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넷은 ‘프로듀스’ 시리즈 조작 논란으로 온갖 비난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십대가수’ 강행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오히려 10대의 눈으로 뽑는 10대 가수라는 차별화만을 강조해왔다. 이를 바라보는 방송가의 시선은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프로그램 제작진과 일부 엔터테인먼트사의 검은 거래 정황이 드러났고, 그동안 오디션으로 배출된 아이돌 스타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추락한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엠넷 ‘십대가수’ 강행하다가 “여론 무시” 빈축
엠넷이 내년 방송을 목표로 기획하는 ‘십대가수’는 2001년부터 2010년 사이에 태어난 10대를 지원 대상으로 하고, 기존 기획사에 소속된 연습생은 물론 일반인도 지원할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11월 21일부터 24일까지 지원자 모집을 진행한다며 대대적인 공지도 띄웠다. 오디션 조작 논란이 불거지기 전이라면 문제될 게 없는 프로그램이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국면이다.
사진=엠넷 ‘십대가수’ 홍보영상 캡처
엠넷은 올해 7월 ‘프로듀스X101’ 생방송 문자투표 부정 의혹에 휩싸인 뒤 최근 경찰 수사를 통해 2016년부터 방송한 ‘프로듀스’ 모든 시리즈의 조작 정황까지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프로듀스’ 시리즈를 기획하고 제작을 담당해온 안준영 PD와 김용범 CP(책임프로듀서)가 사기와 배임수재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고 CJ ENM의 부사장이자 엠넷 음악콘텐츠본부장 신 아무개 씨도 현재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프로듀스’ 시리즈 외 다른 프로그램으로까지 경찰 수사가 확대되는 등 추가 혐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그런데도 엠넷은 ‘십대가수’ 론칭을 강행해 비난을 자초했다. 공정성이 생명인 오디션프로그램의 가치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조작 방송’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는데도 무리하게 신규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엠넷의 결정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방송가의 의견도 뒤따랐다. 자성을 촉구하는 외부의 요청을 외면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런 가운데 ‘십대가수’ 지원자 모집 요강은 논란에 불을 지폈다. 지원서에는 친한 연예인을 기재하거나 이성 친구 여부를 밝혀야 하는 항목까지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오디션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소지가 다분하다는 우려가 나왔다.
상황이 악화되자 엠넷은 ‘십대가수’ 모집 시작일인 11월 21일 돌연 프로그램 편성을 조정하겠다고 알렸다. 이날 엠넷은 “프로그램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내년 초 편성하려던 계획을 연기하는 쪽으로 조율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겉으론 프로그램 ‘완성도’를 거론했지만 방송가 안팎에서는 최근 엠넷을 향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결정이라는 해석이 따랐다.
#무너진 ‘오디션 왕국’…배출 그룹들도 혼란의 연속
‘십대가수’ 론칭을 연기했지만 시청자의 신뢰를 잃은 엠넷을 둘러싼 상황은 여전히 악화일로다. 당장 조작 혐의가 드러난 ‘프로듀스X101’을 통해 배출한 프로젝트 그룹 엑스원 활동에 빨간불이 켜졌다. 먼저 움직이는 곳은 팬들이다. 공식 팬클럽에서는 팬클럽 가입비를 환불해달라는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공정하게 선발된 멤버라고 믿을 수 없다는 문제제기와 함께 지지를 철회한다는 팬들의 움직임이 이어진다.
심지어 엑스원의 팬들은 공식 팬클럽에서 탈퇴한다면서 가입비를 되돌려달라는 취지의 ‘가입비환불대책위원회’까지 결성했다. 이들은 지난 11월 18일 성명을 발표하고 “7월 말 팬클럽에 가입한 이후 현재까지 3개월이 지났는데도 회원 카드 등 공식 키트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본도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팬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엑스원 팬클럽 가입비는 3만 4000원, 가입 팬 수는 26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엑스원 공식 팬클럽 1기 모집 당시 공고. 이제는 오히려 공식 팬클럽에서 탈퇴한다면서 가입비를 되돌려달라는 취지의 ‘가입비환불대책위원회’가 결성됐다.
엑스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엠넷의 또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48’을 통해 데뷔한 걸그룹 아이즈원도 직격탄을 맞았다. 11월로 예정된 그룹 활동을 중단한 것은 물론 미리 팔린 앨범에 대해서도 전액 환불을 진행하고 있다.
보다 심각한 건 ‘의심’의 시선이다. 과연 어느 멤버가 투표 조작을 통해 선발됐는지 추적하는 네티즌의 의심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온라인 포털사이트에 해당 그룹을 검색하면 ‘조작 멤버’ 등 단어가 연관검색어로 등장하는 등 곤혹스러운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원인을 제공한 엠넷은 이들 그룹 문제를 논의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내놓지 못한다. 비난 여론에 직면한 뒤에야 ‘십대가수’ 방송을 연기한 것처럼 엑스원과 아이즈원을 향한 의혹의 시선이 확산되고서야 그룹 활동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엠넷은 “엑스원 멤버들과 소속사 및 관계자들과 협의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며 원론적인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 엠넷은 최근 ‘프로듀스’ 시리즈의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제공되던 다시보기 서비스를 전면 중단했다. 논란을 촉발한 ‘프로듀스X101’은 물론 제작진이 조작을 시인한 ‘프로듀스48’, ‘프로듀스 101’까지 전부 삭제됐다. 투표 조작 의혹에 따라 제작진의 혐의가 드러나고 추가 수사까지 받는 상황을 의식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