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사진)가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2018년 6월 조 대표가 대전 한국타이어 테크노돔에서 이야기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국타이어그룹은 조현범 대표 취임 후인 2018년 IT업체 모델솔루션과 독일 타이어 유통업체 라이펜-뮬러를 인수했고, 지난 10월에는 온라인 자동차 판매 플랫폼 웨이버스를 인수하는 등 여러 M&A에 참여했다. 이어 지난 3월 사업목적에 타이어 렌탈업을 추가했으며 지난 5월에는 기존 한국타이어에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로,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으로 각각 사명을 변경했다.
당시 한국타이어 측은 사명 변경 이유에 대해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 개척에 도전하는 파괴적 혁신 지속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추진한 것”이라며 “미래 신성장 동력을 발굴함으로써 지속성장을 실현해 나간다는 그룹의 장기적 비전과 의지를 담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분기까지 타이어 부문 매출 5조 2183억 원 중 97%에 해당하는 5조 606억 원이 타이어 제품 판매에서 발생해 여전히 회사 매출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비타이어 부문인 금형제작 사업에서 830억 원, 일반기계 사업에서는 389억 원의 매출을 거뒀다. 또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축전지 부문 매출은 4737억 원으로 타이어 판매액에 한참 못 미친다.
타이어 렌탈업은 아직 사업 준비 단계에 있지만 넥센타이어라는 경쟁자가 있어 앞날이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넥센타이어는 2015년부터 타이어 렌탈 서비스를 시작해 판매망을 구축하고 있다. 2016년 넥센타이어의 임대 및 렌탈 수익은 112억 원이었지만 올해 1~3분기에는 252억 원을 기록하는 등 성장세에 있고, 지난 7월에는 누적 렌탈 50만 개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조현식 부회장은 2018년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해 한국타이어그룹 경영 전반을 총괄하고 있지만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올해 1~3분기 매출은 6384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 6217억 원에 비해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668억 원에서 1518억 원으로 줄었다. 김평모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주요 지역의 교체용타이어(RE) 판매가 반등했지만 고객사 물량 감소에 의한 신차용타이어(OE) 판매 부진이 지속되며 전체 타이어 판매 물량이 감소했다”며 “글로벌 타이어 수요 부진이 지속되고 있고, 이는 판가 인하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조현범 대표가 구속되면서 조현식 부회장의 움직임에도 시선이 쏠린다. 조양래 회장이 지난 3월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등기이사에서 물러나면서 조 부회장은 오너 일가 중 직접적인 경영 참여가 가능한 유일한 인물이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당분간 이수일 대표가 조 대표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며 “일단은 조현식 부회장의 업무가 추가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애초에 업무 분담을 확실하게 했는데 조 대표가 구속됐다고 조 부회장이 영역을 확장하는 건 무리수로 보인다”고 전했다.
조현범 대표 구속에 따라 한국타이어그룹 후계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국타이어그룹 본사. 사진=박정훈 기자
그렇지만 향후 후계구도에는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간 조현범 대표는 이명박 전 대통령(MB)의 사위라는 이유로 회사 내에서 목소리가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2000년대 후반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근로자 수십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흐지부지 넘어갔다”며 “당시 조 대표가 MB 사위인 것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고 전했다.
조 대표의 구속 사유는 증거인멸 우려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법조계에서는 수사가 진행되면서 조 대표의 추가 범죄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도 제기한다. 앞의 재계 관계자는 “금액이 크지 않으면 횡령이라고 해도 회사 일을 하다가 저지른 경우면 봐주는 경향이 있지만 이번 건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했기에 봐줄 수가 없었던 것”이라며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는 경영진의 비리를 엄청 까다롭게 따지기에 조 대표 리더십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타이어의 내수시장 매출이 줄고 있어 글로벌 시장 매출은 더욱 중요하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국내 매출은 지난해 1~3분기 6877억 원에서 올해 1~3분기 6567억 원으로 줄었다. 현대자동차가 2017년 미쉐린타이어와 협력계약을 맺으면서 현대차에도 한국타이어가 아닌 미쉐린타이어 제품을 사용하는 신차가 늘고 있다. 지난 19일 출시된 ‘더 뉴 그랜저’도 17인치 타이어는 금호타이어를, 18~19인치 타이어는 미쉐린타이어를 장착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차의 경우 고급차는 고급차에 맞게 해외 타이어를 사용한 지 오래됐다”며 “쌍용자동차, 한국지엠 등 다른 자동차 업체는 신차 출시 자체를 잘 하지 않아 타이어 내수 시장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조현식 부회장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19.32%를 갖고 있고, 조현범 대표는 19.31%를 보유하고 있다. 조양래 회장이 가진 지분 23.59%의 상속자로 누가 선택되느냐에 따라 차기 회장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아직 지분이 정리되지 않아 내부적으로 차기 회장 취임 기류가 보이지는 않는다”며 “조 대표 구속으로 후계구도가 갑자기 정리될 상황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