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정우마저도 펭수의 인기에 기대고 싶다고 했다. 요즘 너도나도 펭수를 향한 사랑을 드러난다. 방송 제작진의 협업 제안도 쏟아진다. 예능 프로그램과 라디오를 넘어 화보 촬영과 광고 모델 제안도 잇따른다. ‘낯선 존재’ 펭수가 갑자기 스타가 됐다.
남극 ‘펭’, 빼어날 ‘수’를 더한 이름인 펭수는 교육방송 EBS가 올해 4월 시작한 어린이 프로그램 ‘자이언트 펭수TV’의 주인공 캐릭터다. 일찍이 ‘방귀대장 뿡뿡이’, ‘번개맨’ 등 EBS 출신 캐릭터는 다양했지만 펭수처럼 성인 시청자들로부터 폭발적이면서도 광범위한 사랑을 받은 경우는 없다. 하정우까지 부러움을 드러낼 만큼 스타의 반열에 올랐고, 실제 여느 아이돌 스타 못지않은 러브콜도 받고 있다.
‘자이언트 펭수TV’의 펭수 부산 사인회 현장. 사진=EBS 제공
인기를 증명하듯 별칭도 여럿이다. 특히 2030세대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얻으면서 ‘2030 뽀로로’라고 불리고, 직장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덕분에 ‘직통령’으로 통한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 예의는 지키지만 권위주의는 거부하는 ‘용기’, 재치 만점의 입담과 유머를 자랑하는 ‘감각’,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열정’이 펭수를 상징하는 키위드다.
#신비주의 설정, 진짜 주인공 베일 속
촌철살인 화법과 유머감각으로 무장한 펭수는 EBS ‘자이언트 펭수TV’로 출발해 현재 동명 유튜브 채널의 주인공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교육방송 캐릭터에 머물던 펭수가 이처럼 유명해진 계기는 올해 9월 EBS가 자사 프로그램의 캐릭터들을 모아놓고 특집 프로그램으로 기획한 ‘EBS 육상대회’가 결정적이었다. EBS가 배출한 거의 대부분 캐릭터가 총출동한 이 프로그램은 특히 2030세대의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그 가운데 단연 눈길을 붙잡은 주인공은 다름 아닌 키 210cm의 ‘거인 펭귄’ 펭수였다.
올해 10세인 펭수는 정곡을 찌르는 화법을 구사하면서 대중을 사로잡고 있다. 예측불허의 돌발행동을 일삼다가도, 감동을 선사하는 말들로 위로를 안기는 반전 매력도 있다. 펭수는 ‘초등학생들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애니메이션 ‘뽀로로’의 주인공처럼 유명해지고 싶어, 고향인 남극에서 바다를 헤엄쳐 인천으로 왔다는 설정의 캐릭터다. 지금 사는 곳은 EBS 사옥 소품실이다.
이 같은 코믹한 탄생 비화는 시작에 불과하다. 바다를 헤엄쳐 오다 잠시 스위스에 머문 것을 계기로 현지에서 요들송을 배워, 이를 탁월한 실력으로 부를 수 있다는 설정도 ‘깨알 재미’를 선사한다. 거인 펭귄이라는 이름처럼 실제 펭귄과 비교하면 거구의 몸이지만, 그룹 방탄소년단의 노래 ‘아이돌’과 걸그룹 트와이스의 ‘TT’를 부르면서 유연하게 안무를 소화하는 모습도 웃음을 안긴다.
펭수가 유명해진 계기는 EBS가 자사 프로그램의 캐릭터들을 모아놓고 특집 프로그램으로 기획한 ‘EBS 육상대회’였다. 사진=EBS 제공
펭수가 팬덤을 구축한 배경은 그가 추구하는 신비주의의 영향도 크다. EBS 제작진은 지금껏 인형 탈을 쓰고 펭수를 연기하고 있는 실제 주인공이 누구인지 철저히 감추고 있다. 그러면서 펭수를 하나의 인격체로 설정해 다양한 설정을 부여해 ‘펭수의 세계관’을 구축한다.
인기가 높아질수록 펭수의 진짜 정체를 파헤치려는 누리꾼의 추적은 속도를 내고 있다. 추리력 탁월한 누리꾼 사이에서는 몇몇 성우가 그 후보로 거론되고, 온라인 포털사이트에서는 ‘펭수의 정체’ ‘펭수 성우’ 등 키워드 역시 활발히 검색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인물의 정체를 확인할 길은 없다. EBS는 물론 ‘자이언트 펭수TV’ 제작진 역시 “펭수는 펭수일 때가 가치가 있다”며 그 존재가 공개되지 않도록 입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 컬래버레이션…‘펭수’ 몸값 높인 진짜 원동력
펭수는 고향인 EBS 출연뿐 아니라 MBC 라디오 ‘여성시대’, JTBC 예능프로그램 ‘아는 형님’ 등에도 타 방송사 프로그램까지 넘나들고 있다. 그야말로 방송사 장벽을 뛰어넘어 경계 없는 맹활약인 셈이다. JTBC에 출연해서는 EBS의 김명중 사장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나는 권위주의가 싫다”고 말하거나, MBC에서는 “최승호 사장과 밥 한 번 먹자”고 거침없이 말하는 언행으로도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탈권위주의의 모습은 펭수를 대표하는 또 다른 상징이다. 최근 외교부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알리기 위해 펭수와 손잡고 기획한 영상 ‘펭수 외교부 장관 만난 썰’ 편에서도 마찬가지다. 외교부를 찾아간 펭수는 그 입구에서 강경화 장관과 마주친 뒤 “이곳의 ‘대빵’ 누구냐”고 되묻는 장면으로 큰 웃음을 안겼다.
MBC 라디오 ‘여성시대’에 출연한 펭수. 사진=EBS 제공
쏟아지는 러브콜 속에 펭수의 몸값 상승도 예상되지만 출연료 대신 콘텐츠 컬래버레이션을 택하고 있다. 단일 캐릭터의 유명세에 치중하지 않고, 이를 활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확대 생산하려는 전략이다. 실제로 펭수가 MBC, JTBC 등 타 방송사 프로그램에 출연한 모습은 유튜브 ‘자이언트 펭수TV’를 통해서도 공개되면서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 펭수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탄생한 캐릭터가 아니라 교육방송인 EBS가 자체 개발한 방송사 소속이란 점도 이런 기획에 영향을 미쳤다.
치솟는 인기, 탁월한 기획력에 힘입어 펭수는 최근 영화계로까지 진출했다. 개봉을 앞둔 영화들과 공동으로 콘텐츠를 기획해 해당 작품의 마케팅 효과를 이끌어내며 유튜브 채널 구독자를 더욱 빠르게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12월 개봉하는 한국영화 대작 두 편이 펭수와 연이어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다. 12월 19일 개봉하는 ‘백두산’과 뒤이어 공개하는 ‘천문:하늘에 묻는다’다. 일주일 차이로 개봉하는 영화들이 앞다퉈 동일 캐릭터를 내세워 마케팅을 벌이는 이례적인 상황이다.
이들 영화와 협업한 펭수의 기획력도 눈길을 끈다. 먼저 펭수는 영화에 진출하고 싶어 한다는 설정 아래 ‘천문’의 연출자인 허진호 감독과 만나 오디션을 벌였다. ‘백두산’ 측은 펭수와 주연배우인 이병헌 하정우 배수지 등과 관객이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병헌은 “얼마 전까지 펭수의 존재를 알지 못했지만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존재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기대가 생겼다”고 밝혔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