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영화로 성공을 거둔 ‘미녀는 괴로워’는 우리 나이로 마흔셋에 만들었다. 난 마흔셋이 될 때까지 한 번도 흥행을 경험하지 못했다. 마흔이 넘도록 본인 가정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큰아들을 보시는 아버지는 얼마나 화가 나셨는지 나만 보면 “대학교까지 가르쳤더니 초등학교만 겨우 나온 지 애비에게 손 벌리는 기생충 같은 놈(그래서 난 올해 큰 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이 혹시 내 이야기는 아닐까 하고 몹시 긴장했다)”이라고 하셨다.
천신만고, 우여곡절 끝에 마흔셋이 돼서 ‘미녀는 괴로워’를 통해 처음 가장 노릇을 할 수 있었고 비로소 아버지에게도 인정받는 아들이 될 수 있었다. 더불어 당시 신인이었던 김아중 씨를 주연으로 발탁한 것에 대해서도 영화 동료들이나 언론, 평단으로부터 “과감히 신인배우를 캐스팅해서 영화도 성공시키고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여배우를 수혈했다”는 칭찬도 듣게 됐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난 지금까지 10여 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내가 처음으로 원했던 주연배우와 영화를 만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번 영화는 이 배우가 가장 적격이다’라는 간절한 생각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건네면 내가 원했던 배우들에게 이런저런 이유와 사정으로 “참여할 수 없다”는 대답을 받게 되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처음에는 그런 거절을 당할 때마다 낙심하고 용기를 잃고 한동안은 충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배우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름 완성도 있는 기획과 개발과정을 통해서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투자자들에게 작품을 제안하면 역시 무수한 투자자들에게 거절을 당한다. 처음에는 이런 거절들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나를 믿고 같이하는 동료들에게 짐짓 태연한 척, 의연한 척 행동했지만 아주 소심한 나는 정말 누구보다도 더 낙담하고 힘이 빠지고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뭐가 문제지? 왜 우리 영화의 의미와 재미를 공감하지 못하는 거지?”라는 자책과 실망은 거절을 당한 그날부터 꽤 오랜 시간 불면의 밤을 나에게 선사했다.
그러다 ‘미녀는 괴로워’의 경험을 한 연후엔 거절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나에게 엄청난 기쁨과 영광을 선사한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도 여러 투자사에게 거절을 받은 프로젝트였다. 이제 나에게 거절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라고 받아들인다. 거절은 어쩌면 가장 최적의 파트너를 만나게 되는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얼마 전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본 많은 학생이 이제 대학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리고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시간이 왔다. 많은 시간 최선을 다해 온 수험생들과 사회초년생들은 앞으로도 무수한 거절을 경험할 것이다. 원했던 회사, 원했던 대학에서 그들은 아마 무수한 거절을 받게 될 것이지만 나는 우리 사회의 소중한 청년들이 거절을 두려워하거나 그 거절로 너무 낙담하지 말기를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다.
거절은 필연적이며 그 거절로 인해 당신들은 최고의 인생 파트너와 동반자를 찾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파이팅, 또 파이팅해주길 바란다. 모든 꽃은 봄에만 피는 것이 아니다. 어떤 꽃은 여름에도 피고 가을엔 코스모스가 피고 매화는 추운 겨울을 뚫고 꽃망울을 피워낸다.
원동연 영화제작자
원동연은?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대학을 졸업하고 개그맨이 되고 싶었으나 개그맨은 못 되고 영화를 제작하게 된 남자. ‘미녀는 괴로워’, ‘광해: 왕이된남자’, ‘신과함께: 죄와벌’, ‘신과함께: 인과연’ 등 많은 영화를 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