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B하나은행이 바람 잘 날이 없다. DLF(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 판매로 금융당국의 칼끝에 서게 된 가운데, 과거 불완전판매 의혹이 제기된 신탁상품과 관련해서도 중징계 가능성이 점쳐지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1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앞에서 DLF 피해자 대책위 회원들이 피해보상 촉구 집회에 참석한 모습. 사진=고성준 기자
#신탁 상품 판매 금지, 발등에 불 떨어진 은행권
“은행의 잘못으로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것인데, 갑자기 은행들이 피해자처럼 됐다. 신탁이 다 죽었다고 (금융당국을) 협박해서는 안 된다.” 지난 26일 신탁 상품 판매와 관련해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작심한듯 한 말이다. 은성수 위원장은 “신탁을 봐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신탁 상품 문제는 금융위원회가 지난 14일 DLF 사태의 후속대책으로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하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금융위는 개선방안 중 하나로 은행과 보험사의 신탁 상품을 포함한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의 판매를 제한키로 했다. 은행을 상대적으로 투자자 보호장치가 잘 갖춰진 공모펀드 중심 판매채널로 전환하겠다는 것. 이에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개선방안에 대한 의견서와 신탁 상품 보완책을 금융위에 제출했다. 신탁 상품의 전면 판매 금지를 막기 위해서다.
금융당국의 신탁 판매 금지에 대해 은행권에서는 불만이 거세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상품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판매 과정에서의 문제가 지적됐는데, 비이자수익을 강조하면서 신탁 상품 판매를 전면 금지하니 은행들의 불만이 큰 것”이라며 “파생상품을 제재하면 은행은 보험밖에 판매할 수 없다. 고객의 요구가 있는데 이를 제한하면 고객이 기회를 잃게 되는 셈”이라고 전했다.
반면 은행들이 상품 판매 구조를 변경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신탁과 관련해 강하게 의견을 전달했지만, 금융당국의 입장이 단호하다. 더욱이 최근 신탁 관련 불완전판매로 제재를 받으며 은행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지 않는 모습”이라며 “은행들 또한 소비자보호 우선에는 공감하고 있어 큰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은행들은 특정금전신탁 판매에 제약이 생기면 그를 대신해 재산신탁을 판매하는 등 금융당국 제재에 맞춰 판매 구조가 바뀔 것”이라고 전했다.
신탁 상품을 둘러싸고 금융당국과 은행권 간 이견이 큰 가운데, 시중은행들은 최근 신탁상품 불완전판매로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9월까지 진행된 8개 금융회사에 대한 금감원의 합동검사의 결과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각각 기관경고와 기관주의를 받았다. 심의 결과는 법적 효력이 없지만, 금감원장 또는 금융위원회 의결을 통해 제재내용이 최종 확정된다. 은행이 기관경고나 기관주의를 받게되면 평판 리스크를 안게 된다. 이력이 남아 공모 입찰참여 등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하나은행이 유독 긴장하는 이유는?
이런 가운데 하나은행은 지난 28일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기관경고를 받았다. 금감원은 하나은행에 대해 적합성 원칙 등 위반, 설명서 교부의무 위반에 따라 기관경고로 심의하고, 과태료 부과를 금융위에 건의하기로 했다. 관련 직원 두 명에 대해서도 견책으로 심의했다. 심의결과가 최종 확정되면 하나은행은 1년간 신사업 진출이 제한된다. 하나은행의 경우 2018년 11월 신탁형 양매도 ETN 등 신탁업에 대한 금감원 검사를 받은 바 있다. 앞서의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위원장이 강하게 의견을 피력한 데다, 신탁 불완전판매 문제로 말이 많았던 상황”이라며 “하나은행에 강한 징계를 내려 본보기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하나은행에 대한 금감원 검사는 2018년 국정감사 당시 제기된 지적 때문이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감에서 하나은행의 양매도 ETN 불완전판매 문제를 최초로 지적했다. 최운열 의원실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하나은행은 2017년 11월부터 2018년 8월까지 8417명을 상대로 양매도 ETN을 판매해 8283억 원의 판매고를 올리고 총 69억 원의 수수료 수입을 얻었다. 그러나 판매과정에서 금융투자회사들이 최고위험 등급으로 설정해놓은 양매도 ETN을 ‘중위험‧중수익 투자상품’으로 소개하는 등 일반고객들이 투자위험을 판단하기 어렵게 했다.
최운열 의원실에서 입수한 하나은행 직원용 내부자료에서는 ‘하나ETP신탁 목표지정형 양매도 ETN’를 ‘중위험 중수익 투자상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최운열 의원실에서 입수한 하나은행의 금융투자상품 위험도 분류표에는 레버리지, 인버스 등 파생형 ETP(상장지수증권)가 ‘최고위험’으로 분류돼있다. 그러나 직원용 내부자료에서는 ‘하나ETP신탁 목표지정형 양매도 ETN’를 ‘중위험 중수익 투자상품’으로 소개했다. 자료에는 “양매도 ETN는 KOSPI200 지수가 월간 기준 ‘-5~+5%’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면 옵션매도로 수취한 프리미엄을 꾸준히 축적해 가는 중위험 중수익 구조”라고 명시돼 있다.
이에 최운열 의원은 “해당 상품을 가입하기 위해 투자성향을 기존보다 높게 변경한 투자자만 1761명, 투자금액은 1141억 원에 달해 불완전판매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또한 ‘양매도 ETN’에 대해 “풋옵션과 콜옵션을 동시에 매도하는 전략을 기초로 증권회사가 발행하는 파생결합증권으로, 지수가 예상범위 내에서 움직이는 한 약간의 수익을 계속 얻지만 지수가 예상범위를 벗어날 경우 큰 손실을 보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KIKO(키코)와 기본적 원리는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키코는 2006~2007년 은행들이 수출 중소기업을 상대로 판매한 환헤지 상품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환율 급상승으로 인해 키코 계약을 한 수출 중소기업들이 줄도산하는 사태가 발생한 바 있다. 원금손실의 위험이 있는 복잡한 파생상품이라는 점에서 불완전판매 문제가 지적됐고, 최근 불거진 DLS‧DLF 사태 또한 ‘제2의 키코 사태’로 불렸다.
최운열 의원실 관계자는 “현장에 직접 가서 상품가입을 문의했는데, 부적절한 자료들이 쏟아져 나와 국감에서 질의를 하게 됐다. 지난해 하나은행 신탁 상품 불완전판매 문제를 지적할 때에만 해도 DLS 사태가 발생할지 몰랐는데, DLF 사태가 발생하며 신탁이나 사모펀드의 문제도 알려지게 됐다”고 전했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 결정에 하나은행은 최종 확정 때까지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최종 확정이 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핵심성과지표(KPI·Key Performance Indicator)를 고객 수익률과 소비자보호 강화 중심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전했다. 금융당국은 앞서 DLF 사태 후속대책의 일환으로 은행의 경영실태 평가시 은행의 핵심성과지표 적정성을 점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