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동국대 석좌교수는 “현 정권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일을 진행시켰기 때문에 탈당했다”고 말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YS 서거 4주기는 잘 치르셨나.
“지금까지는 오전에 4주기 추모식을 진행했는데 너무 추워서 올해부터는 오후에 진행했다. 기온도 적당하고 괜찮았던 것 같다. 많은 분들이 와서 추모해주셔서 감사했다.”
―11월 25일 자유한국당이 열었던 추모식에서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가 한국당을 향해 쓴소리를 해 화제가 됐다.
“홍성걸 교수는 한국당이 초청한 인사라고 알고 있다. 홍 교수가 ‘한국당은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다. 썩은 물을 버리지 못하면 통 자체를 버릴 수밖에 없다’, ‘황 대표 단식 투쟁이 잘못된 게 아니라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하셨던 것처럼 희생이 없기 때문’이라며 강한 말씀을 했다. 평소에 점잖으시던 홍 교수가 강하게 쓴 소리를 했지만 다 맞는 말이었다. 틀린 말은 없었다.”
―문재인 정부를 평가한다면.
“총체적 난국이다. 내수경제, 수출, 실업률 등 모든 지표가 악화된 상태다. 소상공인은 죽겠다고 하고 있다. 경제 활력을 다 잃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교 안보 전략에서는 미국과 일본에서 균열이 나고 있다. 교육도 즉흥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사퇴하자 갑자기 정시 확대를 들고 나왔다. 현재 소득이 3만 달러라고 해도 국가 경제는 한 순간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또한 청와대도 소득주도성장(소주성) 등 핵심 정책이 실패했다고 인정하기보다는 고집스럽게 밀고 나간다. 그 동력으로 국가 재정을 쓰고 있다. 재정으로 경제가 일으켜 지지도 않지만 결국 재정은 마를 수밖에 없고 그런 방법은 누가 쓸 수 없나. 정치에서는 야당과 최소한의 소통조차 하지 않고 있다. 치열한 세계 경제 속에서 한국이 어디로 가는가 중요한 시기에 답답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의 일본정책을 두고 YS의 ‘역사바로세우기’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동의하지 않는다. YS가 추구했던 역사바로세우기는 문 대통령과 다르다. 문민정부 전까지 단 한 번도 역사를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1단계가 일제 잔재 청산이라면, 2단계는 민주화운동을 혁명으로 바꿨고 3단계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처벌로 이뤄졌다. YS의 1단계 일제 잔재 청산은 ‘황국신민’의 준말인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꾼다거나 일본 표현이 들어간 한자를 고치거나 국가적으로도 상징성 있는 광화문 광장을 가리고 있는 총독부를 철거하는 등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잔재를 고쳐야 했던 작업이었다. YS는 오히려 위안부 문제 등의 접근도 달랐다. ‘배상, 보상에 집착하지 않고 진정한 사과만 있으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등을 통해 진정으로 사과를 받아냈다.”
―YS 역사바로세우기 때문에 IMF 외환위기가 왔다는 분석도 나왔다.
“잘못된 이야기다. 당시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외환위기가 번지면서 한국이 위기에 처했고, 일본도 위기가 고조되면서 한국을 도와줄 여력이 없었다. 미국이나 일본과의 관계 때문에 도움을 못 받았거나 외환위기를 자초했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 또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가 외환위기 전 노동개혁과 금융개혁을 밀어붙이다가 야당 반대로 실패했다. 그런데 참 기가 막히게도 IMF가 구제 금융 핵심 조건이 노동개혁과 금융개혁이었다. 야당이 발목을 잡지 않았다면 외환위기를 맞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간과해선 안 된다.”
김현철 동국대 석좌교수는 “YS 역사 바로세우기와 문재인 정부 반일행보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입당 1년 8개월 만인 2019년 1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현 정권이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일을 진행시켰기 때문이다. 소주성을 포함한 경제문제, 탈원전, 북한에 대한 태도, 적폐 청산 모습 등에 동의할 수 없었다. 문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에는 ‘통합과 화합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게 YS의 유지기도 했다. 나는 ‘전 정부 국정농단 때문에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으니 국민 화합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부가 수많은 갈등을 더 조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갈등이 계속되면 나라가 분열 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대의제인데 현 정부는 광장의 정치, 직접 정치를 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통합과 화합이 해결되지 않는데 있을 이유가 없었다.”
―탈당을 말리는 사람은 없었나.
“다들 말렸다. 청와대 정무수석도 ‘대통령도 탈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하고, 당에서도 그렇고, 행정부에서 알고 지내는 장관도 참아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앞으로 기대가 없다. 대통령이 인사 변화도 크게 예고하고 있지도 않고, 소주성 등 정책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사실상 단언했다. 이미 한참 전에 나올 마음을 먹었는데 기다려 봤지만 그래도 변하는 게 없어서 탈당을 했다.”
―조국 전 장관이 임명된 9월 10일 페이스북에 ‘민주주의의 조종을 울렸다. 국치일 같은 오늘 저는 국기를 조기로 달았다’고 글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공정, 정의에 전혀 맞지 않는 인사다. 많은 국민의 반대가 있는데도 다른 곳도 아닌 법을 집행하는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인사 실패다.”
―다른 당으로 입당할 생각도 있는지.
“전혀 없다. 탈당할 때도 ‘제자리로 돌아가겠다’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강의하고, YS 기념사업 하고, 교회 봉사하는 게 내 자리다. 다만 내년 선거에서 야당이 이겼으면 좋겠다. 현 정권 실정을 심판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공천 받고 국회의원 되겠다는 생각으로 말하는 게 아니다. 작은 것으로는 SNS 활동을 통해 야당을 돕거나, 더 적극적으로는 보수통합의 가교 역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년 선거 어떻게 전망하나.
“지금 이 상태로 가면 야당이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그야말로 환골탈태를 해야 한다. 제1야당인 한국당은 아직도 친박, 비박 갈등을 하고 있고 공천받기 위한 내부 투쟁을 하고 있다. 먼저 박근혜 전 대통령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 진정한 보수의 정체성을 보여줘야 중도도 안을 수 있는데 오히려 극우하고 손잡으려고 하고 있다. 한국당이 해체하고 새로 당을 만들어야 하고 그 새로운 당에 홍성걸 교수가 말한 ‘썩은 물’을 받아들이면 아무 의미도 없다. 과거 YS가 신한국당을 만들어 1996년 총선에서 승리한 이유도 과거에 연연하거나 기득권만 생각하는 인사를 쳐내고 개혁적 인사, 합리적 인사를 받아들여 과감하게 기용했기 때문이다.”
김현철 동국대 석좌교수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도 YS처럼 자신부터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단식에 들어갔는데.
“단식 자체는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다만 YS가 단식할 때처럼 폭압적인 군부독재 시대도 아닌데 황 대표가 삭발하고, 단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 공감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시기적으로 단식이란 선택이 맞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국민도 많다.”
―만약 YS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자신이나 자기 계파부터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YS는 집권 초 민주산악회부터 해체했다. YS가 공직자 재산공개를 추진하면서 불이익은 여당이 가장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금융실명제도 일반 국민 97%는 상관없는 법이다. 대통령인데 주변에 재산이 많거나 기득권 있는 지인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래도 공익을 위해서라면 계파와 정파를 초월해 희생을 강요한 바 있다. 그래야 공감대를 형성하고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을 수 있다. 황 대표도 단식 이전에 당 내 구세대 기득권 인사부터 쳐내거나 자기 식구를 포함한 치열한 쇄신도 하면서 하다하다 안 됐을 때 단식을 했다면 이런 반응은 아니었을 것으로 본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한국에는 노동개혁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추진 과정에서 많은 갈등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경제 활력을 위해서는 해야 하는 개혁이다. 요즘 주변에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얘기를 많이 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노동개혁이 프랑스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해 강성 노조를 직접 만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설득해 통과시켰다. 국가 재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만 반발이 클 수밖에 없는 연금 개혁도 전국을 돌며 수많은 사람을 설득해 결국 통과시켰다. 이어서 정치 개혁도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꼭 해야 하는 개혁이라면 마크롱처럼 비판과 반대에 직면하더라도 밀고 나가야 한다는 걸 배웠으면 한다. 또한 반대파도 국민이다. 반대파를 설득하고 반대파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셨으면 좋겠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