 있는 ‘보톡스 전쟁’의 소송 비용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이 균주와 보톡스 제제 제조공정을 도용했다며 국내 법원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등에 제소했다. 대웅제약은 사실무근이라며 맞서고 있다. 현재 영업비밀 침해금지 등과 관련해 총 3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은 공식적으로 소송 비용이 얼마나 들어갔는지는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복수의 증권사들은 두 회사가 지급수수료 계정 등에 소송비를 반영한 것으로 보고 있다. 두 회사의 지급수수료는 2분기와 비교해 크게 늘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대웅제약의 경우 약 104억 원, 메디톡스는 78억 원가량을 올해 3분기 소송 비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이 지난 2분기에 쓴 소송비는 각각 약 45억 원, 40억 원으로 알려진다. 3분기에 소송비를 두 배 가까이, 또는 그 이상 늘린 셈이다. 두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미국 ITC 조사가 본격화되고, 이에 따라 두 회사가 대응 수준을 높이면서 비용도 늘렸다.
ITC의 판단은 두 회사의 갈등에 종지부를 찍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한국 법원은 최근 미국 ITC에서 같은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ITC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핵심 공방을 미국 현지에서 하게 된 만큼 비용이 큰 폭으로 늘어나게 된 것이다. 특히 메디톡스는 미국 검찰 검사장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총력 대응을 하고 있다. 현재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은 서로 “승기를 잡았다”고 주장한다.
현재 ITC 소송은 자료제출을 마치고 전문가와 질의응답 등을 진행하고 있다. 검증 과정이 끝나면 내년 2월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고, 6월에 예비 판정이 나온다. 최종 결과는 10월이다. 사실상 6월에 나올 예비 판정으로 두 회사의 갈등이 마무리된다.
두 회사의 보톡스 전쟁은 내년 6월께 판가름 날 전망이다. 대웅제약 나보타(왼쪽)와 메디톡스 메디톡신. 사진=각 사 제공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대웅제약이 알비스를 회수하면서 쓴 비용은 약 50억 원으로, 소송 비용은 이보다 두 배를 더 썼다. 메디톡스 역시 수출 부진으로 원가율이 10%가량 오른 상황에서도 더 많은 돈을 투입했다”고 말했다.
실적 발목을 잡을 정도의 비용이 들어가면서 주주들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11월 들어 두 회사의 주가는 힘을 못쓰고 있다. 올해 초 21만 원 대에 달했던 대웅제약 주가는 3분기 실적발표(지난 11월 1일) 이후 13만 4000원까지 떨어졌다. 4월 63만 원대까지 치솟았던 메디톡스 주가도 11월 20일 현재 29만 21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실적 발표 당일 5% 반짝 상승 했지만 이후 하향세다. 증권가도 일제히 대웅제약과 메디톡스 주가 하향 조정에 나섰다. 앞서의 증권사 관계자는 “소송 비용 등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두 회사의 실적이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메디톡스는 거액의 소송 비용은 불가피하지만 승소할 경우 주주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는 입장이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회사의 대응 상황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주주들은 메디톡스가 우세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당분간 적지 않은 비용이 투입되겠지만, 결과가 나오면 장기적으로 주주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한국 법원과 미국 ITC에서 동시에 절차를 진행하면서 비용이 늘었다”며 “미국에 이어 캐나다에 진출한 ‘자체 개발’ 보톡스의 북미 시장 진출이 본격화 된다. 올해 9월엔 유럽 EMA 승인을 받았다. 유럽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시장인 만큼 중장기적으로 수익성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