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11월 22일 새벽 조사를 마치고 서울 동부지검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반인들에게 ‘유재수’라는 이름은 다소 낯설다. 하지만 여권에서 유재수 전 부시장이 갖는 정치적 존재감은 남다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면서 친노·친문 정치인과 친분을 쌓았고, 특히 현 여권의 PK(부산·경남) 인사들과 가깝게 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유 전 부시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유 전 부시장이 실세라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원래부터 금융위에서 잘나갔던 직원이었다. 성격이 호방해 따르는 후배들도 많다. 유 전 부시장이 금품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다들 믿지 않았다. 집안에 자산이 많아 그런 부분에선 전혀 문제가 될 게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 전 부시장이 정치권 화제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출신 김태우 전 수사관은 유 전 부시장에 대한 비위를 포착해 감찰을 벌인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정수석이던 조국 전 장관은 국회에 출석, “근거가 약하다고 봤다. 비위 첩보와 관계없는 사적인 문제가 나왔다. 그건 프라이버시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김 전 수사관 주장을 부인했다.
김 전 수사관은 올해 2월 다시 기자회견을 열어 “유재수 전 부시장에 대해 휴대폰 감찰을 했고, 한 달 동안 포렌식 자료를 분석하고 소환조사까지 했다. 3건의 비위 혐의가 확인됐다”면서 “특감반장과 반부패비서관은 유 전 부시장을 수사 의뢰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 이후 윗선 지시로 감찰이 중단됐다”고 했다.
유 전 부시장은 감찰이 시작되자 병가를 냈고, 지난해 3월 사표를 제출했다. 그리고 4월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발탁됐다. 7월엔 부산시 경제부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청와대 감찰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연이어 공직을 꿰찼던 셈이다. 유 전 부시장을 둘러싼 온갖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한 친문재인계 의원은 “유 전 부시장 사건이 공공연하게 회자됐다. 누가 유 전 시장을 비호했더라와 같은 내용들이었다”라고 귀띔했다.
김태우 전 수사관은 지난 2월 유 전 부시장 감찰 무마 지시를 이유로 민정수석실 상관들을 서울동부지검에 고발했다. 조국 전 장관을 포함해서다. 하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검찰 관계자는 “기본적인 참고인 조사조차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김태우 말을 어떻게 믿느냐라는 말만 파다했다. 수사를 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게 분명해 보였다”라고 전했다.
김태우 전 수사관. 사진=박은숙 기자
검찰은 공식적으론 유 전 부시장과 조국 전 장관 수사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긋는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힘들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도 “동부지검이 유 전 부시장 강제수사에 속도를 낸 것은 윤석열 총장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조국 전 장관의 감찰 무마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유 전 부시장 파일을 꺼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검찰 내부에선 유 전 부시장 건이 조국 전 장관에게 더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그동안 조 전 장관은 부인과 동생 등의 혐의에 대해 ‘알지 못했다’ ‘상관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이 유 전 부시장에 대한 비위를 알고도 묵인했다면 이는 직권남용이자 직무유기를 적용할 수 있다. 유 전 부시장 수사는 조국 수사의 연장선상이라고 보면 된다.”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수사팀의 1차 목표는 조 전 장관이 이른바 ‘유재수 보고서’를 보고받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당시 특감반원 등을 불러 조사를 진행했다. 다음 수순은 실제 감찰이 중단됐다면 어느 경로를 통해 외압이 행사됐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유 전 부시장 감찰 무마의 ‘몸통’을 찾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일요신문은 취재 과정에서 흥미로운 증언들을 들을 수 있었다. 특감반 출신 한 사정기관 관계자의 말이다.
“감찰이 시작됐는데, 담당자 한 명이 ‘(유 전 부시장은) 조국도 못 건드린다. 어차피 해도 소용없으니 포기해라’는 말을 한 친문계 정치인으로부터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유재수가 무슨 그렇게 거물급도 아니지 않느냐. 나중에 유 전 부시장이 문 대통령 주변 인사들과 가깝다는 것을 알았다. 앞서의 담당자가 ‘괜한 짓을 한 것 같다’고 후회한 적이 있다.”
이 관계자에게 유 전 부시장 관련 발언을 했다는 친문 정치인은 기자에게 “유 전 부시장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친하게 지내는 특감반원이 걱정돼서 했던 충고였다. 정권 초 섣불리 건드릴 사람이 아니었다. 유 전 부시장과 친한 인물들 모두 정권에선 내로라하는 실세였기 때문”이라면서 “유 전 부시장 감찰을 통해 확인된 내용들은 거의 ‘팩트’였다. 그런데 결과가 어찌 됐느냐. 나중에 크게 후환이 될 것이란 말이 진작부터 나돌았다”라고 귀띔했다.
사정당국의 한 고위급 관계자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이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라. 보통 청와대 감찰이 시작되면 비위가 확인되기까지 사표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런데 유 전 부시장은 감찰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사표를 냈다. 그리고 보란 듯이 민주당과 부산시에서 근무했다. 청와대 감찰 따윈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던 행보다. 누군가가 감찰과 관련해 내부 과정을 전해주지 않고선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유 전 부시장 뒤를 봐준 것으로 알려진 한 친문 실세가 조국 전 수석에게 ‘민원’을 넣었는지를 밝혀내는 게 검찰 수사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