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에서 배우 전문 매니지먼트 관계자들을 만나면 심심치 않게 듣는 이야기다. 이 질문의 진짜 속뜻은 “나영석 PD랑 친분이 있으면 우리 회사 소속 배우를 출연시킬 수 있도록 소개 한번 해주세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는 오산이다. 나 PD는 친분과 소개가 아닌, 철저하게 각 예능의 이미지가 맞는 인물을 캐스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적재적소 섭외는 그의 작품이 실패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중요한 건, 이렇듯 배우들이 예능에 출연하는 것을 한결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재기’ 콘텐츠에서 ‘대세’ 콘텐츠로
한동안 배우들에게 예능은 ‘홍보의 장’ 혹은 ‘재기 콘텐츠’였다. 일단 신작 영화나 드라마를 공개하기에 앞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영화 개봉에 맞춰 주인공들이 지상파 3사의 유명 예능 한 편씩 ‘얼굴 도장’을 찍는 것은 하나의 공식이었고, 각 방송사는 자사 드라마의 주연을 맡은 배우들을 비교적 손쉽게 섭외할 수 있었다. 같은 방송사 아래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드라마국 관계자들이 드라마 홍보를 위해 기꺼이 자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시간을 할애해줬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능에 얼굴을 비친 적잖은 배우들은 “예능이 가장 어렵다”고 말하곤 한다. 홍보 차원에서 원치 않는 자리에 와 있다는 표현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연기가 아닌 자신의 사생활과 민낯을 드러내야 하니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 다른 경우는, 예능을 돌파구로 삼는 것이다. 배우 이서진이 대표적이다. 그는 연인과 결별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구설에 오른 뒤 작품 성적도 신통치 못했다. 하지만 나영석 PD의 예능 ‘삼시세끼’, ‘꽃보다 할배’ 등이 잇따라 성공을 거두며 완벽히 재기에 성공했다. 이외에도 침체기를 겪던 여러 배우들이 예능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 후 다시금 드라마와 영화에서 각광을 받게 되는 사례가 늘었다.
KBS 2TV ‘정해인의 걸어보고서’ 홈페이지.
하지만 요즘은 양상이 다르다. 예능 출연을 차선책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예능에 출연하며 자신의 새로운 면모를 과시하며 도약을 꿈꾸는 배우들이 많아졌다. 이동욱은 12월 초부터 SBS 예능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를 진행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가 초대 손님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토크쇼다. 이동욱은 이미 SBS ‘강심장’의 MC를 맡은 전력이 있고, ‘일요일이 좋다-룸메이트’ 등에서도 활약했다. 예능의 문법에 익숙한 셈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이후 가장 트렌디한 배우로 떠오른 정해인은 26일 KBS 2TV ‘정해인의 걸어보고서’를 선보였다. 이 프로그램은 KBS 1TV 교양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예능으로 탈바꿈시킨 콘텐츠다. 정해인이 직접 여행지를 정하고 그 여정을 담는 연출 방향까지 정하는 등 단순한 출연자를 넘어 연출자의 역할까지 곁들인다.
이동욱이나 정해인처럼 자신의 이름을 제목에 담는 경우 외에도 정일우는 KBS 2TV의 먹방 예능 ‘편스토랑’을 통해 처음으로 예능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2018년 말 군 복무를 마친 후 올해 초 SBS 사극 ‘해치’로 묵직한 연기를 보여줬던 그는 “이번 기회를 통해 편안하고 친숙한 정일우로 다가갔으면 좋겠다”며 “‘먹을 자격이 있는 남자’라는 이영자 선배님의 칭찬에 힘을 얻어서 맛있는 요리를 많이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외에도 예능 출연이 잦지 않았던 배우 이선균, 김남길 등도 현재 tvN ‘시베리아 선발대’에 출연 중이다.
tvN 관계자는 “나영석 PD가 예능을 대하는 배우들의 자세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며 “예능을 통해서도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했을 때보다 더 큰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며 적극적으로 예능에 뛰어드는 배우들이 증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새 얼굴 찾는’ 방송사와 ‘안정적 수익 얻는’ 배우의 만남
예능 제작진이 배우들을 출연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나 드라마를 홍보하려는 스타를 일회성 게스트로 참여시키면 그들의 팬들을 모으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고정 출연진이 됐을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다재다능한 연기를 보여주는 송강호, 하정우일지라도 유재석, 강호동보다 예능 진행을 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타고난 끼를 바탕으로 춤과 노래를 부르고 망가지면서 웃음을 이끌어내야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SBS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홈페이지.
하지만 예능 제작진은 항상 ‘새 얼굴’에 목말라 있다. 현재 방송 중인 예능 프로그램을 돌아보면 몇몇 유명 MC와 패널들이 간판만 바꿔 달고 중복 출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중은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핀잔을 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작품 외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배우들을 영입하는 것은 신선함을 주기 충분하다. 게다가 배우를 진행자로 앉히면서 그들의 인맥을 섭외하는 일도 수월해졌다.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의 첫 회 게스트가 배우 공유라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섭외의 확장성은 제작진이 가장 반길 만한 요소다.
예능을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들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코믹하게 고착화되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배우들은 왜 예능판으로 뛰어들까?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은 배우들이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16부작 미니시리즈는 약 두 달에 걸쳐 방송되는 반면 성공한 예능의 평균 수명은 몇 년 동안 지속된다. 일례로 배우 이광수는 SBS ‘런닝맨’에 9년째 출연 중이며 이 사이 한류스타로 거듭나며 배우로도 우뚝 섰다. 게다가 배우들은 예능인들에게 비해 희소성이 있다는 판단 때문에 경력에 비해 높은 개런티를 받는다. 한 배우 매니지먼트 대표는 “예능을 통해 보다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어 CF 시장에도 어필할 수 있기에 배우들의 예능 선호도가 상승하고 있다”며 “주연급 배우의 경우 드라마나 영화는 1년에 1편 정도 출연할 수 있는 반면 예능은 매주 방송돼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