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의 갑작스런 비보에 야구계가 충격에 빠졌다. 사진=연합뉴스
그 누구보다 애통함을 숨기지 못한 사람은 아버지인 김민호 코치다. 늘 “아빠보다 더 유명한 야구선수가 되겠다”고 했던 아들이 꿈을 채 펼쳐 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등졌기 때문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야구공을 잡고, 희망과 좌절을 오가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프로 입단 두 시즌 만에 1군 마운드에 오르고, 언젠가는 팀 주축 투수가 되기를 꿈꿨던 아들.
자신의 직업을 물려 받았기에 더 애지중지 키워온 장남을 너무 갑자기 잃은 아버지는 그저 하염없이 가슴을 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의 발인식을 치르고 난 뒤에는 “살아가는 동안 남겨진 가족과 선수들의 꿈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겠다”는 말로 주변을 더 뭉클하게 만들었다.
#‘닮은 꼴’ 아버지의 희망과 아들의 꿈
“성훈이 외할머니와 성훈이 엄마가 다시 누군가의 경기를 기다리고 응원할 수 있어서 더 기분이 좋아요.” 지난해 7월 22일 밤늦은 시간. 김 코치는 전화 인터뷰 도중 이렇게 말하며 뿌듯하게 웃었다. 김성훈이 프로 유니폼을 입고 꿈에 그리던 데뷔전을 치른 직후였다.
김성훈은 그날 대구 삼성전 선발투수로 처음 1군 마운드에 올라 5⅓이닝 동안 공 85개를 던지면서 2피안타 3볼넷 6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다. 팀이 9회 역전패해 데뷔 첫 승리로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코칭스태프와 팬들의 눈도장을 받기엔 충분했다. 한용덕 한화 감독이 “김성훈은 한 마디로 ‘대박’이었다. 100% 만족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다.
김 코치는 “그동안 내가 야구장에 나가 다른 선수들을 지도하느라 정작 아들과는 야구에 대한 얘기를 전혀 해본 적이 없다”고 했던 무뚝뚝한 아버지다. 아들이 야구하는 시간에 아버지도 유니폼을 입고 전국을 돌아야 했기에 “학창 시절에도 성훈이가 공을 던지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아들의 마음은 좀 달랐다. 자신을 프로 선수로 만들어준 게 아버지라고 했다. 야구선수의 꿈을 심어줬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학교 3학년 때 투수를 시작한 김성훈은 경기고 진학 후 야수로 뛰다 3학년 때 다시 투수로 복귀했다. 그 결과 2017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2라운드(전체 15순위)에 지명돼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김성훈은 “야수로는 많이 부진했는데, 아버지가 다시 투수를 하라고 권유하신 덕분에 프로에서 상위 지명까지 받게 됐다”며 “아버지는 늘 야구보다 인성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시곤 했다. 내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 주시는, 내 인생의 멘토”라고 털어 놓았다.
정작 아들은 아버지의 선수 시절을 자세히 기억하지는 못했다. 김성훈은 김 코치가 은퇴한 뒤에야 야구공을 잡았다. 그래도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아버지는 스타플레이어였다. 두산 선수 시절이던 1995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도 수상했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의 목표이자 꿈은 훗날 ‘선수 김민호’ 이름 석 자보다 ‘김성훈 선수 아버지’로 기억되는 것이었다. 아들이 프로에 데뷔하던 날, 광주에서 소속팀 KIA의 경기를 치른 아버지는 경기 뒤 곧바로 스마트폰을 열었다. 이내 ‘김성훈 호투’라는 제목이 달린 기사들이 줄지어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김 코치는 좋아했다. 자신의 은퇴 후 별다른 낙이 없던 김 코치의 장모와 아내에게 손자와 아들의 경기를 기다릴 수 있는 새 즐거움이 생겼다는 게 무척 기쁘다고 했다. “첫 등판에서 생각보다 잘해서 나도 놀랐다”고 했고, “고맙고 대견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아들에게 뭘 당부하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그저 딱 하나만 얘기했다.
“나는 그저 아들 성훈이가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팀에서 꾸준히 자기 역할을 해주기만 바란다.”
김성훈의 소속팀 한화 이글스는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창을 띄우며 그를 애도하고 있다. 사진=한화 이글스 홈페이지 캡처
참 착했던 아들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버지가 바란 단 하나의 희망을 지키지 못했다. 부모가 있는 광주에 왔다가 친구들을 만나고 오겠다며 집을 나선 아들은 더 이상 부모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김 코치는 평생 잊지 못할 전화 한 통을 받았고,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도 않은 비보를 전해 들어야 했다. 김성훈이 프로 데뷔전을 치른 지 불과 1년 4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앞날이 창창하던 투수 유망주의 갑작스러운 죽음. 모두 충격을 받았지만, 김 코치를 비롯한 가족의 애통함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김성훈은 미래가 밝은 투수였다. 늘 볼이 붉어진 채 수줍은 표정으로 마운드에 올랐다가도 막상 공을 던지면 강속구를 뿜어내곤 했다. 꾸준히 성장도 했다. 지난해 퓨처스리그 17경기에서 선발 수업을 받으면서 6승 2패 평균자책점 3.79로 활약한 뒤 퓨처스올스타전에 출전해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후반기에는 마침내 선발 투수로 기회도 얻었다. 올해는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KIA전에서 시즌 첫 선발 등판을 하는 장면도 남겼다.
비록 올 시즌은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지만, 15경기에서 평균자책점 4.84를 기록하면서 가능성을 충분히 보였다. 한용덕 감독은 한화 마운드의 미래를 내다볼 때 꾸준히 김성훈을 언급했다. 지난 10월 부임한 정민철 한화 단장도 “마무리 캠프 때 가장 눈여겨본 투수 중 하나”라고 했다. 김성훈은 캠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새로 오신 단장님이 내 피칭에 관심을 보여주셨다. 내년 스프링캠프에서 잘 만들어 보라고 격려해 주셨다”고 아버지에게 자랑도 했다.
그런 아들이, 그 전도유망하고 값진 아들이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사라졌다. 김성훈이 눈을 감은 다음 날, 먼저 떠난 장남의 빈소를 지키던 아버지의 눈가가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망연자실. 애끓는 비통함을 가슴 속에 가둔 채 그저 “태어나 이렇게 많이 울어본 건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감정은 끊임없이 복받치는데 더 눈물이 나오지 않아 마른 울음만 새어나왔다. 차마 누구도 ‘힘내라’는 격려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스스로 “내가 힘을 내야 한다”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김 코치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아들의 영정 사진을 마주 보며 홀로 끊임없이 울고 있는 한화 투수 박상원이 앉아 있었다. “상원아, 밥은 제대로 먹었냐.” 박상원은 2017년 김성훈과 함께 한화에 입단해 시작부터 지금까지 동고동락한 동료다. 박상원이 고개를 숙였다. “하나밖에 없는 입단 동기였는데…. 제가 성훈이 첫 승을 날렸습니다.” 김 코치는 그런 박상원의 어깨를 말없이 두드리고, 밥을 챙겨 먹였다. 마치 곁에 없는 아들을 다독이듯이.
아마도 아버지는 한동안 씩씩하게 마운드에 오르는 젊은 투수들을 볼 때마다 아들이 생각날 것이다. 믿기 힘들 만큼 당당한 미소로 영정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유니폼 입은 아들의 모습. “언제쯤 성훈이 얘기를 그만 할 수 있을까” 하며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 코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성훈이가, (이종범 코치 아들인) 이정후랑 약속을 했다고 하더라고. 서로 아버지들보다 야구 더 잘하자고. 기특하지 않아요? 나한테도 어렸을 때부터 종종 그랬거든요. 난 꼭 아빠보다 더 야구 잘하는 선수가 될 거라고요. 그러면서 ‘내가 시속 150km 꼭 한번 던져보겠다’고 그랬는데… 진짜 딱 한 번 150km를 던지더라고. 그리고 이렇게 떠났어요, 내 아들이.”
#슬픔에 잠긴 한화 선수단, 스승을 위로하는 KIA 선수단
물론 시름에 잠긴 것은 아버지뿐만 아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 김성훈과 시즌을 함께 보내고 캠프를 함께 다녀 온 한화 선수들은 깊은 충격에 빠져 애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선수단이 버스를 타고 내려와 단체 조문을 했고, 11월 25일 이른 아침에 진행된 발인식에도 대부분 선수가 참석해 일찍 눈 감은 동료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미리 예정돼 있던 선수단 워크숍도 취소하고 침묵과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입단 동기 김성훈의 빈소를 찾아 종일 울먹였던 한화 박상원은 발인이 끝난 11월 26일 자신의 SNS에 수신자가 읽을 수 없는 편지를 썼다.
“형이 정말 많이 미안해, 성훈아. 시작을 함께 할 수 있어 정말 좋았는데, 그 누구보다 믿고 의지했던 형한테 성훈이는 정말 든든하고 특별한 하나뿐인 친구 같던 동생이었는데, 형이 데뷔전 첫 승리를 망쳐 버려서 정말 미안해. 그때 아무렇지도 않게 ‘그럴 수 있다’고 말해준 게 너무 고마웠어. 이제는 너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게 형은 믿기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잘해줄 걸. 너무 보고 싶다.”
진심을 담은 동료의 글이 구단과 선수단을 다시 한 번 울렸다. 마무리 투수 정우람 역시 두 번째 프리에이전트(FA) 계약에서 옵션 없이 4년 총액 39억 원에 사인해 한화 잔류를 확정한 뒤 “구단에서 좋은 조건에 계약해 주셨고 내게는 정말 기쁜 일”이라면서도 “성훈이를 생각하면 마냥 웃을 수가 없다. 한화 선수단 모두 성훈이를 생각하면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또 “정말 열심히 훈련하는 후배였다. 아직도 성훈이와 함께 뛸 수 없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추억하면서 “우리 한화 선수들이 성훈이 몫까지 잘 해내고, 다음 시즌이 끝난 뒤 다시 성훈이에게 인사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KBO 시상식에서도 참석자들은 김성훈을 애도하는 묵념을 했다. 평균자책점 상을 받은 양현종은 수상 소감을 밝히면서도 김성훈에 대해 언급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야구계 전체도 김성훈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지난 11월 25일 열린 2019 KBO 시상식에 앞서 참석자 전원이 김성훈을 애도하는 묵념을 했다. 또 KIA 투수 양현종은 평균자책점 상을 수상하기 위해 단상에 올랐다가 “(김민호) 코치님께서 이 선수(김성훈)를 거론할 때마다 ‘정말 열심히 하는 선수’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그 친구가 이곳에서 이루지 못했던 꿈을 하늘나라에서 반드시 펼쳤으면 좋겠다”고 간신히 말을 이어가며 울먹였다.
김 코치의 애제자인 KIA 내야수 박찬호도 “코치님께서 언젠가 ‘너희들은 모두 내 자식들이나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며 “그 말씀대로 코치님을 정말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선수들이 많다. 꼭 기억해주셨으면 한다”고 스승에게 속 깊은 위로를 건네 많은 이를 뭉클하게 했다.
한화 구단 역시 가족을 잃은 슬픔을 달래는 중이다. 12월 7일 대전 모처에서 팬들과 함께 하는 ‘2019 독수리 한마당’ 이벤트를 열 예정이었지만, 행사를 취소했다. 매년 12월 연례행사로 열리는 이 이벤트는 한화 선수단과 팬들이 함께 호흡하면서 한 시즌을 정리하는 팬 감사 축제다. 선수와 팬이 직접 곁에서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올해는 어느 쪽도 마음 편히 축제를 즐길 수가 없다.
결국 구단은 팬들과 함께 하는 연말 행사 개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한화 구단 관계자는 “발인식이 끝난 뒤 회의를 계속 한 결과 늘 축제 분위기로 열리던 ‘독수리 한마당’ 행사는 아쉽게도 치르지 못할 것 같다”며 “대신 선수들과 팬들이 떠난 김성훈 선수를 함께 애도할 수 있는 자리를 한 번쯤은 만들어야 할 것 같아 그 부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상을 떠난 김성훈을 추모하는 것뿐 아니라 남아 있는 선수들의 슬픔을 하루 빨리 추스르는 것도 구단이 해야 할 일이다. 한화 구단 관계자는 “선수들 모두 크게 상심한 상황이라 선수단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너무 가라앉아 있다. 정말 슬픈 일이지만, 또 언제까지나 모두가 가슴 아파하면서 주저 앉아있는 것은 하늘에 있는 김성훈 선수도 원치 않을 것”이라며 “일단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팬들의 마음이다. 팬들이 김성훈 선수를 잘 떠나보낼 수 있고 선수들도 애도를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일지 구단이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