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오전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고 한성옥 모자 사인 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탈북민 모자 애도 행진을 하고 있다. 이 행진엔 많은 탈북민이 함께했다.사진=연합뉴스
11월 7일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이들(북한 선원 2명)이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로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우리 사회 편입 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이 되고, 흉악범죄자로서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부 부처 협의 결과에 따라 (북한 선원 2명에 대한) 추방을 결정했다”는 정부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정부 발표에도 불구하고 미스터리는 남아 있다. 우선 짧은 조사 기간이다. 탈북민 김 아무개 씨는 “보통 탈북민이 대한민국 땅을 밟으면 3개월 정도 조사를 받는다”면서 “고위급 관계자의 경우엔 1년가량 탈북 경위와 신원을 조사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고 했다. 탈북민들은 “북한 선원 2명을 북송하는 데 걸린 시간이 지나치게 짧았다”고 입을 모았다.
북송된 2명이 다른 선원 16명을 살해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한 탈북민 단체 관계자는 “북한 선원 16명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해선 확실한 정보가 없다”면서 “전후 사실은 합동조사 심문과정에서 파악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심문과정을 녹화한 동영상을 정부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동영상을 공개하는 것이 북한 선원 2명을 북송한 근거를 밝히는 가장 투명한 절차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난민과 탈북민을 차별한다”는 불만도 들린다. 서울에 거주하는 한 탈북민은 “대한민국 정부가 시리아 등지에서 유입되는 난민에겐 관대한 반면, 탈북민에겐 너무 가혹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세세하게 따진다면, 탈북민보다 세계 각지에서 유입되는 난민들의 과거 행적이 더 불분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탈북민 박 아무개 씨도 “지금도 북한엔 탈북 외엔 더는 살길이 없는 북한 주민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대한민국 정부를 믿지 못하는 북한 주민이 많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11월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북한 선원 2명을 판문점을 통해 송환한다는 휴대폰 문자 사진을 보며, 김연철 통일부 장관에게 질의하는 장면. 사진=연합뉴스
또 다른 탈북민 이 아무개 씨는 “설사 북한 선원 2명이 다른 선원 16명을 살해했을지라도, 귀순 의사를 밝힌 이상 대한민국 사법부가 법을 집행하는 것이 맞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씨는 “이번 북한 선원 북송 사건은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선 일어나선 안 될 일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북한 주민 역시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된다”면서 “귀순 의사를 밝혔다면, 이 선원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법처리를 받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권 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이 정작 탈북민 인권엔 소홀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탈북민들은 북송된 선원 2명의 신병 문제와 관련해서도 우려했다. 복수의 탈북민들은 “그 사람들(북송 선원 2명)은 북한에 가면 무조건 죽는다”고 했다. 한 탈북민은 “이번에 북송된 선원 2명은 남조선에서 밥 한 그릇 얻어먹고 왔다고 사상검증을 받을 것”이라면서 “북한 당국이 그들을 반동이나 간첩으로 몰아서 처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했다. 또 다른 탈북민들은 “운이 좋은 경우엔 가장 힘든 지역으로 추방될 것”이라고 점쳤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이번 사건은 북한이 ‘북한 선원 2명은 살인자’라고 주장한 것을 정부가 인정하고 북송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나쁜 선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한국으로 탈북할 계획을 세웠던 북한 주민들이 한국 정부를 믿지 못하고 한국행을 꺼리게 되는 2차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북한에 가족들을 두고 탈출한 탈북민들 입장에선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국제적으로도 비판이 제기됐다.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한국 당국에 이번 사례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이후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 두 선원에 대해 북한 정부가 어떠한 학대도 가하지 않고 인권을 존중하길 요구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인권전문가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11월 7일 VOA를 통해 “범죄 중대성과 별개로 적절한 사법 절차와 보호 조치가 실종된 사건”이라고 한국 정부의 북한 선원 북송 사건을 비판했다. 스탠튼 변호사는 “홍콩에서 범죄자 본국(중국) 소환을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이유와 비슷하다고 본다”고 했다.
일각에선 한국 정부의 조치가 유엔의 ‘고문방지협약’에 위배된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고문방지협약 3조는 “어떠한 당사국도 고문받을 위험이 있는 나라로 (누군가를) 추방·송환·인도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은 1995년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한 바 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