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찾은 사월마을 입구에 공장 간판이 빼곡하게 들어서있다. 사진=최희주 기자
#주민 12%가 암 환자지만, 환경 오염과 관계 없다는 환경과학원
“계속 싸워야지요.” 11월 19일 오후 7시. 인천 서구 왕길동 사월마을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환경부에서 실시한 제2차 주민건강영향조사 결과에 대한 소회다.
인천 서구에 위치한 사월마을은 이른바 ‘쇳가루 마을’로 유명하다. 1992년 처음 쓰레기 매립지가 마을에 들어선 이후 현재 400여 개의 공장이 마을 곳곳에 설립됐다. 120여 명의 주민보다 더 많은 숫자다. 마을 곳곳에는 주변 공장에서 날아온 쇳가루와 먼지가 쌓여 눈으로도 확인이 가능했다.
이곳 주민들은 주변 공장과 수도권매립지에서 날아드는 먼지로 마을 사람들이 병 들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사람보다 많은 공장에서 뿜어내는 매캐한 연기로 이곳 주민의 70%는 기관지 질환을 앓고 있다. 밤낮으로 계속되는 공장 소음에 우울증과 정신불안 증세를 보이는 환자도 전체 주민의 40.6%에 이른다. 사월마을 주민들은 19일 일요신문과의 만남에서 “인근 폐기물 처리장에서 나온 쇳가루와 미세 먼지 등으로 주민 125명 중 15명이 암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가족처럼 지낸 이웃사촌들이 하나둘 병들어가자 사월마을 주민들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2017년 환경단체와 사월마을 주민들은 정부에 주민들의 건강상태 악화와 주변 환경에 대한 역학관계를 조사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듬해 환경부는 사월마을 52세대, 주민 125명을 대상으로 환경오염 및 주민건강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2년여의 조사 끝에 환경부는 지난 11월 19일 사월마을이 주거환경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주민 이주 또는 공장 이전을 위한 장단기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실제로 환경오염 분석결과, 사월마을의 대기환경 오염수준은 다른 지역보다 심각했다. 대기 중 중금속의 주요 성분인 납, 망간, 니켈, 철 농도는 인근 지역보다 2~5배 높았다. 다만 사월마을 주민의 12%가 앓고 있는 암 발병률에 관해서는 타지역보다 유의하게 높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와 주민들 사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수도권매립지 제2매립장에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있다. 사진=연합뉴스
#수도권 매립지를 향한 환경부의 복잡한 속내
사월마을 주민과 환경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이들이 사월마을 환경오염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한 수도권매립지가 주민건강영향조사 대상에서 빠진 까닭이다. 인천 서구에 위치한 수도권매립지는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의 쓰레기가 모두 모이는 광역폐기물처리시설이다. 1992년 서울 상암동 난지도 매립장이 포화상태가 이르러 더 이상 쓰레기를 묻을 수 없게 되자 대체 매립지로 선정된 곳이다. 이후 27년 동안 수도권에서 배출된 쓰레기는 모두 이곳에 매립되고 있다. 전체 쓰레기의 48%는 서울시, 34%는 경기도, 나머지 18%가 인천시에서 온다.
사월마을 민관합동조사협의회 민간위원으로 참여한 김선홍 글로벌에코넷 상임회장은 11월 20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수도권매립지는 사월마을에 유입되는 유해물질의 가장 큰 오염원이다. 이번 조사대상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도권매립지 인근 환경조성이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았던 1992년에는 유해물질로 인한 피해가 더 컸다. 제1매립장이 마을에서 1㎞ 남짓이고 주민들은 수년 동안 이로 인한 피해를 봤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11월 19일 사월마을을 방문한 결과, 마을 내부로 들어갈수록 수도권매립지와 더욱 가까워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도권매립지를 바라보는 환경부의 심정은 복잡하다. 3개의 광역단체 어느 곳에서도 이 거대한 쓰레기 매립지를 떠안고 싶어하지 않는 까닭이다. 수도권매립지는 애당초 2016년 폐쇄 예정이었으나 환경부와 광역단체에서 적절한 대체 매립지를 찾지 못해 결국 올해 2025년으로 그 기한이 연장됐다. 이러한 결정에 수십 년 동안 악취에 시달려온 매립지 인근 거주민들은 크게 반발했다.
상황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2025년 계약종료를 앞두고 있지만 후속 대책으로 이뤄져야 할 대체 매립지 선정은 지지부진하다. 통상적으로 대체 매립지 조성에 약 7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까닭에 일각에서는 이미 적절한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환경부는 11월 13일 예정되었던 4자 실무 회의(환경부,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현재 3개의 광역단체는 “환경부가 나서서 대체 매립지 문제에 대한 조율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조사대상에 수도권매립지를 포함하는 것이 환경부로서는 부담스럽지 않았겠냐는 말이 나온다. 대체 매립지 선정 협의조차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수도권매립지가 환경오염의 주 원인으로 지목되면 조정자인 환경부만 난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는 수도권매립지로 향하는 통행차량의 수만 포함되었을 뿐, 여기에 대한 역학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환경단체 활동가는 “환경부에게 수도권매립지는 손에 박힌 가시다. 조정자인 환경부 입장에서는 이대로 한 번 더 계약연장을 하는 것이 가장 편해 수도권매립지를 조사대상에 넣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이번 조사로 수도권매립지에서 초미세먼지가 나왔다느니, 유해물질이 나왔다느니 하는 결과가 나오면 어느 광역단체가 맡겠다고 하겠나. 결국 피해보는 것은 시민들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수도권매립지는 애초부터 조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보인다. 장준영 국립환경과학원 연구관은 “이번 조사는 마을 환경이 주민건강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오염원별 조사는 오히려 조사 목적을 흐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체 매립지 선정에 대해서도 환경부는 조정자로서의 역할만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환경부 관계자는 “폐기물처리는 법적으로 지자체 소관 사항“이라며 ”환경부는 정해진 권한 내에서 3개의 광역단체 간 조정과 지원을 할 뿐”이라고 답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