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김광석이 부르는 ‘서른 즈음에’가 흘러나온다. ‘훅’ 하고 뭔가가 자극되니 심장을 바라보게 된다. 몸이, 심장이 뭔가를 잃어버리고 비어있는 것 같다. 젊음이 빠져나간 자리, 그래도 생은 계속된다. 축복일까, 짐일까.
생각해보면 ‘서른 즈음에’를 좋아했던 그때 그 서른 즈음은 얼마나 젊었는가. 멀어져 간다는 것, 잊는다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나이에 멀어져 가는 것을, 비어가는 것을 다 안다고 생각했으니 그때 그 시간에 빙그레 미소를 보낸다. 그때 그 노래를 그렇게 좋아한 것은 잊기 위해, 멀어지기 위해 그만큼 애써야 했던 열망의 상처는 아니었을까.
진짜 잊어버리는 나이, 진짜 멀어지는 상태가 있다. 정신이 육신을 떠나 가슴 속에서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 뿐더러 찾는 손짓조차 할 수 없는 상태, 우리는 그것을 치매라 부른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한때 대한민국 전체가 사랑했던 배우야, 윤정희 씨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와 결혼해서 파리로 날아갔을 때는 얼마나 부러웠는지 아니? 그때 나는 올망졸망한 너희들 키우면서 지지고 볶고 사는데 누구는 파리, 피아니스트, 하면서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화려한 삶을 사는 것 같으니! 그런데 치매라니, 안됐어. 아무리 빛나는 생을 살았어도 나이 이길 장사는 없는 거지!”
로망이 연민이 된 어머니는 이제 치매가 찾아들까 걱정이다. 나이 든 사람들이 암보다도 무서워하는 병이 바로 치매다. 신앙의 어머니를 둔 선생님이 있었다. 그 선생님은 어머니에게 받은 것 중의 최고의 것이 신앙 속에서 선생님과 그 형제자매들을 양육해준 것이라고 했다. 선생님의 어머니는 ‘하나님 바라기’였다. 그 어머니를 떠나 서울에서, 미국에서 살았어도 선생님의 마음의 중심엔 언제나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은 것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며느리나 사위를 잊어버리시는 것까지는 그래도 놀라지 않았다. 놀란 것은 어머니의 삶의 중심이었던 하나님과 예수님까지 잊은 것이었다. 인문학자로서 생에 대해 아는 척했는데 노년의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것은 생이 바로 허구 위에 세워진 모래성 같다는 것이었다. 치매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가르쳐 주신 것은 하나님마저 관념이고, 생각의 감옥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웨이 프롬 허(Away from her)’라는 영화가 있다. 60대 여인의 치매가 소재인 영화다. 장소를, 시간을, 사람을 기억하려 해도 그것들이 자꾸 빠져나가자 여인은 남편에게 요양병원에 보내 달라고 한다. 남편은 여인을 간호하고 싶어 했지만 아직 기억과 의지가 남아있는 여인은 남편의 짐이 되기 싫었다. 여인의 의지에 따라 요양병원으로 가는 날, 여인은 가슴속에 묻기로 하곤 한 번도 꺼내놓지 않았던 20년 전 남편의 연인 이야기를 한다. 살아온 세월들을 다 잊고 있는데 왜 그 기억만은 오롯이 남아있는 줄 모르겠다며.
요양병원에서 그녀는 문득문득 남편이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 또 다른 치매노인과 연애를 한다. 그 연애를 통해 그녀는 20년 전의 남편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용서한다. 그녀는 옹이처럼 박혀있었던 상처의 기억으로부터도 해방된 것 같다. 치매 중에도 삶은 계속된다.
누가 알겠는가. 병고를 통과해가는 생의 비밀을. 어쩌면 치매는 모든 것을 쓸고 가는 죽음이 우리에게 보내고 있는 이별의 편지 혹은 그의 그림자인 것은 아닐까, 김광석의 노래처럼.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하루가 멀어지면 열흘이 멀어지고 열흘 멀어지면 천일만일이 멀어지는 병, 치매! 매일 이별하고 매시간 멀어지는 그 속절없는 상황을 통해 치매는 무에서 시작해서 온갖 드라마를 창조하고는 무로 돌아가는 삶 속에서 네가 배운 것이 뭐냐고 묻는, 우리 삶의 화두인지도 모르겠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