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홈플러스 한 매장에서 불법촬영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 익명의 제보자 A 씨는 일요신문에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간 매장에서 불법촬영을 당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알려왔다. 당시 면접 담당자였던 B 씨의 태도가 수상해 구직 포기 의사를 밝히고 매장을 나선 A 씨는 며칠 뒤 경찰로부터 B 씨가 자신을 불법촬영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매장 내 화장실에 붙어있는 불법촬영 금지 스티커. 사진=최희주 기자
A 씨는 10월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기 위해 홈플러스를 찾았다. 주 업무는 홈플러스 내 푸드코트 홀을 정리하고 매장에 몸이 불편한 손님이 있을 경우 배식을 돕는 일이었다. 면접은 근무장소인 푸드코트에서 B 씨와 30분가량 이뤄졌다.
B 씨는 A 씨에게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면접 볼 것을 제안했다. A 씨는 “B 씨가 ‘아르바이트 경험이 얼마나 되냐’고 물으며 ‘내가 아르바이트 경험을 속이는 경우를 많이 봐서 그런데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직접 시범을 보여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옷 입고 앞치마 매는 것만 봐도 일을 잘 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면접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항상 이것을 시킨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했다.
A 씨는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오라’는 B 씨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B 씨가 면접의 합격을 결정하는 결정권자였기 때문이다. 또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시키는 일이라고 하니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고도 했다. 문제는 그 이후 B 씨의 행동이다. B 씨는 A 씨가 옷을 갈아입기에 앞서 먼저 탈의실에 들어갔다 나오는 수상한 행동을 했다. A 씨는 “유니폼을 입어 보겠다고 하자 B 씨가 ‘지금까지 한 번도 안 하겠다고 한 사람이 없었다’면서 탈의실로 보이는 직원 전용 공간에 잠시 들어갔다 나오더니 ‘지금 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그때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수상함을 느낀 A 씨는 탈의실에 들어가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직원들이 공동으로 쓰는 작은 공간에는 다른 직원들의 옷가지와 물건들도 놓여있었다. A 씨는 머리맡 선반 쪽에 휴대폰 한 대가 아래 방향으로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후면 카메라도 선반 밖으로 걸쳐져 있었다. A 씨는 서둘러 휴대폰을 등지고 옷을 갈아입은 뒤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B 씨는 ‘머리망이 준비되지 않아 위생 규정상 지금 당장 일을 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며 A 씨를 다시 탈의실로 보냈다. A 씨는 짧은 시간 두 차례 옷을 갈아입었다. 여러모로 이상한 점을 느낀 A 씨는 다음 날 구직 포기 의사를 밝혔고, 며칠 뒤 불법촬영을 당했으니 본인 확인을 해달라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A 씨의 제보는 상당부분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B 씨를 불법촬영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붙잡아 수사 중이라고 11월 28일 밝혔다. 다만 촬영 방법에 있어서는 선반 위 휴대폰이 아닌 그보다 아래 위치에 또 다른 카메라를 설치해 영상을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확인한 피해자는 수십 명으로 이 가운데에는 고등학생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범죄가 발생한 공간이 탈의실이라는 특성상 면접 대상자뿐만 아니라 평소 그곳을 이용하는 홈플러스 직원 및 아르바이트생도 피해를 봤을 가능성이 높다. 담당 경찰서 관계자는 “수사 중이라 자세한 사안을 말할 수 없다. 다만 불법촬영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인 만큼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 조사하고 있다. 현재 조사는 마무리 단계”라고 밝혔다.
피해자 A 씨는 일요신문에 B 씨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그는 “경찰 조사 당시, 나 말고도 수많은 여성분들이 찍힌 자료 화면을 봤다. 영상의 유포 여부와는 상관없이 형사처벌은 물론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측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런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일명 몰카를 찍은 것으로 알려진 직원은 현재 경찰조사를 받고 있다. 대책 마련은 정확한 사태 파악 후 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필요 시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한편 지난 10월 전남 순천의 한 종합병원 탈의실에서 불법촬영을 당한 한 피해자가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피해자는 자신이 불법촬영을 당한 사실을 안 이후 악몽에 시달리는 등의 트라우마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수 구하라 씨(28) 역시 불법촬영의 피해자였으나 1심 재판부는 영상이 유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 8월 가해자에 무죄를 선고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처럼 불법촬영으로 인한 피해가 늘어나면서 촬영물 유포 여부와는 관계없이 불법촬영 자체를 엄하게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현행법이 유포죄에 대해서는 비교적 처벌 수위가 높은 반면 불법촬영 범죄에 대해서는 양형 기준조차 모호한 탓이다.
이에 대검찰청은 11월 26일 피해자에게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주는 불법 카메라 촬영·유포 사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피해자 식별이 가능하고, 보복·공갈·협박 목적이거나 집·화장실을 비롯한 사적 영역에 침입하는 등 가중요소가 하나라도 있으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대검은 지난해 10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불법 카메라 촬영 범죄에 대한 처리 기준을 강화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