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4조 6000억 원을 투자해 테마파크 사업에 뛰어들면서 그 배경과 전망에 관심이 쏠린다. 해당 사진은 서울 중구에 위치한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신세계면세점. 사진=박정훈 기자
신세계에 따르면 이마트 자회사 신세계프라퍼티는 4조 5700억 원 규모를 투자해 경기도 화성시 송산그린시티 내 약 418만㎡(127만 평) 부지에 국제 테마파크를 조성할 계획이다. 여의도(290만㎡)의 1.4배 규모다. 이곳에 최신 IT기술을 접목한 테마파크와 워터파크, 공룡테마의 쥬라지월드, 장난감과 캐릭터로 꾸민 키즈파크 등 주요 시설을 구축하고, 호텔과 쇼핑몰, 골프장도 조성해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복합 테마파크를 만든다는 것이다. 2026년 1차 개장을 시작해 2031년 전체 개장이 목표다. 정 부회장은 지난 21일 화성 국제 테마파크 비전 선포식에서 “모든 사업역량을 쏟아 세상에 없던 테마파크를 만들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신세계가 테마파크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이커머스의 성장으로 오프라인 유통업 부진이 심화하면서 매장을 혁신할 돌파구가 필요한 것으로 풀이된다. 엔터테인먼트 요소로 온라인이 제공할 수 없는 오프라인만의 강점인 체험 소비를 극대화해 국내외 소비자들을 끌어들인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사업 모델은 해외에서 앞서 활용해왔다. 미국 미네소타주에 있는 ‘몰 오브 아메리카’는 500여 개 브랜드 매장뿐 아니라 놀이기구와 수족관, 영화관, 골프장, 집라인과 비행체험 등 놀이와 쇼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해 연간 4000만 명의 방문객 수를 기록했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온라인과 차별화하려면 리얼 체험을 강조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강해져야 한다”며 “한국형 몰 오브 아메리카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성만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쇼핑과 VR 체험장, 수영장, 테마파크 등 즐길 수 있는 놀이 시설을 강화해 가족 단위로 방문하는 소비 주체들이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면서 소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신세계의 구상이 성공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업계 의견이 엇갈린다. 긍정론을 제시하는 입장에서는 21세기 트렌드가 노동이 아닌 놀이이니만큼 장기적으로는 승산이 있다고 전망한다. 안승호 교수는 “주 52시간제 시행 등으로 여가 시간이 늘어난 소비자들이 어떻게 즐기도록 하느냐가 힘”이라며 “일보다 즐기는 것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만큼 장기적 추세로 볼 때 적절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이어 “신세계의 강점은 최종 소비자들을 상대해온 경험이 많다는 것”이라며 “그동안 삐에로쇼핑, 스타필드 등 소비자 요구에 맞게 다양한 실험을 해오면서 트렌드에 잘 대응해온 만큼 이번에도 승산이 있다”고 예측했다.
소프트파워와 IT 기술을 접목한 놀이기구 등 테마파크에 집어넣을 수 있는 콘텐츠가 다양해졌다는 것도 성공 가능성을 더한다. 방탄소년단(BTS) 등 한류 열풍이 지속되면서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문화 관광 중심지로 부상한 만큼 소프트파워를 활용하면 미국 디즈니 같은 대형 플레이어와 견줄 만하다는 평가다. 아울러 홀로그램과 VR, AR, 5G 등 각종 IT 기술을 도입한 체험형 콘텐츠로 꾸민다면 다른 테마파크들과도 차별화할 수 있다는 것.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BTS 등 문화 강국인 데다 뛰어난 IT 기술로 아시아 리더십이 생기고 관광 매력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국민 소득이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더 많은 관광객들이 우리나라 테마파크를 방문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신세계가 유통업 부진의 돌파구로 테마파크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진은 일본 디즈니랜드에서 신년 퍼레이드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테마파크 사업은 막대한 투자비용이 선행되고 사업 운영비도 많이 들어 투자금을 회수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신세계그룹은 유통업 실적 부진으로 고전하는 상황이다. 이마트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연결기준 1162억 원으로, 2분기 299억 원의 적자에서 반등했지만 전년 동기(1946억 원) 대비 40.3% 감소했다.
SSG닷컴 등 이마트의 주요 자회사 8곳 가운데 영업이익에서 흑자를 낸 곳은 신세계푸드와 이마트에브리데이, 신세계프라퍼티에 불과하다. 현재 상황이 좋지 않은 데다 유통업 전망도 밝지 않아 테마파크에 장기간 대규모 투자하면서 재무 부담이 커지면 버틸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테마파크업계 한 관계자는 “테마파크는 부지 마련부터 시공비, 차입금에 따른 이자비용 등 초기 투자가 많은 사업”이라며 “개장 후에도 인건비와 시설 유지·관리비 등으로 투입되는 자본은 많은데 그만큼 수익성은 없어 초기 진입하는 경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 상대도 만만치 않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에버랜드, 롯데월드와 경쟁해야 하는데다 롯데는 2021년 부산 기장군 오시리아관광단지에 롯데월드 어드벤처 부산을 여는 등 규모를 키우고 있다. 해외 관광객도 타깃으로 삼는 만큼 디즈니랜드·유니버설스튜디오가 들어선 중국·일본 등 인근 국가와도 맞붙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중국은 2021년 유니버설스튜디오 베이징을 추가 개장하고, 일본은 2023년까지 디즈니랜드·디즈니씨(Sea) 규모를 확장하는 등 테마파크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국내외 대형 플레이어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그동안 세상에 없던 테마파크란 콘텐츠로 스타필드를 선보이면서 체험형 매장을 늘리는 등 개발 역량을 충분히 갖췄다”며 “유통뿐 아니라 다른 사업들도 다양하게 영위하고 있는 만큼 역량을 발휘해 새로운 테마파크를 선보이겠다”고 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