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태권도 시범단 공연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사진=일요신문DB
올해 3월 학교에 입학한 A 양은 입학 전부터 고교 태권도부 코치를 만나 ‘이상한 제안’을 받았다. 입학이 예정돼 있던 2018년 12월부터 한 달에 40만 원의 ‘코치비’를 내야 한다는 것. 코치는 “학생이 줄어 최저임금 정도라도 받으려면 40만 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까지 A 양의 학부모는 당연히 내야 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다만 40만 원을 학교가 아닌 코치의 통장으로 직접 입금하는 과정에 의아함은 있었다.
얼마 뒤 코치가 건넨 말은 더욱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었다. 제주도 훈련 명목으로 훈련비를 요구한 것. 당연히 비용이 드는 일이기에 별다른 의문을 가지지 않았지만 “학교에는 알리지 말라”는 말에 찜찜한 마음을 거둘 수 없었다. 최종적으로 A 양은 제주도 훈련에 불참했다.
입학 이후 본격적인 학교생활이 시작되면서 학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돈은 더욱 늘어났다. 이전까지 학교 태권도부가 아닌 사설 체육관에서 운동을 시켰던 A 양의 부모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
그 중 하나는 교통비 명목으로 걷어가는 돈이었다. 코치의 승합차를 타고 8명의 선수들이 지방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동하는데 학생 1명당 현금 15만 원을 걷어갔다. 이 역시 학부모 개개인이 코치의 통장으로 직접 송금했다.
A 양의 아버지는 “보통 1개월에 2회 정도 교통비를 냈다“며 ”한번은 사용처를 따져 물으니 ‘차량 수리비’라며 말을 바꾸더라”라고 말했다. A 양의 어머니도 이 같은 ‘상납’ 행태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학부모에게 이에 대해 물으니 “유별나게 하지 마라. 중학교도 그렇고 다른 학교도 다 이런 식이다. 당연히 내는 돈이다”라는 타박만 돌아오기 일쑤였다.
A 양의 아버지는 코치를 향한 불신이 커졌지만 ‘1학기가 지나면 교장이 바뀐다’는 말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실제로 교장이 바뀌었고 신임 교장과 태권도부 학부모들의 만남이 성사됐다. 그러나 교장을 만나는 자리에 앞서 학부모들의 ‘입단속’이 이뤄졌다.
A 양의 어머니는 이 자리에서 놀라운 사실을 들었다. 학교 측에는 그간 내왔던 금액을 32만 원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통비도 낼 필요가 없었다. 학교는 대회 참가에 드는 비용 전액을 지원하고 있었다. 인천광역시교육청에서도 학교운동부 예산으로 지원이 있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코치는 학교 떠났다.
코치가 학교를 떠나자 A 양을 제외한 7명의 학생들이 태권도부를 탈퇴했다. A 양의 아버지는 “그간 코치가 진학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진학을 하려면 그 코치 아래에서 배워야 하니 다른 선수들은 코치를 따라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교 교장도 “학생들이 방과 후에 별도로 그 코치와 운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를 학교에서 막을 명분은 없다”고 말했다. 태권도부에는 이제 A 양 혼자 남겨진 상황이다. A 양은 학교 교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혼자 운동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학교 교장은 “한 명 남은 학생을 위해 우리가 어떤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이어 코치가 사퇴하는 과정에 대해 “태권도는 학교 운동부에서 ‘수익자 부담’ 종목으로 지도자 인건비가 교육청에서 지원이 나오지 않고 학생들이 직접 부담을 한다”면서 “학생들이 회비를 학교로 납입하면 학교에서 지도자에게 인건비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했는데 그동안 그 코치가 직접 학부모들에게 돈을 받고 일부를 제외한 금액을 학교에 납입했다. 잘못된 ‘관행’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교장은 학교 운동부를 존속시키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처음 부임해 학교를 살피는데 태권도부 운영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중학교 학생 수가 줄고 운동을 하려는 학생도 줄고 있다. 태권도부 신입생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 태권도는 학생들이 직접 코치 인건비를 충당해야 하기에 학생 수가 적으면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이번 3학년 학생들이 졸업하면 4명(1학년 2명, 2학년 2명)이 남는데, 내년부터는 학생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고 현재 고3 선수들이 내는 금액을 학교가 부담하려는 계획도 세웠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코치가 학교를 떠나면서 계획은 없던 일이 됐다.
인천지역에서 태권도 선수와 단체를 지원, 육성하는 인천광역시태권도협회에선 이 같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외부에서 들어온 민원은 없었고 최근 그 지도자가 ‘학교 태권도부가 해체를 해서 학생들을 외부에서 가르친다’고 하는 얘기만을 들었다. 태권도부가 해체된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협회 관계자에게 1명의 학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전하자 놀란 목소리로 “그 지도자의 말만 들은 상황이었다. 만일 조사나 징계를 요청하는 민원이 있었다면 조사 이후 징계가 내려졌을 것”이라고 했다. 협회가 공개한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단체 운영과 관련한 금품수수, 횡령·배임, 회계부정, 직권 남용 등 비위 사건 등에 대해 위법 또는 부당한 사실을 발견한 때는 위원회에 신고할 수 있고 위원회는 신고가 없더라도 직권 조사·의결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학교를 그만둔 코치는 이 같은 일과 관련해 “불법적인 일이 있었기에 문제가 돼서 사표를 내고 나왔다”면서 “학교를 완전히 나왔기에 이제는 나와 관련이 없는 곳이다. 다 끝난 일이다. 더 할 말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누구에게 돈을 요구한 적도 없다. 부모님들이 내가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한 마음으로 도와준 것이다. 그런데 그게 불법 찬조금이 되니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코치 사퇴 이후 태권도부를 탈퇴한 7명의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지금 지도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