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합 끝나고 감독님한테 뛰어와서 가슴으로 안기지 않았다고 화가 난 거예요. 또 어떤 지도자분들은 고등학생 여자선수였는데 술 마실 때 무릎 위에 앉아보라고 하더라고요. 남자선배는 술 마실 때 불러서 옆에서 술 따르라고 하죠”
국가인권위원회는 40여개 공공기관 소속 실업선수 56개 종목 406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심층인터뷰 등을 통해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성인 실업팀 선수들이 신체·언어폭력과 함께 성폭력에 노출된 수준이 학생보다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25일 밝혔다.
사진=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인권위 조사결과, 실업팀 선수 1251명 중 33.9%는 언어폭력, 15.3%는 신체폭력, 11.4%는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폭력을 당한 것만 합치면 60%가 넘어가 10명 중 6명은 언어·신체폭력이나 성폭력을 경험했다. (성)폭력을 목격한 경험은 56.2%로 나타났다. 특히 신체폭력 경험자 중 8.2%는 ‘거의 매일 맞는다’고 응답했고, 신체폭력을 당해도 67.0%가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언어폭력은 남성선수보다 여성선수의 피해가 더 컸다. 여성선수 37.3%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나 욕, 비난, 협박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해 남성선수 30.5%보다 높았다. 또 언어폭력이 발생하는 곳은 훈련장 또는 경기장이 88.7%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폭행 가해자는 남성선수는 선배운동선수가 58.8%, 여성선수는 코치가 47.5%로 나타나 성별로 차이를 보였다.
실업선수 10명 중 1명은 성폭력을 경험해 직장 내 성희롱도 심각했다. 특히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많이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30대 초반의 한 여성선수는 “(도)시청 분들이 맨날 술자리에 끌고 나가서 술자리가 저녁에 시작해서 다음 날까지 마실 때도 있다”며 “강압적으로 여자선수들한테 감독님 지인 분들을 소개해주면서 계속 연락하라고 했다”고 고백했다.
여성선수는 결혼, 임신, 출산과 관련해서도 어려움이 많았다. 30대 후반 한 여성선수는 “선발되면 선수촌 입촌해야 하는데 아이는 어떻게 하나 집중이 안된다”고 말했다.
30대 초 한 여성선수는 “감독이 아이를 가지려고 준비한다고 했을 때부터 명단에서 제외시킨다고 했다”며 “해외와 달리 한국에서는 거의 애 낳고 30대 중후반 되면 다들 그만두고 다른 일 한다”고 말했다.
사생활 침해도 심각했다. 20대 한 선수는 “저녁 10시 이후 밖으로 못 나가게 하고 점호시간도 있어서 교도소처럼 생활한다”며 “시합기간에는 주말에도 못 나간다”고 전했다. 20대 한 여성선수는 “합숙소 규칙을 어기면 1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벌금을 낸다”며 “이밖에 규칙은 언니들이 다 정한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이번 조사를 통해 운동을 직업으로 하는 실업선수들이 성인임에도 일상적인 폭력과 통제가 매우 심각함을 확인했다”며 “특히 실업팀 직장운동부는 여성 선수들의 인권침해에 취약한 환경으로 원하지 않는 △회식강요 △직장 성희롱 및 성차별 △결혼이나 임신‧출산으로 인한 은퇴 종용 문제 등을 경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여성지도자 임용을 늘려 스포츠 조직의 성별 위계관계 및 남성중심 문화의 변화를 통한 인권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허정훈 중앙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직장운동선수 인권 교육과 정기적 인권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가해자 징계 강화와 징계정보시스템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직장운동부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 및 합숙소 선택권 보장, 표준근로계약서 마련, 공공기관 내부 규정(지침) 및 지자체 직장운동부 관련 조례 제·개정 등의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일권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