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도 같은 시각, NHK 등을 통해 지소미아 연장과 함께 수출 규제 재검토 소식을 전했다.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에서 시작된 한일 경제 갈등이 지소미아 종료까지 언급되면서, 한국과 미국의 안보 이슈로 확산되는 것을 막은 셈이다. 청와대는 이번 결정이 일시적이라며 언제든 지소미아를 종료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이제 지소미아는 한국과 미국, 일본 세 나라 모두 ‘깊게’ 관여된 중요한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2일 정오부터 분위기 변화…문서 효력 막은 청와대
11월 21일에 이어 22일에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가 열렸다. 22일은 사뭇 분위기가 더 진지했다. 1시간 정도 넘게 진행됐는데 전날 보이지 않았던 문재인 대통령도 임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상임위에 임석한 것은 “한일 최근 현안 해결을 매우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 대통령 뜻이 반영된 것”이라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
종료 시한을 6시간 앞두고, 청와대는 올해 8월 통보한 지소미아 종료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발표한 지 144일 만이고,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지는 112일 만이다.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지 정확하게 3개월이 된 시점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의 선택은 ‘조건부 연기’다. 정확히는 지소미아를 종료한다고 일본에 통보한 우리 정부 외교문서의 효력을 정지하는 방법으로 지소미아 종료 철회를 선택했다. 일본과 대화를 통해 이뤄낸 결정이다. 일본 측의 수출규제로 시작된 갈등인 만큼, 일본과 다시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했던 절차도 중단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일본은 두 가지 조치로 화답한다. 현안 해결을 위해 우선 국장급 정책 대화를 실시해 양국의 수출관리를 서로 확인하고, 수출 규제 대상인 3개 품목에 대해서는 건전한 수출실적 축적과 우리의 수출관리 운용에 따라 규제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화이트리스트 복귀와 개별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해제 검토를 의미한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미국까지 관여했던 지소미아 종료가 ‘대화 창구’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앞서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미국 상원에서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 취소를 촉구하는 의안이 제출됐는데, 결의안에는 “역내 안보 협력을 저해할 수 있는 잠재적 조치들의 해결 방법을 고려할 것을 촉구한다. 일본과 한국이 균열의 원인을 해소해 신뢰를 회복하고, 두 나라의 다른 과제들을 안보 문제와 별개로 분리할 것을 권고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경제 갈등 때만 해도 “두 나라의 문제”라며 한 발 물러난 태도를 보이던 미국이 두 동맹국에 대해 강도 높은 경고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미국은 외교장관 간 전화통화를 통해서도 지소미아에 대해 ‘연장을 검토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월 21일 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이때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함께 지소미아에 대한 의견도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원래 박근혜 정권 때 지소미아 체결을 가장 강력하게 원한 것은 일본도, 한국도 아닌 미국이었다”며 “미국이 가까운 두 동맹국을 군사적으로 연결해 중국을 견제하고자 했던 의도에서 시작한 것이 지소미아다. 결국 한일 경제 갈등이 지소미아로 번지자 이에 미국이 개입하며 잠시 갈등이 봉합될 수 있는 기회로 연결된 셈”이라고 풀이했다.
#아직 남아 있는 불씨…강제 징용 어떻게
급변한 분위기 속에 나온 결정이었다. 당초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우리 정부가 요구하고 있는 수출관리 강화조치 철회 여부를 묻는 말에 “우리(일본)로서는 지금까지 일관되게 현명한 대응을 요구해 왔다. 그 입장에서 변함이 없다”며 원칙론적인 얘기를 강조했다.
지난 8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와 관련한 상임위 회의 내용을 보고받을 당시의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 역시 11월 19일 열린 국민과의 대화에서만 해도 일본이 수출 규제 철회를 약속하지 않으면 예정대로 지소미아를 종료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21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때에도 지소미아 종료 이후 일본의 추가 규제 가능성에 대해 검토하고 대응 방안까지 논의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일본이 먼저 양보하지 않으면 연장은 없다”고 얘기하며 강경 노선을 시사했었다.
앞선 국방부 관계자는 “지소미아가 당장의 실익이 있고 없고를 떠나, 미국과의 군사 동맹 약화는 국방부 입장에서는 원치 않는 시나리오”라며 “여러 측면을 고려할 때 지소미아로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유리한 입장에 서고, 일본과의 경제 갈등도 해결할 수 있다면 좋은 결과가 아니냐”고 풀이했다.
여전히 변수는 남아있다. 임시 조건부 연장이기에, 협의가 진행되지 않을 때는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할 수 있다. 청와대는 7월 1일 이전 상황, 즉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철회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는데 일본은 더 본질적인 이슈인 징용 배상 문제 해결을 꼽고 있다.
실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일본과 징용 문제 협의는 있었느냐”는 질문에 “없었다”며 갈등의 시작점이 된 강제 징용 배상 판결은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이 피해를 보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 정부 간 ‘발표 속 뉘앙스’ 차이도 앞으로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변수다. 일본 일부 언론은 22일 일본 정부 발표에 대해 “한국 정부가 수출관리에 부적절한 사례가 있었던 점을 인정했다”는 뉘앙스로 보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에 대해 청와대는 “사실이라면 한일 외교채널 합의에 대한 잘못된 행동이라고 본다”고 언급했다. 갈등의 불씨는 살아 있다는 얘기다.
일본 외교계 관계자는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 모두 국민들 상대로 ‘외교전’을 승리했음을 보여주려 하는 부분이 있다 보니, 언제든 서로 다시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며 “결국 대화 기간 동안 어떻게 경제 규제를 풀면서 동시에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따른 문제까지 해결하는지가 지소미아 연장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