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의 마지막 범행 시기는 1994년 6월. 살인죄 공소시효는 그로부터 15년 뒤인 2006년 4월 완성됐다. 이춘재에 대한 공소권이 사라져 웃지 못 할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올해 9월 DNA라는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고도 경찰은 처제 살인으로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를 피의자 소환 조사하지 못했다. 대신 면회를 신청해 이춘재를 만난 경찰은 취조가 아닌 자백을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골자로 하는 태완이법 소급 적용으로 이춘재도 형사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의원이 들고 설명하고 있는 사진은 태완이의 생전 모습이다. 사진=박은숙 기자
현행법상 이춘재는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공식적인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렇다. 공소시효 전면 폐지 논의의 시작을 열겠다고 나선 사람은 ‘태완이법’을 발의한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중랑구갑)이다. 서 의원은 태완이법이 소급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태완이법은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골자로 한다. 2016년 7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전국 지방경찰청이 이춘재를 특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미제사건전담팀을 꾸릴 근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태완이법은 소급입법이 되지 않아 2001년 8월 이전 저질러진 살인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애진 못했다. 이춘재를 형사 처벌 할 수 없는 이유다.
11월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서영교 의원은 “범인의 공소시효는 끝나지만 피해자와 그 유가족 고통의 공소시효는 끝나지 않는다”며 “법조계에서 소급입법은 법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하지만 이춘재와 같은 극악무도한 살인범을 단죄하지 못한다면 법이 왜 필요하느냐”고 반문했다.
서영교 의원은 “범인의 공소시효는 끝나지만 피해자와 그 유가족 고통의 공소시효는 끝나지 않는다”며 “이춘재와 같은 극악무도한 살인범을 단죄하지 못한다면 법이 왜 필요 하느냐”고 지적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발의 과정에서 태완이 사건 공소시효가 지났고 지금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은 약촌오거리 사건 공소시효도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더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어요. 첫발을 뗀다는 의미로 소급입법을 빼고 발의했죠. 태완이법이 통과되지 않았다면 이춘재도 못 잡았을 거예요.”
소급입법은 법조계에서 금기의 영역으로 통한다. 과거에는 죄가 아니었던 행위가 현재 죄가 돼서 처벌을 받는다면 법체계의 안정성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헌법에서 소급입법을 금지하고 있다. 13조 1항은 ‘모든 국민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2항은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서 의원의 헌법의 취지를 강조했다. 서 의원은 “헌법 전문과 각 조항을 살펴보면 헌법 취지는 국민의 행복 추구에 있다”며 “법은 시대와 상황과 국민의 요구에 따라 변한다. 법이 국민에게 고통을 준다면 법을 바꿔야 한다. 그것이 국회의원이 할 일”이라고 답했다.
이어 서 의원은 “모든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소급입법하자는 말이 아니다. 살인죄는 법이 성문화되기 전부터 반인륜적인 범죄였다.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그렇기 때문에 살인죄 공소시효를 없앤다고 시기에 따라 법 적용이 달라진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공소시효는 한정적인 자원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측면이 있다. 과거 사건의 증거를 무기한 보관할 수 없고, 당시 증거로 현재 유·무죄를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일반적으로 처벌 기간보다 공소시효 기간이 길기 때문에 그동안 범인이 숨죽여 지냈다면 어느 정도 죗값을 치렀다고 판단하는 배경도 있다.
서영교 의원은 “법과 이런 걸 떠나서 그런 끔찍한 죄를 지은 사람은 처벌해야 한다”며 “살인죄에 한해 소급입법이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서영교 의원은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DNA가 영구 보존되고, 쪽지문도 다 드러나게 되는 것처럼 과학수사 기술이 발전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에서 충분히 증명됐다. 과거 사건을 명확히 증명해낼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서 의원은 “법과 이런 걸 떠나서 그런 끔찍한 죄를 지은 사람은 처벌해야 하는 거다. 피해자와 유가족의 고통엔 공소시효가 없다. 그 고통을 못 견뎌 자살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피의자만 법의 안전망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상황을 말이 안 된다. 어려워 보이지만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서 의원은 “개구리소년 사건, 이형호 유괴사건 등 미제로 남은 사건을 풀어나가는 데 힘을 보탤 것”이라며 “범인을 끝까지 추적한다는 메시지를 준다면 범죄를 예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