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1호 인터넷전문은행 케이(K)뱅크가 자금난으로 경영 위기에 처하면서 대출 등 은행 고유 업무만 강조하는 인터넷전문은행 제도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심성훈 케이뱅크 은행장. 사진=연합뉴스
금융권에 따르면 케이뱅크는 지속적인 적자 행진에 정상 영업이 어려운 상태다. 케이뱅크 대주주인 우리은행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케이뱅크는 올해 3분기까지 635억 5400만 원의 순손실을 냈다. 지난해 3분기 443억 1700만 원의 순손실에서 오히려 더 늘었다. 자금 수혈을 위해 케이뱅크는 올해 1월 이사회에서 59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의결했다.
KT는 증자를 계기로 케이뱅크 최대주주로 올라서기 위해 금융위에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신청했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에 따르면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이 인터넷은행 지분 10% 이상 보유하려면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거쳐야 한다. 통과 시 지분을 최대 34%까지 소유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4월 KT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하면서 금융위가 적격성 심사를 전면 중단했다. 자금 조달 계획이 무산된 케이뱅크는 대출 영업을 중단하는 등 고사 위기에 놓였다.
케이뱅크는 21일 열리는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대주주 적격성 심사 조건을 완화하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를 바라고 있다.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해당 개정안은 인터넷은행 대주주 자격 요건에서 공정거래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금융 관련 법령을 제외한 법 위반 전력을 삭제하는 것이 뼈대다. 개정안이 통과하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받는 KT는 케이뱅크 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어 증자를 통해 케이뱅크 자금 수혈이 가능하다. 다만 개정안은 앞서 지난 10월 24일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에서도 논의됐으나 KT 특혜 논란이 일 수 있다는 일부 의원의 우려에 통과하지 못했다.
KT를 제외한 우리은행, NH투자증권 등 다른 20개 주주들도 증자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주주들은 애초 KT가 케이뱅크를 이끌기로 하고 참여한 데다, 케이뱅크 경영 우려가 심화하는 지금 선뜻 주도적으로 나서려는 곳이 없다는 후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카카오뱅크는 출범 초기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지분율 50%를 보유하는 등 절대적인 대주주여서 빠른 증자가 유리하지만 케이뱅크는 주주 구성이 다양하고 이해관계가 달라 증자에 불리하다”며 “특히 우리은행 등 금융사의 경우 케이뱅크와 업종이 겹치는 만큼 경쟁사 투자를 늘리면 자사 고객이 이탈하는 카니발라이제이션(자기 시장 잠식), 일명 ‘제 살 깎아먹기’를 우려해 투자에 미온적이라는 얘기가 나온다”고 귀띔했다. 이런 이유로 현재 케이뱅크가 재기할 방법은 개정안 통과로 KT가 대주주로 올라서면서 유상증자에 성공하는 것이 유일하다.
케이뱅크가 지속 적자로 자본 확충이 시급하지만 KT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중단으로 유상증자에 난항을 겪고 있다. 증자에 성공하더라도 지금 같은 사업모델로는 전망이 어둡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개정안 통과 유무를 떠나 케이뱅크의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KT가 대주주로 올라서더라도 케이뱅크가 대출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일 뿐 적자 늪에서 벗어나 수익성을 끌어올리긴 힘들 것이란 분석이다. 우선 케이뱅크는 플랫폼 경쟁력이 약하다. 카카오뱅크는 대부분 국민이 이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카카오톡을 보유하고 있어 확장성과 편의성이 뛰어나다는 강점을 앞세워 빠르게 성장했다. 카카오톡 사용자들을 상대로 다양한 마케팅을 선보인 결과 각종 혜택이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퍼지면서 금리 연 5%짜리 특별판매 정기예금이 온라인에서 1초 만에 완판하는 등 효과를 봤다.
케이뱅크는 시중은행과 다른 독자적인 사업모델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예컨대 올 하반기 제3인터넷은행에 재도전한 토스뱅크 컨소시엄은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등 금융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특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챌린저뱅크 방식의 사업모델을 구축해 성장성에 기대감이 깃들어 있다. 챌린저뱅크란 영국에서 등장한 소규모 신생 특화 은행으로 기존 은행처럼 백화점식 사업모델이 아닌 특정 분야에 집중해 성장력을 키우는 전략을 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토스는 송금 특화 서비스로 탄탄한 고객 기반을 확보한 만큼 토스뱅크 출범 시 기존 고객들이 연계 서비스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고, 자기만의 사업모델로 차별성을 확보했다”며 “케이뱅크는 독자적 사업모델을 구축하지 못한 상황에서 카카오뱅크처럼 강한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았기에 유상증자에 성공해도 그건 한숨 넘긴 것일 뿐 전망이 좋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터넷전문은행이 성공하려면 확장성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툴인 소셜 기능이 필요하다”며 “케이뱅크가 이를 얼마나 잘 구축할 수 있느냐가 승부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케이뱅크의 고전이 앞으로 진출할 제3인터넷은행의 선례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저금리 대출 등 금리경쟁으로 시중은행과 승부하기보다 소규모 특화 서비스를 내세워 틈새시장을 노릴 수 있도록 금융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차임은행이 결제 특화 서비스로 고객 기반을 다지고, 일본 소니은행이 투자신탁과 대출 등 개인 자산관리 서비스로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 그 예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은행법상 대출 등 고유 은행 업무를 해야만 인터넷은행에 진출할 수 있고, 금융당국도 고유 업무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며 “소규모 특화 사업모델이 가능한 여건이 만들어져야 인터넷은행마다 고유 경쟁력을 갖지, 일반적인 업무를 취급해선 시중은행과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고 꼬집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